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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준파파 Feb 03. 2020

34살 서울 촌놈, 시골에 집을 짓다.

집을 지으면 10년만 늙는 줄 알았다. 

군계일학(群鷄一鶴) : 무리 군, 닭 계, 하나 일, 학 학

  - 평범한 사람들 중에 매우 뛰어난 사람

  - 막상 사고보니 내 땅이 제일 좋음. 아무리 생각해도 잘 선택했음.

고장난명(孤掌難鳴) : 외로울 고, 손바닥 장, 어려울 난, 울 명

  - 일은 혼자하여서는 잘 되지 않는 다는 뜻.

  - 집 짓기는 반드시 가족이 함께 상의. 어차피 가족 모두 건축은 초짜지만.

조변석개(朝變夕改) : 아침 조, 변할 변, 저녁 석, 고칠 개

  - 무슨 일을 자주 변경하는 것을 뜻하는 말.

  - 내 마음은 갈대. 이 집도 예쁘고, 저 집도 멋지고. 설계에 다 반영하고 싶은 내 마음.

사고무친(四顧無親) : 넉 사, 돌아볼 고, 없을무, 친할 친

  - 의지할데가 전혀 없음.

  - 막상 집을 지으려니 온통 사기꾼들 뿐. 불안한 결정은 결국 나의 책임.




양평에 땅을 샀다.


우리가 원하는 땅이었다.

1년을 찾아다니는 동안, 어느 땅을 보아도 만족스러운 곳이 없었다. 단 한군데도.


땅을 보러 가는데 큰 길에서 들어가자마자 차가 멈추었다. 어?? 이렇게 가까이??

큰 산을 들어가는 초입이었음에도, 산 같지 않은 그런 곳이었다. 게다가 큰 길에서 골목으로 들어오자마자 어린이집이 딱 버티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걸어서 1분 정도의 거리의 땅이라니. 아기가 4살, 1살인 우리에게 얼마나 딱 맞는 곳인가. 풀이 무성한 땅을 올라가보니 바로 정면에 용문산이 떡하니 보였다. 그 아래는 보일 듯 말 듯 한강도 보였다. 다음지도에서 위치를 찍어보니, 양평 시내까지 차로 5분 정도 걸리고, 양평병원도 7분 정도 거리였다. 조금만 걸어서 큰 길로 나가면 거리에 식당들이 꽤나 있었다. 우리가 땅 보러 갈 때마다 낯설었던 묘지가 보이지 않았고, 축사의 소똥 냄새가 나지 않았다. 보자마자 와이프와 눈빛을 교환하였다.


그렇게 딱 맞는 땅을 발견하고 나니, 1년 동안 돌아다녔던 우리의 고생이 경험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고,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게 해주셨구나 하고 감사의 기도도 드렸다. 그러나, 하나님의 메시지는 그게 아니었다. 앞으로 엄청난 고난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 정도 겁 주었으면 그만 하라는 메시지였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고난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다. 돌이켜보면, 모든 과정 중에 땅 보러 다닌게 그나마 쉬웠다.


집 짓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힘든 과정이다. 경험 많고, 자금도 여유가 있다면 더 낫겠지만, 우리 처럼 아파트만 살아본 초짜가 전재산 걸로 시작하는 집 짓기는 너무나 무모하였다. 시골에 전세집을 얻어 1년 만이라도 살아보았다면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 때는 뭐가 그리 급했는지 모르겠다.


집을 짓기 위해 설계를 해야 했다. 이미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수백 번도 넘게 그리다 지웠으므로, 땅이 정해지면 그에 맞게 적용하면 되었다. 설계사가 할 일은 우리가 그린 그림을 캐드로 표현하고, 허가를 받아주면 그만이었으므로, 설계비를 최소화해야 건축비에 더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무식함의 끝판왕이다.


설계는 기본 설계와 실시설계로 나뉜다. 설계비는 천차만별이다. 군청 근처에 건축사무소 간판을 수 많은 업체가 달고 있어도, 건축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설계사무소는 몇 개 안된다. 기본 설계는 군청에 건축 허가를 받기 위한 그야말로 기본적인 집 구조 정도를 말하고, 실시 설계는 실제 건축업자가 집을 지을 때 사용할 상세도면을 말한다.




자, 집 짓기 전에 선택해야할게 있다.

