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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준파파 Oct 01. 2020

우리 아가는제가 알아서 잘 볼게요.

                      

“사고 치셨네. 어휴, 진짜 민폐다, 민폐. 집에서 내려 먹지. 저걸 어떻게 치우냐. 정말 맘충. 맘충이 맘충이지 뭐. 야, 저건 진짜 답 없다.”     

맘충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너무 일반화되어 버렸습니다. 맘충, 노키즈존이라는 단어에 사람들은 찬반양론을 벌이고 있으며, 엄마들은 “이 정도면 맘충인가요” 하는 질문들을 하며 맘충이 되지 않고자 ‘맘충 아닌 선’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아예 생성되지 말았어야 할 단어가 이제는 수긍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으며, 그 안에 해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엄마들의 노력이 당연한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처럼 대놓고 사람 앞에서 맘충이라는 말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익명의 공간에서, 또는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모습은 흔히 보입니다. 맘 카페에 맘충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아래와 같이 제목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 할인해 달라고 하면 맘충인가요?

- 아기 낳고 맘충 소리 들을까 봐 겁나요.

- 카페 가서 맘충 소리 안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스벅에서 커피 마시면서 이유식 주면 맘충인가요?

- 18개월 아기 식당에 풀어 두면 맘충인가요?

- 외출해서 기저귀 갈 때 맘충 소리 들을까 겁나요.



우리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참 가슴 찡하게 하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엄마는 어려운 시절 나를 굶지 않게 키워 주고, 언제나 나를 사랑했으며, 내가 아플 때 온종일 내 곁을 지켜줬던 기억도 있고, 언제나 내 편이었던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그리고 지금은 많이 약해지셨지만,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주는, 이제는 내가 더 지켜 주고 싶은 그런 엄마 말입니다.     

지금의 엄마의 모습과 뭐가 다른가요. 지금 우리 아가를 키우는 엄마들은 언제나 아이를 사랑하며, 자신의 경력이나 학력을 모두 포기하고 그저 엄마로서의 모습으로 살고 있으며, 아이가 아플 때면 세상이 다 무너지는 기분이 듭니다. 온종일 아이와 껌딱지처럼 붙어 있으면서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모두 해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경제적 활동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가지고 있습니다.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돌면서, 아가를 키우고 있는 또 다른 엄마의 모습을 보고는 맘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 큰 모순입니다. 아이를 키워 보지 않거나 키운 지 오래된 사람들은 지금의 엄마들이 윗세대의 엄마들에 비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그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만난 수천 명의 엄마들은 윗세대의 엄마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그 엄마의 모습이며, 오히려 육아 이외에 다양한 상황을 멀티로 고민해야 하는 ‘더 대단한 엄마’의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보아 오던 어머니 시대보다 더 양질의 음식을 먹고, 더 따뜻한 옷을 입고, 비 새지 않는 집에서 살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제 반대쪽 성별인 김지영 세대의 요즈음 엄마들은 아이에 대한 사랑은 물론이며, 사회적 존재로서의 여성의 모습까지 갖추고 있어 ‘레벨 업’된 엄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대가 편리해졌습니다. 육아와 살림을 도와주는 장비는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빨래는 세탁기, 설거지는 식기세척기, 청소는 로봇청소기가 하며, 엄마들도 다 운전해서 이동도 편해졌고, 아빠의 육아 참여도도 높아져 윗세대의 엄마들에 비하면 아기 키우고 살림하기 정말 편해졌다고 합니다. 심지어 각종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아직도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집안일이 왜 쌓이는 이해가 안 된대요.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 거고, 청소는 청소기가 하는 거고. 첫째 어린이집 보내면서 7시간이나 시간이 있는데 그사이에 왜 다 못 하냐고요. 시간을 실질적으로 활용 못 한다고, 둘째랑 낮잠 2시간 잔다 쳐도 충분히 다 할 거 같답니다.”

“집안 살림도 집이 뭐 200평에다가 냇가에서 물 길어다가 빨래하시나요? 청소는 청소기가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는 게 살림할 게 뭐 있다고 애까지 어린이집에 맡겨 놓고 놀러 다니나요.”

