입싱한지 한 달이 지났다
싱가폴에서 일을 구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이 곳에 온지 한 달째. 이력서는 수도없이 넣었고, 총 4번의 면접을 봤다. 아직까지 잡 오퍼를 받은 곳은 없다 띠로링... 슬픈 것. 한국어가 필요한 잡 오프닝이 뜨면 필히 이력서를 넣고 있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지금까지 면접본 곳은 한국어가 전혀 필요 없는 포지션들이었다. 한국어 능력이 필요없는 곳에서만 면접을 봐서 아직 좋은 소식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무 것도 없이 '맨땅에 헤딩' 정신으로 이 곳에 왔는데 한 달동안 면접도 몇 번 보고 아직까지의 흐름은 나쁘지 않은 것 같으나, 이제 여기에 있을 시간도 두 달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지는 게 사실이다. 이번주에 일본계 잡에이전시 JAC Recruitment 한국인 담당자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요즘 비자 문제로 외국인이 싱가폴에서 잡을 구하기 정말 힘들다고 전했다. 그의 말의 요지는 회사가 쿼터의 한도가 없지만 최소 월급이 3600달러가 넘는 EP를 너에게 발급해줄리 만무하고(사실 상 전화로는 5000달러라고 말씀하셨는데, 다시 서치를 해보니 3600달러 였다), 그렇다면 WP, SP를 발급 해야하는데 이미 많은 외국인을 채용한 회사에는 쿼터가 부족해서 너에게 비자를 발급하기 힘들 수 있다 였다. 사실 해외 취업이 마냥 쉽지 않다는 건 여기 오기 전에도 이미 직시하고 있던 사실이어서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어찌됐던, 여기와서 가장 먼저 면접 본 회사는 유명 캐릭터의 라이센스를 가져와서 제품을 만들고 이를 유통하는 회사였다. 회사가 직접 회사 제품을 온라인 사이트에서 팔기도하고, 다른 오프라인 유통망에 판매하기도 한다. 면접을 본 직무는 E-commerce Executive로 세일즈 관련 데이터 분석하고,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직무였다.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있는 분야인데 면접까지 보게되서 기뻤다. 하지만... 나랑 인터뷰 본 보스는 나의 데이터 분석 스킬과 디지털 마케팅 경험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GA를 다뤄본 경험이 있는지, SEO/SEM 마케팅 경험이 있는지 물었다. 사실 난 조금은 아날로그스러운 ATL/BTL 마케팅 경험과 홍보 경력만이 있을뿐..(털썩)
내가 따로 배워서 어찌어찌 잘 해보겠다한들, 그건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게다가 예상 샐러리를 겁도없이 3500달러로 적었는데(이 당시에는 적당하다고 생각했으나, 싱가폴 업무 경력이 없는 나에게 이정도 금액의 샐러리는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보스는 이걸 보고서는 금액 수정이 필요할 거 같다고 말했다. 나는 잡 포스팅에 나와있는 범위 내에 있는 금액이라고 설득했다. 실제 잡 포스팅에 샐러리 범위는 1800~3500달러였다. 난 맥시멈 금액을 적은 것 ㅋㅋㅋㅋㅋㅋ 적당히 중간 선으로 적을 걸 그랬다. 업무에 필요한 스킬도 부족하고, 예상 샐러리만 높게 적은 나를 뽑을리 없었다. 그 후로 그는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보스가 한국인 직원과 함께 일하고 있었는데, 이 부분이 나를 면접에 부른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함께 일했던 경험을 통해 한국인에 대해 일정 부분 친근감내지 호감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필요한 경력이 일치하는 부분이 가장 컸겠지만.
두 번째 회사는 잡 리쿠르팅 회사였다. 싱가폴에서 일하는 한인 페이스북 그룹(https://www.facebook.com/groups/KoPros/?fref=ts)에서 구인공고를 보고, 한국인을 통해 이력서를 넣었다. 면접보러 오라는 연락을 전화로 받았는데, 듣기에 약한 나는 잘 못 알아 들어서 내가 등록한 잡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온 것으로 착각했다. 알고보니 면접 보러 오라는거였는데... 난 그냥 편한 마음으로 나갔다. 잡에이전시가 나에게 적합한 잡을 추천해주겠구나! 하면서 말이다. 잡 리쿠트링 회사답게 인터뷰어는 잡 리쿠르팅에 대한 경험과 관심을 물었다. 사실 나는 이 분야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고 경험은 더더욱 없었다 (젠장!). 어찌어찌 면접을 마치고 허무함이 밀려왔다. 면접 제의 전화가 왔을 때 말만 잘 알아들었다면 해당 포지션에 열정있는 지원자로 보이도록 연습이라도 해갔을텐데... 이렇게 허무하게 기회를 놓쳐버리다니.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인터뷰어는 인터뷰 말미에 잡 디스크립션을 보내줄테니 그걸 보고 궁금한 게 있으면 메일로 질문을 하라고 했다. 난 그 JD를 보고, 정말 영특한 질문을 해서 날 다시 보게 하고, 잡에 열정이 있다는 점도 어필해야겠다! 생각했다. 플랫메이트와 함께 JD를 보고 질문을 짜내서 메일을 보냈다. 물론 이 포지션에 정말 관심이 있고, 내가 적합하다는 어필도 추가했다. 그러고나서 생각보다 엄청 빠른 회신을 받았는데, 너의 질문에 대한 답을 전화로 해주겠다고 편한 시간이 언제인지 말해 달란다... 망했다. 난 또 제대로 알아 먹지도 못할텐데 ㅠㅠㅠㅠㅠㅠㅠㅠ 내가 회신을 주기도 전에 그녀는 전화를 해왔다. 역시나 드문드문 이해했을 뿐, 클리어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통화 마지막 부분에 다른 지원자 면접을 계속보고 있는 중이니 니가 적합한 지원자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이것도 추측일뿐ㅋㅋ). 이후로 연락이 없었다!!!!!!!!!! 