50평 집을 짓는데 대략 2억 5천 정도 들어간다고 가정해보자.


1. 설계 비용 2백만원 내외로 기본 설계, 집 짓는 업자와 자재 및 세부 컨셉 상의하면서 집 짓기

2. 설계 비용 1천만원 내외로 설계, 집 짓는 업자는 무조건 설계대로만 집 짓기


어떠한 선택을 하겠는가.

이렇게 물어보니 2번을 선택하는게 맞을 것 같다. 우리는 처음 집 지을 때는 1번으로, 두번 째 세번 째 집을 지을 때는 1.5번 정도로 집을 지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설계에 큰 돈을 투자하는게 아깝게 느껴진다. 집을 여러번 지으면 지을수록 설계의 중요성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처음 집을 짓는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벽돌 하나에 돈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내가 상상했던 집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해주는 것 뿐인데, 왜 1천만원이나 지불해야하는. 가장 최상의 시나리오는 설계비를 3백만원 정도에 합의보고, 건축업자가 설계대로 잘 지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상은 가족이 설계사일 때만 가능하다.


돈 많이 준다고 좋은 설계는 아니겠지만, 얼마를 주던지 초보 건축주 입장에서는 설계 단계에서 모든 작업을 마쳐야 한다. 자재 하나 하나, 정확한 콘센트 위치, 벽지 색깔까지 모든 과정을 설계에서 끝내야 한다. 큰 돈이 들어가는 건축 과정에서 1천만원 더 쓰는건 아무 것도 아니다. 설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초보 건축주가 능숙한 건축업자의 말에 넘어가 몇 천만원씩 더 내는 경우는 허다하다. 설계를 완벽하게 짜고, 설계 그대로 짓는지 설계사가 중간 중간 확인하도록 해야 한다. 건축주는 건축업자에게 상대가 안된다. 설계사와 설계 과정에서 싸우고, 확정된 설계를 가지고 설계사와 건축업자가 싸우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고생하지 않고 집을 지을 수 있다.


굳이 군청 근처에 있는 설계사무소에 갈 필요는 없다. 군청 근처 사무소들이 허가를 잘 내준다고 하는데, 적어도 나는 그런 혜택을 받아본 적은 없다. 멀리 있는 설계사무소에 의뢰해도, 다 알아서 해준다. 나는 준공이 나지 않아 공무원에게 문의하겠다고 했더니, 설계사무소에서 그러면 허가가 절대 안난다고 으름장을 놓은 적이 있다. 그런 수준 낮은 설계사무소들이 꽤 있다. 준공이 잘 안나면 설계사무소에 부탁할게 아니라, 공무원을 찾아가 문의하면 된다. 공무원들은 민원인이 찾아오면 대부분 잘 처리해준다. 설계사무소가 나중에 공무원에게 욕먹는다고 하더라도, 경험해보니 그렇다고 우리 건물에 해코지하거나 할 건 없다. 그래서 설계사무소를 잘 만나야 한다. 설계사무소는 내가 고르는거지만, 계약을 한 이후부터는 내가 돈 내는 을이고, 설계사무소가 돈 받는 갑이 된다. 설계사무소가 건축허가와 준공을 받아주기 때문이다. 집 짓는 과정이 1년 미뤄지더라도, 설계를 무조건 제 돈 주고 제대로 받아야한다. 완벽하게 설계가 끝난 후에 집 짓는 업자를 찾아야 한다.


이렇게 신신당부하는 이유는 우리가 처음 지을 때 정반대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설계는 단순히 그림 정도로만 생각했고, 집 지으면서 변수가 많을 것이므로, 건축업자와 상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간단한 예를 들어, 설계에 집 바닥이 강화마루로 되어 있으면 평 당 7만원 정도를 책정하지만, 바닥을 나중에 강화마루로 하겠다고 건축업자에게 말하면 아직 시공 전임에도 평 당 10만원을 책정한다. 그렇다고 건축 업자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과도한 비용인걸 알면서도 준다. 우리는 기본 설계만 가지고 건축업자와 계약하고, 집을 짓는 과정에서 실시 설계가 나와서 건축업자와 정말 많이 다투었다. 평 당 단가로 계약을 하고 나니, 계약하는 순간부터 건축업자가 초초 갑이 되어서는, 나중에 이런 방식으로 시공하자고 얘기하면, "그렇게 해줄게요. 해줘야지 뭐" 이렇게 된다. 내 돈 가지고 내가 집을 짓는데, 자기가 집을 지어준다는 것처럼 주객이 전도된다.


