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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준파파 Sep 29. 2020

대체 불가능한 직업,‘아영이 엄마’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나 몰라.”

“영우 구구단 가르치려고.”

“나는 우리 보람이 책 읽어 주려고 연기 전공했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진짜 이상한데, 수학 문제 풀고 있으면 마음이 안심되더라고.”     

김지영이 어린이집 엄마들과 처음으로 어울리면서 나눈 대화입니다. 명문대 나오신 분은 아이들 수학 문제를 풀고 있고, 연기 전공하신 분은 아기 책 읽어 주고 있습니다.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있지만, 이분들의 마음속에 있는 열정과 아쉬움이 모두 느껴져서, 우리 엄마들의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일하게 자살하는 동물은 사람입니다. 인간의 삶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상당히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금전적인 문제, 삶의 가치, 인간관계, 신체적인 고통 등. 이 중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가장 두려운 병은 아마도 우울증일 것입니다.            




육아 우울증 자가진단

1. 갑자기 화가 나면 주체가 안 된다.

2. 식욕이 아예 없거나 폭식하게 된다.

3. 우울하거나 희망이 전혀 없다는 느낌이 든다.

4. 아이에게 관심이 없다.

5. 갑자기 눈물이 나면 쉽사리 멈추지 않는다.

6. 온종일 멍한 느낌이 든다.

7.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의욕과 흥미가 전혀 없다.

8.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거나 계획을 짠다.

9. 불면증이 오거나 갑자기 잠이 쏟아진다.

10. 자존감이 없어지고 스스로를 깎아내린다.






엄마로서의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가. 어떻게 찾을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저는 ‘인정’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삶을 살다가 갑자기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이 새로 생긴 직업에 대한 인정이 실제의 가치보다 높지 않은 것입니다.


스웨덴의 작가 테오도르는 73세의 나이에 삶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에 심각하게 고민합니다.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음을 느끼게 되고, 이제 은퇴할 때가 되었다는 것에 후련함을 느끼면서도 얼마 안 가 우울함을 견딜 수 없게 됩니다. 긴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는 동네에 가서 살아 보기도 하지만, 결국 다시 펜을 잡고 글을 씀으로써 우울함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 스웨덴 작가의 친구인 자동차 정비소 사장님은 손을 다쳐 더 이상 정비소를 운영할 수 없게 되자, 지저분한 작업복을 벗고 멋진 정장 차림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지만, 결국 여러 가지 질병이 찾아와 얼마 안 가 다른 세상으로 가고 맙니다.     


엄마에게 삶을 살아가는 가치란 무엇일까요. ‘엄마라는 직업은 내가 선택한 것인가. 아이를 처음 가졌을 때 수많은 축복과 박수는 아직도 유효한가. 엄마가 엄마로서 오늘을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디에서 가치를 찾아야 하는가. 앞으로도 이대로 살아야 하는가.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이에게 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때가 되었을 때, 나는 주말 드라마에서 보던 그런 엄마로 나이 들어 버리는 건 아닐까’ 이런 고민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웁니다.     