잘 알아 듣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이번주 목, 금 연달아 1, 2차 면접을 본 회사는 광고, 영상 등을 만드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였다. 나의 경력과 꽤나 잘 맞는 부분이 있어서 조금 자신감이 있었다. 여기 온지 한 달정도 되서 영어에도 좀 익숙해지기도 했고, 준비만 잘 한다면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착각이었다^^... operation director의 첫 질문은 자기 소개를 해보라는 것. 준비해 간 한 장짜리 종이를 들이밀며 자신있게 나를 소개했다. 자기 소개 때만 약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을뿐 그는 나에 대해 아주 회의적이었다. 니가 했던 일들과 니가 맡게될 일은 엄연히 다르다는 둥, 우리는 클라이언트의 70%가 공공기관인데 공공기관은 외국인이랑 업무하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는 둥, 너의 아이디어가 싱가폴 마켓에는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둥, 단어 하나로 커뮤니케이션 방향이 달라지는데 니가 그걸 잘 이해하고 일을 할 수 있겠냐는 둥... 부정적인 피드백을 들으면서 속으로는 '이럴거면 나를 왜 부른거니?'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나는 나의 강점을 어필하면서 기회를 달라고 설득할 수 밖에 없었다. 나 엄청 quick learner야 ! 내가 한국 마켓을 개척하겠다, 싱가폴 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의 광고를 이 에이전시를 통해 하도록 영업하겠다 라는 터무니없는 말과 함께 심지어는 니가 나를 그렇게 못 미더워하면 처음에는 무급으로 일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나란 녀석도 참. 그만큼 나는 기회 하나하나가 소중했고, 기회가 있을 때 나의 간절함을 최선을 다해 온몸으로 어필하고 싶었다. 나의 간절함이 통했던 걸까? 2차 면접을 보러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것도 바로 다음 날!
인터뷰 전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1차 면접에서 그렇게 까였는데, 그냥 가면 안될 것 같았다. 고용주의 걱정과 의심을 불식시킬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나는 그 회사의 로고를 이용해 간단한 디자인을 해갔다. 분명 2차 면접에서도 까일 게 분명했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불가능, 어려움을 이렇게 극복하겠다라는 의지와 약간의 위트를 담은 디자인이었다. 인터뷰에 가서 어제와 동일한 방식으로 자기소개를 하려고 하는데, 이미 이건 operation director를 통해 전달 받았다며 그냥 캐주얼하게, 편하게 면접을 보자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엔지니어링 전공인데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됐는지, 그리고 한국인 와이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실 어느 정도 그의 개인정보는 페이스북과 링크드인을 통해 확인하고 갔던더라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의 아는 척을 보탰다. 말을 계속 늘어놓던 그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의 커뮤니케이션 부분이 큰 우려가 된다는 것. 나의 약점에 대해 얘기하길래 준비해간 종이를 들이밀며 설득했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클라이언트와 함께 일하는 광고회사답게 광고주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은 너무나도 중요했다. 게다가 에이전시답게 업무가 빨리빨리 진행되는데 영어를 잘 못하는 내가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런 우려들이 있는데, 이런 본인을 설득해보라고 했다. 뜨헉... 편하게 생각하라며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면 준다면서 그는 자리를 떴다.
나는 막 뭐라고 말할지 급하게 정리를 하고, 다시 돌아온 그에게 나의 논리를 펼쳤다. 나의 얘기를 어느 정도 수긍한 그는... 갑자기 직원들을 데리고 들어와서 인사를 시켜줬다. 나는 합격인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음ㅋㅋ 직원들과 약간의 대화 후 직원들은 나갔고, 그는 나에게 제안을 했다. 난 니가 좋지만 당장의 채용은 힘들다며, 일단 1달 간 계약직으로 일해보고 잘하면 정규직으로 전환을 고려해보는 걸 operation director한테 말해보겠다고 했다. 채용은 전적으로 그가 담당하고 있으니 그의 의견에 따르겠다고. 그러고 지금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다.
과연 나는 취업을 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 걱정이 크진 않다. 안되면 다른 곳에 지원하면 되니까! 정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가 없는 면접이었다.
지금 행복한 삶
앞으로도 이 기업 저 기업에 이력서를 날리며 나의 가치를 PR할 것이다. 비록 직업은 없지만 지금의 내 삶이 행복하고, 내 모습이 맘에 든다. 한국에서 회사생활을 할 때보다 내 자신이 더욱 나다워진 것 같아서, 하나 둘 쌓이는 경험들을 통해 나를 더 잘 알 것 같아서, 정말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서. 이것이 지금의 내 삶이 좋은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