우리는 첫번째 주택은 콘크리트 건물로 평 당 단가 방식으로 지었다.

두번째 주택은 건축업자에게 건축 과정별로 업자를 소개 받아 목조주택으로 지었다.

세번째 주택은 스스로 각 업자들과 개별 계약을 체결하면서 직접 목조주택으로 지었다.


2014년 당시 콘크리트 주택을 평 당 단가로 짓는 경우

대략 평 당 450만원 선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평당 단가라는게 아주 웃긴다. 시골업자를 뭘 믿고 평 당 단가로 맡겼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설계사무소가 있어 집을 대충 지을 수는 없지만, 생각하지 못 한 비용이 계속 들어간다. 우리집 다 짓고 잔금 치른지 한달 뒤 AS로 업자를 만났을 때, 업자가 차를 바꾼 것을 보니 참 씁쓸하였다. 우리를 괴롭힌 대가로 얻은 차가 잘 굴러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평 당 단가 계약은 보통 시골 업자들하고 맺는다. 대략적인 예산을 책정할 수 있기 때문에 건축주 입장에서도 쉬워 보인다. 조금만 건축을 아는 사람과 상의하면 건축 과정은 뻔하다. 그 과정을 쭉 쓰고 옆에 단가를 쓰면 총 합이 나오므로, 사실 하루만 투자하면 내가 원하는 건축 단가를 알 수 있다. 아니면 최소한 상세견적을 뽑아주는 건축업자와 계약을 해야하는데, 조금 더 단가를 낮춰볼려는 마음에 그냥 평 당 계약을 체결하고 만다.




이제 평 당 계약을 절대 맺으면 안되는 이유를 얘기해보자.

우리가 그랬기 때문에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


첫번째, 계약에 없는 추가 비용을 계속 요구한다.


1. 계약 형태

 - 평 당 400만원(임시전기, 정화조, 데크, 조경, 보일러, 조명, 싱크대, 욕실 집기류, 도배, 장판 별도)

 - 산재 보험, 설계비, 각종 세금 제외

2. 포함된 건축 내용

 - 기초 공사(집 바닥에 콘크리트 까는 것)

 - 골조 공사(뼈대 세우는 것)

 - 단열 공사(골조 사이에 스티로폴이나 단열재 넣기)

 - 창호 설치

 - 외벽 마무리(콘크리트 뼈대 바깥에 보기 좋게 마무리하는 것)

 - 지붕 공사

 - 방수 공사(화장실 방수, 옥상 방수)

 - 전기 공사(집 곳곳에 전기 배선 깔기, 조명과 콘센트는 별도)

 - 설비 공사(상수 하수, 보일러 배관, 보일러 및 양변기 설치 인건비만 포함)

 - 방통 공사(바닥에 장판 등 깔 수 있도록 콘크리트로 평평하게 잡아주는 것)

 - 내장 공사(도배 할 수 있도록 벽에 석고보드나 미장 작업)

3. 건축업자가 추가로 부를 수 있는 항목(너무 많지만 주요한 것만)

 - 창호 두께(기본 창호는 추울 수 있다. 두껍게 하려면 추가)

 - 정화조, 지하수, 데크(계약과 별개이지만, 어차피 다른 곳에서 구할 수도 없다)

 - 현관문, 방문(등급이 천차만별이다. 평 당 계약이면 거지 같은거 가져온다)

 - 단열(기본 단열로는 불안하다. 외벽 단열을 한번 더 해야한다)

 - 보일러실 또는 창고 공사(설계에 없는 경우가 많다)

 - 기타 어차피 다른 업자를 불러서 잔공사해야하는 것들


평 당 계약을 하는 정상적인 업자는 아무도 없다. 정확히 말하면, 평 당 계약을 체결하기는 하지만, 세부적인 항목에 대한 협의 없이, 그냥 무조건 지어준다고 하는 정상적인 업자는 없다.



두번째, 평 당 계약에는 수수료가 포함되어 있다.