물론 이런 고민 전에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아이의 먹는 것과 변의 상태, 아프지는 않은지 등 육아에 대한 고민과 어제 잠을 못 자 누가 잠시만 아가를 봐주면 낮잠 좀 자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하지만, 이러한 고민 한편에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고민이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으며, 이러한 생각은 지금 내 삶을 지긋지긋한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엄마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주위에서 참 못된 말들을 많이 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출근을 안 해도 되고, 밥 굶지 않고, 따뜻한 또는 시원한 집 안에 있으며,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집에서는 자기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데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하는 거냐는 등의 서투른 말입니다. 제게 더 당황스러운 것은 이런 말씀을 하는 몇몇 엄마들은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고, 다른 엄마들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잘하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특히나 직장을 가진 엄마들과 비교하는 전업 엄마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저는 이렇게 말하고는 합니다. “직장맘은 너무 힘들죠. 직장 생활도 해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니 일이 너무 많죠. 그런데요, 직장맘이 힘들다고 하면 나의 삶은 편해지는 건가요. 직장맘 힘듭니다. 그러나 전업 엄마도 힘듭니다. 각자 힘듭니다. 다른 의미입니다. 그냥 내가 힘든 겁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나의 상황과 다른 맘들의 상황은 다르고, 그 맘들도 모두 각자의 상황에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아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기업 다니는 아빠나, 전문직을 가지고 있는 아빠나, 지금 당장 일이 없어 직업을 구하고 있는 아빠나, 대학원에 학생 신분으로 있는 아빠나 각자가 각자의 이유로 힘든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것을 누구든 어떠한 정도로 살고 있는데, 그 정도의 삶도 아니면서 왜 힘드냐고 한다면, 우리를 (자살을 하지 않는) 다른 동물들과 같은 종으로 취급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기준이 있고, 각자의 고민이 있으며, 각자 다른 힘듦이 있는 것입니다.     


“저 정신과 다녀요. 요즘 사람들 병원 안 다니는 게 더 용하지. 일할 만큼 나으면 그때 연락드릴게요.”     

김지영이 팀장님께 회사에 못 다니겠다고 얘기하는 장면입니다. 빠르게 변화하고, 수시로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모두가 각자의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회적 가치는 참 다릅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다니고, 돈을 벌고, 더 많은 공부를 해서 전문적인 활동을 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박수를 쳐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그러한 삶의 범주에 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또 강요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엄마에게도 적용되어, 엄마가 따스한 집에서, 하루 세끼 굶지 않으면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옛 세대는 엄마로서의 삶이 재조명되고, 언제나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로서의 모습으로 그려지면서, 지금 아이를 키우는 우리는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취급된다면 이 얼마나 모순된 상황인가요.     


엄마로서의 특별한 가치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모두들 내 엄마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처럼,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우리 엄마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붉은 눈시울이어야 합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즉 동물과 다르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지금까지 노력해 온 그 무언가와 다른 엄마로서의 삶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보다 더 큰 희생은 없습니다. 우리는 등 따스하고 배부르면 되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죠. 지금의 엄마들은 동물들과 가장 차별되는 ‘살아가는 가치와 의미’를 바꿨습니다. 엄청나게 큰 희생을 한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엄마 주변의 사람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 주어야 합니다. 결코 나는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분에 대한 존경과 그 용기에 대한 응원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 아님에도 엄마가 자신의 미래와 삶의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주변에서 엄마로서의 삶에 대한 인정을 하지 않거나, 부족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엄마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보듬지 않고, 말로 상처를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직장맘은 전업맘에게 “집에서 애만 키우면 되는데 뭐가 힘드냐”, 전업맘은 “뭐 얼마나 번다고 애가 저렇게 삐뚤어지는데도 직장을 나가느냐” 등으로 말이죠.     



저는 ‘대체 가능성’에 대한 말을 자주 하고는 합니다. 


사회적으로 대체 가능성이 낮을수록 인정받는 직업이며, 대체 가능성이 높을수록 임금도 적고 인정도 받지 못하는 직업으로 평가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누군가의 역할을 다른 사람이 쉽게 대체할 수 있다면 임금을 주는 사람도 연봉을 올려 줄 필요를 못 느낄 것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므로 다른 사람들도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을 특별히 부러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대체할 수 있는 사람들 쉽게 찾을 수 없거나 그 능력을 갖추기 위해 오랜 투자가 필요하다면 임금도 높게 책정될 것이며, 사람들의 시선도 꽤 존경스러울 것입니다.  

