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준파파 Sep 30. 2020

혼자 아파야 하는 엄마

“팔목 아픈 데 좀 어때. 괜찮아?”

“어, 많이 써서 그렇다니까. 진짜 속상한 건 뭔지 알아? 밥은 밥통이 해주고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는데, 왜 아픈 거냐고 되레 묻잖아. 내가 요즘 별것이 다 속상해. 이상해.”     


영화에서처럼 이야기하는 의사는 없을 겁니다. 사람들의 의식 속에 이러한 생각이 있다는 것을 다소 과장되게 의사가 얘기하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영화를 보고 저렇게 말하는 의사가 어디 있냐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내용의 본질은 의사가 말했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 속에 은근히 “밥은 밥통이 해주고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니까 요즈음 엄마들은 덜 힘들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저는 김지영의 손목보호대가 참 가슴 아팠습니다. 제 아내도 손목보호대를 하고 아이를 안았습니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의 상당수가 손목보호대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 베이지색 손목보호대와 보라색 손목아대를 보면 살짝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래도 아이를 안아야 하는 엄마들에게 참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아프다고 온 환자에게 대놓고 말하는 의사는 아닐지라도, 지금 육아를 하고 있지 않은 당사자들끼리 수군수군하며 많이 하는 말입니다. 아직 철이 들지 않은 몇몇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로, 예전 어머니 때는 아기 키우면서 시장 가서 나물 팔고 농사도 지었는데, 지금은 아기만 키우는데도 뭐가 힘드냐고 말합니다. 아마도 조선 시대나 새마을운동 하던 시절에 사시다가, 갑자기 현대사회로 넘어오셨나 봅니다. 우리는 엄마, 아빠를 상대로 영업을 하다 보니, 참 다양한 상황이 많습니다. 누군가 아파서 예약이 취소되는 경우는 정말 다반사입니다. 엄마가 아파서 예약이 취소되었던 사례를 소개합니다.     




아침 6시에 전화기 진동이 다급하게 울려왔습니다. 이른 아침에 오는 연락이 보통 반갑지는 않은데, 무언가 다급해 보이는 기운이 진동 소리에도 느껴졌습니다. 엄마, 아빠를 대상으로 오랜 기간 영업해 왔던 촉이 작동하였는지, 지금 급한 건이니 전화를 받으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전화 주신 엄마의 목소리가 상당히 다급했으나, 한편으로는 밤새 한숨도 못 잤다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없었습니다. 아가가 아파서 한숨도 못 주무셨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아가가 아프면 엄마는 아예 잠을 자질 못할 텐데. 자도 자는 게 아니었을 거고, 잠은 자는데 꿈을 계속 꾸었을 거야. 젖병을 찾아 헤매거나 열을 재는 꿈, 갑자기 열이 올라 깜짝 놀라는 꿈. 우리도 그러다 깨서 다시 열을 쟀을 때 해열제가 잘 맞아서 열이 내리는 걸 확인하고 나면 밤새 괴롭힌 아가가 대견하고 또 고맙기도 했었지.’     


그러나 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엄마는 임신 중이었으며, 엄마가 감기 걸려 밤새 아팠던 것이었습니다. 임신 중에는 약도 신중하게 먹어야 합니다. 많은 엄마들은 약을 복용하는 것보다는 참으면 괜찮아질 거라며 버팁니다. 혹시라도 감기약이 아가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봐서 그렇습니다. 음식을 잘 못 먹고, 배탈이 나도 구토를 하고 말지 절대 약을 먹지 않습니다. 엄마는 그렇게 아이를 열 달을 품습니다. 밤새 얼마나 아프셨길래 그렇게 목소리에 힘이 없으실까.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차분히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이렇게 강한 엄마 안에서 자라는 아이의 행복한 미래가 그려져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아침에 전화한 이유는 우리 집이 아빠, 엄마가 함께 오는 예약만 받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엄마가 아파서 도저히 못 가는 상황이 되었으니, 아빠와 첫째 딸만 가도 되는지 물어보는 전화였습니다. 부녀만의 여행이 안 되면 포기하고 남편이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 집의 일도 아니고, 나도 갑자기 6시에 일어나서 너무 졸린 데도, 마음이 울컥울컥했습니다. 아직은 해가 뜨지 않은 아침 우리 집 한쪽에도 함께 고생하는 제 와이프와 사랑하는 두 아이들이 자고 있고, 참 조용한 이 시골에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어떤 엄마의 희생을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엄마는 자기 몸이 아픈데 자기 걱정이 아니라 가족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본인이 아파서 못 가게 되었으니, 바쁜 와중에 휴가를 겨우 낸 남편에게도 미안하고, 며칠째 여행 가기만을 기대했던 첫째 아이에게도 너무 미안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이 엄마만의 마음일까요. 엄마도 엄마가 아니었을 때는 어디 아프다고 눕기만 하면 여기저기서 걱정해 주고 부모님의 보호 아래 편히 쉬었을 겁니다. 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남자친구의 걱정과 그가 가져다준 각종의 내 기호식품이 쌓였을 겁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요.     