처음 집을 짓는 분들은 부동산 중개인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으며, 중개사들은 대개 시골 땅은 집 지을 때 민원이 많으니 지역 업자에게 집을 지어야 탈이 없다고 한다. 개코딱지 같은 소리다. 일부 그런 곳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게 집을 짓는데 그렇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전원주택을 짓고자 하는 곳은 이미 상당수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와있다. 솔직히 완전 농가주택만 있는 정말 정말 시골마을에 내 집만 한 채 예쁘게 떡하니 있는 곳에 집을 짓지는 않을 것 아닌가. 어디를 가든 민원으로 인하여 집 짓는 과정 중에 골치 아플 수는 있겠지만, 그 지역 사람이 집을 짓는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거의 없다.

업자들 간의 커미션을 포함해서 소개 받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너무 당연한 것이다. 누가 누구를 소개시켜주면, 뭐 소주 한잔 얻어먹을거 생각하고 소개시켜주겠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참 세상 물정 모르고 시작한 순둥이였다. 어떤 업자가 어떤 업자를 소개시켜 주면 같은 동네 사람들이니 친구 간에 의리인 줄 알았다. 절대 아니다. 대략 소개 받은 공사비의 10% 정도를 수수료로 준다. 서로 정말 친하면 5% 정도 주는 정도이지, 안 주는 경우는 없다. 예를 들어 공인 중개사를 통해 업자를 소개 받아서 평 당 430만원에 계약했으면, 평 당 40만원이 중개사에게 들어가는 돈이며, 이 차이를 메꾸기 위해 공사업자는 공사 과정에서 계속 추가금을 요구하는 것이다. 결국 공사업자는 수수료까지 다 받아내며, 그 돈은 내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다. 또 공사업자가 조경 업자를 소개해주어서 잔디와 나무 포함해서 1천만원에 계약하면, 1백만원은 업자 돈인 것이다. 당연히 조경업자는 나무를 저 저렴한 걸로 바꾼다. 결국 소개 받으면 받을 수록 다 내 손해인 것이다.



세번째, 목돈이 한 번에 나가서 불안하다.


세부항목으로 계약을 짜면 각 공정마다 돈을 줄 수 있다. 각 공정마다 체크하는게 초보자 입장에서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기'로 나누어 돈을 줄 수 밖에 없다. 큰 회사라면 어차피 나갈 돈 미리 주겠지만, 개인업자는 언제 돈을 가지고 튈 지 모른다. 튄다는 얘기는 야반도주 한다는게 아니라, 건축주와 분쟁이 생기면, 에라 모르겠다 하고 공사를 중지해버린다는 의미이다. 이미 돈을 받았기 때문에, 급한건 건축주이지 건축업자가 아니다. 보통 공사 대금은 30%, 50%, 20%로 지급한다. 30%는 계약 당시, 50%는 골조공사 시, 20%는 공사 완료 시이다. 계약 당시 30%는 보통 문제 없다. 기초 공사하고, 골조공사하는데 그 정도 비용은 무조건 들어가며, 기초공사와 골조공사는 어떠한 설계대로 해도 다르게 할 것이 없으므로 화기애애하게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 문제는 50%가 지급된 골조공사 이후이다. 건축주와 업자의 분쟁은 거의 100% 골조공사 이후에 발생한다. 처음 집을 짓다보면 골조공사가 끝나서 집의 뼈대가 세워지면 이제 다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상락식도 하면서 공사업자들 수고비도 주고 술도 한잔 하고 나면, 이제 고생한 결과가 나온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그러나 고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평 당 계약을 하면, 이 때부터 건축업자하고는 다시 안볼 각오하고 싸우게 된다. 위에서 얘기한 "건축 업자가 추가로 요구할 수 있는 항목"을 보면, 모두 골조공사 끝나고 나오는 것들이다. 하루만 현장 안갔다오면 이상한 꽃무늬 타일이 배달와 있거나, 방수를 했는지 안했는지 모르게 후속 공사로 뒤덮여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때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듣게 된다. "해드릴게요. 해줘야지 뭐", "나도 손해보고 할 수는 없잖아요. 설계는 이렇게 나와 있는데, 바꿀려면 추가 비용이 들 수 밖에 없어요"



네번째, 갑과 을이 바뀐다.