출처: 네이트판 톡톡



모든 것이 자동화되고 편리한 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해졌나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또한 자동화된 시스템에 적응되어 많은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지 않나요.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는 시대에 살면서, 이제 택시도 나가서 손들고 있지 않아도 내가 있는 곳으로 부를 수 있고, 의료 기술의 발달로 어르신들도 암에 대한 걱정이 많이 줄었습니다. 세금 내겠다고 줄 설 일도 없으며, 은행 문 닫을까 봐 조마조마하며 회사에서 몰래 나와 뛰지도 않습니다.     


모두가 같은 혜택을 받고, 또 같은 부작용을 겪고 있습니다. 같은 논리로 말하면 “와, 우리 할머니는 해외여행 꿈도 못 꾸셨는데 지금 어르신들은 해외여행 참 많이 가셔서 예전 어르신들에 비하면 참 나이들만 하겠어요”라든지, “이야, 나 대학교 때는 핸드폰이 어디 있어. 그냥 누구 만나려면 계속 기다리고, 집으로 전화하면 엄마가 받아서 ‘누구누구 바꿔 주세요’ 했었는데 지금은 연애하기도 편하고 참 살 만한 세상이다”라고 한다면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편리해진 세상이 마치 엄마들의 생활만 더 수월하게 해준 것으로 생각하는 나라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 활동을 하는 남성들의 삶을 더 우월하게 생각하고,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활동의 가치를 낮게 판단하는 가부장적 사회의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이 편리해졌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삶이 조금 더 나아졌다는 것이며, 또 그에 따른 상대적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부작용 또한 모두가 같이 겪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취업이 어려워 대학 시절의 낭만은 개나 줘야 하는 대학생의 탈은 쓴 취업 준비생들, 취업하자마자 결혼하고 아기를 낳아 엄마가 되어야만 하는 우리 또래를 세상이 참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시대가 더 편리해지고 자동화된 것에 대한 혜택을 우리들만 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게다가 더 어린 친구들은 맘충이라는 무서운 단어를 쓰면서 엄마라는 따뜻한 단어를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지금의 엄마들만 유난히 좋은 세상을 만난 것도 아니며, 맘충이라는 모욕적인 언어를 들을 정도로 다른 사람에

게 피해를 끼치며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식당에서 아이가 뛰어다니지 못하도록 조심하고 있으며, 어린 아기가 울면 바로 사람이 없는 곳으로 데리고 나갑니다. 커피 한잔시켜 놓고 아이들이 카페 뛰어다니도록 내버려 둔 채 3~4시간을 앉아 있는 것은 적어도 나는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러한 사례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세대나 조금은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있으며, 이런 사람들 또한 ‘개저씨’라거나 ‘할줌마’라거나 ‘버르장머리 없는 요즘 것들’ 등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어느 시대에나 있는 개별적 사람의 특징이지, 그 집단 전체가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저도 자영업을 하기 때문에 흔히들 말하는 예의 없는 손님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와서 잘못된 행동을 하는 엄마들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있을 거고, 그러니 식당 주인들도 매출이 줄어드는걸 감안하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노키즈존을 시행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예전부터 이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단지 아가를 가졌기 때문이지, 아가와 함께 온 많은 부모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세대나, 어느 분야에나 예의 없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고, 그들의 숫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현저히 적습니다. 극단적인 사례 몇 개로 모든 부모에게 눈치를 주는 이 사회가 옳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누구나 싫어합니다. 육아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괜히 우리까지 욕먹는 게 불편합니다. 개저씨, 할줌마에 대한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어르신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표현을 잘 못 하는 아이까지 함께 있으니, 평소보다 더 신경 쓰이고, 아이와 함께 온 것만으로도 눈치 보는 것이 제가 아는 요즘 엄마들입니다. 아이와 함께 식당에 오지 않은 것이 무슨 특권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이와 함께한 가족에게 눈치를 주는 것은 이 사회의 배려의 대상이 바뀐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한국 ‘아저씨’들이 창피를 무릅쓰고서라도 이성을 잃어버리는 광경을 너무 자주 목격했다. 이것이 일반적인 개저씨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을 신으로 여기며 우주의 중심에 두기 위해 이상하고 잘못된 질서를 남에게 강요하고,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사람 앞에서 막무가내로 구는 사람. 이러한 남성들의 공통점은 이러한 행위의 정당성을 기괴할 정도로 확신하며, 이를 거부하거나 맞서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극심하게 당황하고, 심지어 화를 낸다는 것이다.