나는 그저 내 몸만 걱정하면 되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받고 내가 제일 소중한 존재였었습니다. 이제 엄마인 내가 아프니 아픈 게 미안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누가 미안해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남편도 평소보다 더 열심히 도와주는데도 왜 엄마는 이렇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걸까요. 게다가 엄마는 임신 중이어서 여행이 아닌 입원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말이죠. 모처럼 휴가를 낸 아빠와 여행을 기다린 딸 때문에 엄마가 아픈 것이 미안해야 하는 상황이 참 슬프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참 대견하기도 하였습니다.     


엄마는 얼른 입원을 하시고, 아빠는 딸과 둘만의 여행을 와도 저희는 당연히 상관없지만, 그래도 임산부인 엄마가 아프니 오늘 휴가 내신 김에 아빠가 엄마 곁을 지키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가족이 알아서 선택할 일이지만 엄마가 아프면 그 통증과 두려움과 미안함에 혼란스러워하실 수도 있어서 나름의 의견을 드리고, 펜션 예약은 신경 쓰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임신한 엄마의 몸이 이렇게까지 안 좋은데 그까짓 펜션 예약 때문에 신경 쓰실 필요는 없고, 부녀간 여행을 오시든 날짜를 변경하시든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가족은 우리 집에 한 해 두 번씩 벌써 네 번을 다녀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약 취소 뒤 다시 온 날 아빠와 짧지만 깊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삶 속에서 아가도 얼마 전 아팠었고, 아가가 나을 때쯤 아내가 아파서 저도 정신이 없었습니다. 회사에 마지막 휴가라고 낸 것이라 또 휴가를 낼 수 없어 갈팡질팡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도 아침이면 괜찮아질 수 있다고 기다려 보자고도 했고, 저도 은연중에 임신한 아내가 빨리 건강을 되찾기를 바란 게 아니라 계획된 일정이 틀어지지 않기를 은근히 바랐었던 것 같습니다. 딸이 독감으로 4일 정도 입원을 해서 저도 이미 3일 휴가를 썼었고, 딸이 병원에서 힘들어할 때마다 펜션 사진들 보여 주며 힘내서 병 잘 이겨 내면 우리 여기 놀러 간다고 계속 얘기해서 그나마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휴가도 더 이상 못 쓸 것 같고, 아가는 빨리 여행 가기를 기다리고 해서 저랑 첫째만이라도 여행을 갈까 했었습니다. 아내가 사장님과 통화한 후 저에게 오늘 집에 있어 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을 했고, 저는 그 순간 아픈 아내보다 딸을 먼저 생각한 것 같아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 꼭 안아 주었습니다. 저도 어쩌면 아내의 희생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자고. 이것 또한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라고 하고, 가족이 함께 집에서 힘들지만 따뜻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참 따뜻한 이야기였습니다. 따스한 햇볕 아래에서 덩치 큰 아빠 둘이서 너무 작은 스텝2테이블에 쪼그리고 앉아 있어서 더 따뜻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분들은 그 주 주말에 예약하신 분이 취소하셔서 다행히 빈 객실이 생겨서 주말에 바로 오실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엄마도 건강을 되찾으셔서 같이 오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전달할 방법이 없어 고민하다가, 아이에게 퇴원 축하 선물을 주었습니다. 도깨비가 도망갈 수 있도록 잘 이겨 내서, 최고 잘했다고, 작은 인형 하나를 쥐여 주었습니다. 크지 않은 선물이지만 자기가 노력하여 얻어 낸 선물이라는 것에 기뻤던지 우리 집 올 때마다 들고 옵니다.     