어디를 가든 돈을 주는 쪽이 갑이고, 돈을 받는 쪽이 을이다. 계약서도 분명 건축주가 갑이고, 건축업자가 을이다. 그러나 평 당 계약은 계약을 체결하고 돈을 지급하는 순간부터 건축주가 을이고, 건축업자가 갑이다. 건축주는 설계도를 볼 줄 모르고, 설계도에 그렇게 자재 하나 하나까지 자세히 나와 있지도 않다. 한 번은 보일러 상의 하러 갔더니 또 뭐가 기분 안좋은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것에 대답도 하지 않고, 방문 설치를 하고 있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온갖 짜증을 내면서, 옆에 있는 건축주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뭐가 기분 나쁜게 있어서 그런건지, 내가 뭐 안해준게 있는건지, 간식을 조금 사와서 그런건지 눈치가 보여서 2시간을 그냥 공사하는거 구경만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전에 골조공사 한 곳의 콘크리트가 조금 떨어져 나온게 있어서, 내가 무심코 그것을 만졌다는 것이다. 나는 잘 모르니 신기해서 만진 것 뿐인데, 이 사람은 자기 지적하는 것 같아서 한 번 혼내줄 속셈이었던 것이다.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돈을 다 주고 나니, 건축주가 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다. "잘 해주세요" "잘 부탁드려요" "우와. 이렇게 하는거구나. 신기해요" "이제 다 되어가네요. 고생하셨어요. 너무 감사해요". 이런 식의 마음에도 없는 말들로 건축업자를 달래줄 수 밖에 없다. 건축업자를 다룰 무기가 없다. 건축업자는 돈 벌려고 하는 것이다. 다른 무슨 사명감이 있는게 아니다. 돈을 주는 순간 갑과 을은 바뀌고, 우리는 무기 없이 입만 있게 되며, 속은 타들어간다. 



다섯째, AS가 안된다.


우리는 대단한 건축업자와 집을 지은게 아니다. 나중에 좀 친해진 어떤 건축업자가 이런 말을 했다. "대학 나오고, 건축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 전원주택을 짓겠어요. 아파트나 상가 건물 짓던가, 서울에 큰 호화주택을 짓지. 시골에서 전원주택 짓는 사람들은 그냥 집 지어 본 사람들이지, 전문가가 아니예요" 아.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집을 짓는 사람은 다 전문가인 줄 알았다. 건축업자가 자기 팀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 기초부터 마무리 장판까지 다 자기 팀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각 공정별로 다 개인사업자이고, 공사가 있을 때마다 서로 협력하여 일하는 것 뿐이었다. 예를 들어 내가 설비 업자를 개인적으로 불러서 일을 시키면 평 당 13만원인 것이, 서로 자주 불러주니까 그냥 12만원에 작업하는 것이다. 그럼 이 설비 업자는 12만원 어치만 일을 한다. 바닥에 난방 파이프를 깔 때 대충 둘른다던지, 스테인레스 부속 대신 녹이 발생할 수 있는 철을 쓴다던지 하는 식이다. 결국 언젠가는 문제가 발생하게 마련이다. 꼭 이런 형태가 아니더라도 집을 짓고 살다보면, AS 받을 일이 너무도 많다. 땅과 집은 기본적으로 숨을 쉬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또 겨울을 한 번 지나는 동안, 집에 달라붙은 습기들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여기 저기 문제가 발생한다.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일이지만, 건축업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큰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타일이 일부 떨어졌다고 해보자. 우리가 섭외한 타일업자가 있다면 전화해서 얘기하고, 수리하라고 하면 끝난다. 그러나 평 당 업자들은 공사가 끝나면서 이미 건축주와 감정이 상한 것도 있고, 자기도 다른 업자에게 부탁해서 가보라고 해야하기 때문에 꺼려한다. 누구나 자기가 할 수 있는건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해야하는건 비용도 들어가고, 부탁도 해야하기 때문에 잘 안할려고 한다. 결국 AS는 안된다. 그럼 건축업자에게 간절히 부탁하거나, 동네의 다른 업자를 찾아야 한다. 동네 업자를 찾았다고 하더라도, 설비 등 그 안에 구조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면 번거로운 확인 작업을 해야 하므로, 돈이 두 배로 들기 마련이다. 어쨌든 손해보는건 건축주다. 각 공정별로 업자가 올 때마다 명함을 받아 놓으면 조금 낫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나랑 직접 계약한게 아니기 때문에 오지 않는다. 건축업자가 1년에 집을 10개 이상 짓는 큰 손이면 각 공정 업자들이 말을 듣겠지만, 시골 업자들은 1년에 1~2개 정도 지으므로, 각 업자들이 무시하고 마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그래도 통계약을 한 건축업자가 돈을 가지고 도망가지도, AS를 완전 모른체하지도 않았다. 추후 논하겠지만, 몇년이 지난 뒤 타일이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하여, 비용을 반반씩 대고 타일 공사를 다시 하였다. 결과적으로는 합의하에 진행하였지만, 재공사하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길게 평 당 계약을 하면 안되는 이유를 설명한 것은, 아마 지금 집을 지으려고 이 글을 접하신 분은 평 당 계약을 체결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평 당 계약은 세부 공정을 구체적으로 나누지 않고, 그냥 집 지어주세요. 평 당 얼마드릴게요라고 한 경우를 말한 것이다. 세부적으로 다 논의를 끝내 놓고, 계산해보니 평 당 얼마가 될 것 같다는 공사는 아주 정상적인 계약 형태이다. 우리 같은 초보자에게는 방법이 없다. 집은 싸게 짓고 싶고, 동네를 잘 모르니 그 동네를 아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뭔가 찝찝하면서도 믿고 가는 것이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대안은 있다.