출처: “개저씨는 죽어야 한다(구세웅 교수, 스탠퍼드대학교)



“출근길에 지하철 줄 서 있는데 떡하니 맨 앞으로 가서 새치기를 하네요. 한두 번도 아니고 진짜 왜 저러는 걸까요.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줌마도 아닌 할줌마. 그리고 할저씨. 지하철 내릴 때 밀치면서 내리는 사람보다 먼저 타고, 큰 소리로 전화하고, 괜히 시비 걸고. 아침부터 불쾌하네요.”

출처: 네이버 맘 카페 의정부 맘들의 모임




우리 사회가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 대한 배려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들이 카페 말고도 다양한 곳에서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도록 공원, 어린이 도서관 등 공공시설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까요. 은행이 문 닫기 전 줄 가장 뒤에 서 있는 아기 엄마에게 먼저 들어가도록 허락해 줄 수 있는 어른들이 몇이나 될까요. 유모차 끌고 카페에 오는 엄마들을 흘겨보지 않고, 저 엄마가 지금 쉬는 시간이니 얼마나 좋은 시간일까 하며 바라봐 주고, 아기가 깰 수도 있으니 목소리를 조금만 낮추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물론 카페에서 자유롭게 얘기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지만, 아가들 근처에 자리 잡는 날이 몇 번이나 될까요. 그래서 ‘배려(配慮, 짝처럼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함)’ 아닐까요.     


영화를 보면 김지영이 맘충이라는 얘기를 또 듣게 되자, 카페에서 사람들에게 “저를 아세요? 제가 왜 맘충이에요. 제가 왜 벌레냐고요. 저에 대해서 뭘 안다고 함부로 말씀하세요. 제가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사람들을 만났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그쪽이 아세요?”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신과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을 자신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그것을 희화화하여 킥킥대는 현실에 대해 우리 엄마들이 도망가거나 회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이가 있건 없건 예의 없게 행동하는 사람은 그 사람에 한해 비난받아야 합니다. 감히 엄마에게 벌레라는 단어를 쓰는 자들이 창피해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더 당당하게 대응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가와 밥 먹고 있는데 맘충이라는 시선을 보낸다면 “쩝쩝대는 소리 비위 상하니까 조용히 쳐드세요”라고 말씀하셨으면 합니다. 겉으로 당당하기 쉽지 않다면 우리가 민폐가 아니라 저런 인간들의 뇌 속에 ‘충(蟲)’이 가득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속으로라도 당당한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아가와 함께 있는 엄마가 음료를 쏟으면 얼른 도와주는 게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비정상적인 사람들로 인하여, 주눅 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사회가 너무 예민해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에 의한 카페 피해 사례와 노키즈존에 대한 댓글을 보면 마치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문제인 것으로 비치고 있습니다. 노키즈존에 관한 통계를 보면 노키즈존에 대한 찬성 여론이 더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노키즈존 찬반 설문조사>


찬성 66.1%

- 아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않는 부모(79.3%)

- 불편함을 느끼거나 손해 입지 않을 권리가 있음(75.3%)


반대 33.9%

- 어린이와 부모도 원하는 매장에 방문할 권리가 있음(56%)

- 사회적 차별이 될 수 있음(52%)



한국일보가 최근 남녀 성인 9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가운데 57%가 “자녀를 둔 상태 자체를 비난하는 표현을 직접 보거나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 내용을 묻는 질문에는 차마 글로 옮기기 힘든 발언이 쏟아졌다. 일터의 동료 아르바이트생이 우는 아이(4~5세)를 달래는 엄마를 향해 “감당도 못 할 거면 ○지르지나 말던가, 민폐네”라고 했다거나, 지하철에서 돌도 안 돼 보이는 아이가 울자 남성 승객이 “역시 ○충이 문제”라고 힐난했다는 등의 답이다. 응답자 절반 이상이 어떤 행동을 하기도 전에 단지 자녀와 동행하기만 했는데도 직접 비난을 받았거나, 이를 목격했다는 얘기다. 이런 말을 직접 보거나 들은 경험이 남성은 41.6%였고, 여성은 62.7%나 돼 여성의 피해가 훨씬 심했다.

출처: 한국일보, “어쩌다 엄마와 아이는 대한민국 ‘동네북’이 됐나”, 2018.09.08.