엄마들은 아가를 낳으면서 갑자기 엄마라는 생각과 마음, 생활 태도를 강요받습니다. 엄마라는 게 이런 건 줄 알았으면 아가를 안 낳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엄마는 없겠지만, 커다란 아쉬움 정도는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단계 없이 바뀌는 생활이 있을까요. 갑자기 취업을 해서 회사를 갔다고 하더라도, 일단 퇴근하면 다시 자기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데, 이건 뭐 아기를 낳았다고 여기저기서 2~3일 정도 축하받고, 산후조리원에서 힘든 몸을 이끌고 나왔더니, 세상이 나를 다 다른 사람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카페 갔더니 눈치 보이고, 여행 가려니 무슨 극기훈련처럼 짐이 너무 많으며, 친구들은 언젠가부터 나를 안 부르고, 이놈의 부기는 빠질 생각을 안 하고, 먼저 아이를 키워 본 어른들은 무슨 그리 잔소리가 많은지 누굴 만나기가 무섭고, 밥 먹으러 가면 식당 주인 표정부터 살펴야 하며, 모르는 사람이 툭 하고 내뱉는 애엄마 애엄마 소리는 아직도 너무 낯설기만 합니다.


맥주 한잔 시원하게 하면 좋겠는데 수유로 인해 마실 수가 없으니 무알콜 맥주로 자기 자신을 위로합니다. 그나마도 친구는 눈치 없이 차라리 탄산을 먹으라 구박하기도 합니다. 이해를 못 해주는 마음이 섭섭해 주먹이 불끈 쥐어지지만, 특별하게 나온 하루이니 즐겁게 돌아가기 위해 참고 넘기고는 합니다.     

아이가 독감 걸려 나도 간호하다 같이 걸려서 나도 아파 죽겠는데, 모두들 아가만 걱정합니다. 나도 너무 아픈데. 이 모든 일들이 아가를 낳고 1년 안에 다 일어납니다. 아니 6개월 안에 다 일어납니다. 듣기는 했지만 이런 기분일지, 너무나 힘든 일인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남편을 미워하기에는 남편의 삶도 그리 넉넉지는 않아 보입니다.     


다른 집 아가에 비하여 우리 아가는 뭔가 좀 느린 것 같고, 잘 크지 않는 것 같고, 자주 아픈 것 같고, 내가 잘 못하고 있다는 그 죄책감을 떠안기에는 아직 나도 너무 약합니다. 당연한 겁니다. 너무 힘든 게 당연한 겁니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어느 집이나 똑같이 고민하고 있으며, 다정해 보이는 저 가족도 집에 가면 전쟁 같은 하루를 살고 있으며, 일도 육아도 살림도 척척 해내는 것 같은 어떤 엄마도 오늘 아침 너무 눈뜨기가 싫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제가 많은 엄마들과 대화해 보았습니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 없는 엄마 없고, 전업맘이든 직장맘이든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는 엄마 없었습니다. 모든 엄마들이 가정에 미안해하며, 다른 아이들이 잘 크고 있는 것을 보며 고민이 많았습니다.     


결단코 우리만의 일이 아니며, 엄마의 어떠한 잘못도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회 분위기가 이렇고 우리들의 이러한 잘못된 사회 인식에 대한 비판과 저항, 희생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뿐입니다. 남편, 아이에게 미안해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입니다. 차라리 서로 감사하자고 얘기합니다. 갑자기 아빠, 엄마로 살아야 하는 부부는 서로에게, 하필 이 시대에 태어나 아가로서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지만 잘 커가고 있는 아이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첫째 아이에게 제가 계란프라이를 양보하였더니, 우리 첫째가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한 번만 거절하고 이내 가져가서 먹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혼잣말이라는 듯이 하는 말이, “미안해하지 말자.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였습니다. 제가 어지간히 세뇌시켰나 봅니다.     


미안한 마음이 커지면 내 자존감이 낮아져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있지만, 감사한 마음이 커지면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가정이 더 따뜻한 느낌이 들 겁니다. 적어도 우리의 경우는 그렇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아파서 지금은 못 도와주네. 우리 남편이, 우리 딸이 도와줘서 고마워.” 서로 미안해하지 말고, 서로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 보는 것이 어떨까요. 자신의 아픔보다는 가족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는 엄마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대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체 불가능한 직업,‘아영이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