고생 안하고 집을 지을 생각하면, 더욱 큰 고생을 한다. 헷갈리는게 있다. 평 당 400만원에 집을 지어주겠다고 하는건, 평 당 400만원의 자유이용권이 아니다. 일단 그 돈을 주었으니, 그 안에서 최대한 요구해서 집을 짓는게 아니다. 평 당 400만원의 계약은 최소한의 비용만 준 것이다. 장담하건데 최소 30% 이상의 예산이 더 들어간다. 자유이용권이 아니다. 입장료일 뿐이다.



대안은 무엇일까. 이미 말했다.


첫째, 설계를 제대로 짜야한다.

둘째, 하루만 시간 내어서 공정별 예산을 짜본다.

셋째, 건축업자와 계약 시 설계대로 그대로 할 수 있는지, 공정별 예산을 짜줄 수 있는지 정확히 상의한다.

넷째, 돈을 절대 많이 주지 않는다. 주더라도 최대한 미룬다.


쉽지 않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세상에 공사업자는 넘치고 넘친다. 전에도 말했듯이, 시골 땅은 같은 지역이라고 공인중개사마다 다 다른 땅을 가지고 있다. 공사업자도 마찬가지다. 지나가다가 보이는 건축 사무실 아무 곳이나 들어가봐라. 모두 다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다. 일이 많은 척 하지만, 실제 건축 경기는 좋지 않기 때문에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업자와 계약을 하든, 위 내용을 사전에 분명히 해야 한다. 초반에 얼굴 붉히는게 낫다. 나중에 힘들어진다. 다시 말하지만, 어느 건축주도 건축업자의 건축주 다루는 노하우를 이길 수 없다.


계약만 얘기했는데도 이정도이다.


앞으로 건축 과정 하나 하나를 다 얘기할려면 조금 힘들기는 하겠다. 진심으로 내가 겪은 수 많은 시행 착오를 다음 사람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는 건축전문가가 아니다. 20년 간 법학만 공부했다. 회베, 전 등등 건축용어는 전혀 몰랐으며, 집에 몽키, 망치 등 기본적인 공구도 없었다. 여러 분의 상황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세번이나 집을 지었으며, 누가 봐도 훌륭한 집을 지었다. 유명한 광고 카피처럼, "야. 너도 할 수 있어. 나도 했어"


해보니 아무 것도 아니다.

안해봤을 때는 산처럼 크게 느껴졌다.


평 당 계약하고, 이상한 사람 비위 맞추느라 쩔쩔 매느니, 사전에 조금만 더 노력해서 당당하게 집 지어보자. "여기 10전만 늘리면 되겠네" "데크 3회베 정도면 될 것 같은데요" "콘크리트 2루베만 더 주문하죠" 이렇게만 얘기해도 놀랄 것이다. 참 별거 아닌 건축용어다. 나는 건축 초보자지만, 건축업자들도 그리 전문가는 아니다.


이제 계약하는 법은 어느 정도 얘기했으니,

다음에는 각 공정별로 건축 과정과 종류, 각 단가 등을 상세히 얘기해봐야겠다. 

너무 글로만 써서 딱딱하다. 

공정별 과정을 쓸 때는 그 동안 찍어 놓은 사진들도 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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