저는 노키즈존의 문제는 단순히 통제가 안 되는 아이들이 물건을 부수거나 부모가 과도하게 영업장에 무언가를 요구하는 사례가 예전보다 많아졌다고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10년 전, 20년 전보다 아이를 키우는 양육 태도도 많이 달라졌으며, 카페나 여행지, 외식 시장 등이 급격하게 성장한 것이 자연스럽게 아이들 또한 이런 곳에 방문하는 사례가 많아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금연 문화의 확산으로 식당과 술집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경우가 보편화되면서 술을 파는 곳에 아이와 함께 가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젊은 남녀가 썸을 타는 곳으로 인기가 많았던 캐리비안베이나 호텔 수영장을 요즘 가보면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수영장 운영 측도 아이를 위한 튜브나 키즈페스티벌 같은 이벤트를 통해 아이 손님을 모시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위 통계처럼 요즘 부모들이 아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하는 부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 시장 자체가 크게 확대된 것’입니다. 앞으로 얼마 되지 않아 카페에 아가들이 더 많이 오고, 호텔 수영장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며, 술도 파는 저녁 식당에 아이들이 유튜브를 보고 부모가 술 한잔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 될 것입니다.

    

카페에 자주 가고, 호텔 수영장을 가며, 저녁에 사랑하는 사람과 술집에 가던 세대가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되면서, 본인들의 생활 패턴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는 결혼 전의 자신의 모습이 전혀 달라진 것이 없으며, 카페, 술집 등을 다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아이를 집에 둘 수 없으니, 같이 데리고 다니는 거고요. 너무 자연스러운 겁니다. 노키즈존으로 운영하겠다는 자영업자 입장을 이해 못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당장 영업에 방해가 되니 본인들의 판단에 따라 충분히 운영 방법을 변경하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아이가 있는 부모’가 ‘아이가 없는 성인’과 ‘출산 이외에는 다를 바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이와 함께하는 문화는 너무나 당연히 확산될 것입니다. 내가 아이가 있건 없건, 나는 스타벅스 커피가 맛있고, 인테리어가 잘 된 어두운 포차에서 가까운 사람들과 술 한잔해야 술맛이 나는 건 똑같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아이가 없는 사람이 대부분인 곳에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 당연한 문화가 되면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은 아이를 가진 부모가 아닐 것입니다. 노키즈존같이 극단적인 선택이 아닌 모든 구성원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가 공유되었으면 합니다. 카페 또는 식당에서 제공할 수 있는 아이를 위한 서비스를 알리고, 부모들도 자신들이 지켜야 할 몇 가지 수칙을 지킨다면 모두가 상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더 개인적으로 욕심낸다면 상생의 방향이 조금 더 아이를 가진 가족을 배려하는 쪽으로 흘러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사회의 흐름입니다. 부모가 아가를 데리고 부모가 익숙한 환경을 자주 다니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아기가 생겼다고 그동안 누리던 많은 문화를 버리고, 기존 세대가 해왔던 것처럼 집밥만 먹고, 자판기 커피로 대신하고, 집에서만 술 한잔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겁니다. 우리도 용산으로 호캉스를 가서 이태원 거리를 걸었다가, 사람들이 위아래로 쳐다보는 시선이 너무 불편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결혼 전에 자주 갔었고, 그때도 아가 없이 친구들과의 모임을 갈 때면 가고는 했었던 거리를 아가와 걸었을 뿐인데, 동물원 원숭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장담하건대, 어느 번화가든 점차 아가를 데리고 함께 가는 모습이 많아질 겁니다. 지금의 부모들에게 익숙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이 자연스러운 현상을 문화로 받아들이고, 우리 사는 세상이 조금 더 아기와 가족을 배려해 주었으면 합니다. 맘충이라는 비아냥을 듣지 않아야 되는 사회, 노키즈존이 아니라 아이와 어른이 공존하는 공간이 많아지는 사회가 되고, 아이 때문에 눈치 보는 부모가 아닌 아이가 있어 먼저 배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각종의 수칙을 준수하는 모습을 바탕으로 지금보다 더 당당해져서,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아이가 먼저인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맘충과 노키즈존을 접할 때마다 참 마음 아픕니다. 김지영은 맘충이 아닙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소중한 내 아내, 우리 아이 엄마의 마음이 다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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