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편입시험과 영어공부
인생의 방향에 영향을 준 몇 가지 사건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2009년, 편입시험 준비
2010년, 편입시험 합격
머리가 좋진 않으나, 타고난 성실함과 끈기로 공부를 꽤 잘하는 편이었다. 딱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고2부터 음주가무에 빠져 방탕한 학창시절을 보냈고 성적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중간, 기말고사 기간에 나와 친구들은 더 재밌게 놀았다. 왜 그런거 있지 않나. 시험기간에 보는 TV가 제일 재밌는 거. 우리는 남들 다 공부할 때 씐나게 놀며 일탈의 짜릿함을 만끽했다. 이렇게 놀았는데 성적이 좋으면 이상한거다. 결국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으로 경기도에 있는 모 대학교에 입학했고, 1학년 때부터 편입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우리나라는 철저한 서열화 사회다. 부자 동네/가난한 동네, 대기업/중소 기업, 명문대/지잡대 등 한 사람들 둘러싼 모든 요소들이 서열화되어 있고, 그 피상적인 요소들을 기반으로 나라는 사람이 평가된다. 사람을 배경으로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나조차도 상대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기본적인 몇몇 정보만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이런 사람인지라,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비록 지방대지만 사실 졸라 똑똑하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라고 설득하는 것보다 차라리 대학을 업그레이드 하는 편이 나를 증명하는 더욱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구구절절 쓸 필요도 없이 처음 입학한 대학에 만족하지 못 한게 제일 큰 이유다. 중고등학교 때 너무 놀아서 이제는 좀 열심히 공부하고 싶었는데, 편입 전의 학교는 학구적이기 보다는 노는 분위기가 더 강했고, 학과가 폐지되어 내가 입학한 다음 해 우리 과의 신입생들은 나와 전공이 달랐다.
편입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반년 정도는 알바와 공부를 병행했고, 반년은 독서실에 다니며 시험에 올인했다. 이 당시 동생도 고3이라 같은 독서실에서 공부를 했는데, 물론 힘들긴 했지만 같이 공부하는 동지가 있다는 게 참 든든했다. 배고플 때 같이 편의점에 가서 라면도 먹고, 분식점가서 떡볶이랑 튀김도 사먹고...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다. 동생에게 심적으로 의지했던 탓이었을까? 수능이 끝나고 동생이 독서실을 떠난 후, 엄청 힘들었다. 외로움도 커졌을뿐만 아니라, 시험이 코 앞으로 다가와서 심적인 부담감이 엄청났다. 이때는 정말 책 넘기는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져서 집중도 안되고, 정신병 걸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런 독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힘들어도 울면서 공부를 했던 것 같다. 20대 초반 태어나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선택한 도전이었고 그 도전을 나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며 내가 얻은 것은 단지 인서울 대학교의 졸업장이 아니었다. 내가 무언가를 원하고, 그 무언가를 얻기 위해 노력을 하면 결국엔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이 도전의 가장 값진 성과였다.
사실 편입 영어 공부는 빡쎘지만 재밌었다. 이런 괴상한 단어나 이렇게 세세한 문법까지 알아야 하나 싶었지만 모르는 걸 하나둘씩 알아가고, 조금씩 익숙해지고, 한편으로는 즐길 수 있게 됐다. 매일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몰입의 즐거움을 느꼈던 것 같다. 아침에 제대로 씻지도 않은 채 눈뜨자마자 독서실로 와서 가장 먼저했던 공부가 영단어를 보는 일이었는데 접두사, 접미사 등 단어의 어근 확인하며 왜 이런 단어가 이런 뜻을 가지게 됐는지 이해해 나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막 한 단어 백번씩 쓰면서 죽어라 외우는 것이 아니었다. 또 예외가 많기는 했지만 문장의 뼈대가 되는 문법을 공부하는 것도 나름 흥미로웠다.
필요에 의한 영어공부였고, 시험도 패스했으나 이는 영어공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을 의미했다. 이를 계기로 영어에 욕심이 생겼다. 영어를 불편함없이 듣고 말하고 쓰고 싶었다 마치 모국어 마냥. 편입공부를 하며 영어에 대한 기본적인 감각을 익혔으니 계속 노력하면 남들보다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2011년, 필리핀 3개월 어학연수
교환학생에 지원하려고 1년간 휴학을 신청했다. 우선 토플 점수가 필요했는데, 이게 참 어려운 시험이더라 ㅠㅠ 편입공부도 잘 했는데 뭐 토플쯤이야 라고 생각했던 건 나의 자만... 오만이었다. listening 과 reading 지문은 더럽게 길고 뭐 지문의 주제도 엄청 다양했다. writing도 멘붕쓰. 토플학원 한두달 다니고 포기했다. 하하핳 왜 이렇게 빠른 포기를 했는지. 별로 간절하지 않았나보다.
그리고 준비한 게 어학연수 였다. 미국이나 캐나다는 어학연수 가는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 부모님께 손 벌릴 수 없는 상황이어서 동남아 국가지만 서구의 영어를 구사하는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가기로 결정했다. 어학원 등록비를 벌기 위해 낮에는 한국장학재단에서, 밤에는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다. 하드코어한 인생아!
어학연수로 난생 처음 밝아본 해외 땅... 영어는 쥐뿔도 못했던 나. 선생님과 1:1로 하루에 5~6시간씩 대화하면서 어느 정도 귀도 입도 트였다. 영어도 영어지만 난 쌤들이랑 간식을 나눠먹는 게 그렇게 좋았다. 익숙하지만 낯선 영어라는 언어를 배우고, 그 언어로 필리피노 쌤들과 대화를 하고, 친해지고, 마음을 나누고. 그 일련의 과정들이 모조리 다 좋았다.
사실 3개월 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영어를 말할 일은 거의 없었다. 영어로 말하는 꿈을 꿀만큼 영어로 말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딱히 기회를 만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후회되는 일이다. 어리고 두뇌가 팽팽했을 때 배운 언어를 좀 더 연습해서 온전히 내 걸로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쨌든 지금 나는 이러쿵 저러쿵 얼렁뚱땅 배운 영어 실력을 가지고 영어권 국가에 와서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다. 비록 얇팍하게 배운 영어이지만 이를 더 활용해서 실력을 극대화하고 싶다. 정말 영어도 못하는 주제에 왜케 영어로 일하고 싶은지, 왜케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워 삶아 먹고 싶은지 모르겠다. 단순히 나의 욕심에 그치지 않으려면 더욱 써먹고 노력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위의 사건들은 지금의 나의 행보에 영향을 준 사건에 틀림이 없다. 스티브잡스 횽님이 스탠포드대 강연에서 말했던 Connecting the Dots이 생각난다. 과거의 점들은 현재의 나를, 미래의 나를 만드는 중요한 연결고리임을 잊어선 안된다. 나는 지금 또 하나의 점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