   

아영이 엄마, 서아 엄마, 민서 엄마 등. 누가 대체할 수 있을까요. 엄마의 역할은 정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돈이 많다면 살림을 나눌 수 있고, 육아용품을 더 나은 걸로 살 수는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의 역할이 줄어들까요. 절대 아닐 겁니다. 아영이, 서아, 민서에게는 엄마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없습니다. 엄마의 역할의 일부분은 대체할 수 있지만, 엄마의 자리는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 일차원적인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가 밥 주고, 똥 치우고, 재우고 등에 한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체 가능한 일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아영이, 서아, 민서 엄마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따라서 산업적인 측면에서 봐도 상당히 고부가가치의 일입니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직업은 실제로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엄마와 아이의 교감은 살림과 육아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한의 것이며, 그 교감 정도에 따라 아이의 발달 과정은 천지 차이입니다.    

 

주변의 친한 지인 중에 아버지는 꽤 괜찮은 전문직이며, 엄마는 전업주부인 부부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자주 다투었으며, 이 친한 지인은 대체 아내의 역할이 뭔지 모르겠다며 불평을 늘어놓고는 했습니다. 자신은 아침 일찍부터 머리 터지는 회의를 하며 퇴근할 때까지 숨 막히는 인생을 살고 있는데, 자기가 힘들게 벌어 오는 돈을 가지고 집에서 아이 보면서 왜 그렇게 불만이 많은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이 지인은 아내의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대체 가능하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애는 아침 일찍 어린이집에 가서 오후 늦게 오니 어린이집에서 키울 수 있으며, 가사 도우미를 쓰면 한 달에 100여만 원이면 충분하다고 얘기하면서 이미 자기도 육아의 상당 부분을 같이 하고 있으므로 혼자 키우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이는 엄마의 주부로서의 역할에 대한 것만 고려한 것으로, 이 지인은 결국 이혼 후 너무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엄마의 역할은 대체할 수 있지만, 아이에게 엄마 그 자체의 존재, 아내의 존재는 그 역할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함’ ‘대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빠의 역할만 생각하다 보니, 어차피 매일 늦게 집에 들어오는 아빠는 오히려 내가 더 챙겨야 할 게 많은 존재이며, 벌어 오는 돈이 많기는 하지만, 가족이 함께가 아니라면 자신의 벌어 오는 돈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도 아빠의 역할만 생각하여 ‘대체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민진이, 하윤이, 준오 엄마 아빠는 대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합니다. 사회적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은 더 존경받고, 박수받아야 하며,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도 우리가 얼마나 가치 있고, 대체 불가능한 삶을 살고 있는지 잊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누군가 우리 엄마들에게 집에서 애 키우면서 편하게 산다고 해도 분노하지 못한 것이며, 스스로 다른 가치 있는 삶을 살아 보고자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엄마들은 대체 불가능한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 삶의 가치에 대해 인정받아야 합니다. 엄마로서의 삶이 충분히 가치 있고 대체 불가능한 일이며, 자신의 삶이 가치를 흔한 직장 생활에서 하윤이, 민서 엄마로 바꾼 것에 대해 존경을 표해야 합니다.

잘못된 사회 인식 속에서 지금 엄마로서의 삶에 대해 누군가에게 미안해하거나 흔한 직장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사회적 인식의 문제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인식을 가진 엄마가 많아질수록 사회는 변화할 것이며, 내 조카, 내 아이가 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사회는 엄마의 역할이 아닌 엄마 그 자체가 존중받는 사회로 바뀌어 갈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지인은 다시 재결합하여 잘 살고 있습니다. 그 부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돌이켜 보면 참 별거 아니라고 합니다. 당신이 하는 일, 엄마 아빠로서의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해 주고 그 삶이 충분히 가치 있고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서로 얘기해 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입니다.     

그저 남편이든, 시댁이든, 친구들이든 그저 엄마로서의 삶에 박수 쳐주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역할이므로, ‘하윤이, 민서 엄마로서의 삶이 정말 가치 있는 삶이다’라는 것을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될 것입니다.     


엄마로서 살다 보니 단순해졌다고 말하는 엄마들이 많습니다. 많은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지금 당신의 삶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 있는 삶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오늘 하루를 사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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