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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준파파 Oct 02. 2020

어린이집아, 우리 좀 도와줘

“우리 김 팀장 애가 그 또래 아냐?”

“아니요. 올해 중학생이에요.”

“중학생? 큰일 났네, 큰일 났어. 아이고, 이제 금방 닥친다. 원래 엄마가 안 키운 애들이 그렇게 반항기가 심하잖아. 할머니랑 엄마는 다르지. 애는 엄마가 옆에 딱 있어야 돼. 나중에 어디가 한 군데 잘못돼도 잘못된다고. 성공하면 뭐할 거야. 자식 농사 마치면 다 끝장나는 거지. 걱정된다.”

“좋은 엄마로는 함량 미달이고, 좋은 아내, 좋은 딸은 애초에 포기했고.” 



김 팀장님은 성공한 직장맘처럼 보이지만, 또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각종의 차별과 비아냥거리는 저런 상사의 말투와 사상을 견디며, 버티고 있는 삶입니다. 김 팀장은 좋은 엄마도 아니고, 좋은 아내, 좋은 딸도 아니라는 죄책감에 하루하루가 힘들어 보입니다.     

김지영이 다시 출근을 하기 위해 아이를 돌봐 줄 분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또한 남편의 육아휴직도 시어머니의 성화에 포기하고 맙니다. 세상은 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아 출생률이 최저라고 합니다. 최근의 출생률 관련 논문을 보면, 출생률이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로 둘째 아이를 출산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제 아내의 논문 중 <둘째 자녀 출산 의지에 영향을 주는 요인에 관한 연구>를 보면, 출산율 저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첫째 출산보다는 둘째 출산 의지가 없는 것이 주요인이라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첫째를 낳아 키워 보니 둘째를 낳고 키울 생각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 이유로는 경제적 어려움, 아이를 돌봐 줄 시설의 부족, 아이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 등이라고 합니다.     


우리 세대는 영화에서처럼 비록 남성에게 약간은 더 우호적이었을지 몰라도, 여성 대부분이 공부를 할 기회가 주어지고, 또 대학을 진학하였습니다. 다만, 기억하는 그 시절은 경제적 상황에 따라 대학을 가야 하는 자녀의 수가 한정되어 있다면 남성이 우선인 남성 중심의 인식이 남아 있는 시대였습니다. 대학을 기준으로 보면, 공대나 생활과학대 등 특정한 학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학과의 남녀 성비는 비슷하였습니다. 그러나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는 전 국민이 대학을 나온 직장인이 아닌, 그저 엄마로서의 삶만 강요합니다. 입주 도우미 등을 이용하여 직장을 다니는 직장맘들에게 독하다고 하거나, 그렇게 해서 얼마나 버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국공립 어린이집에 몇 년 대기하여 겨우 들어가거나 유치원에 투표로 당첨된 부모들이 뛸 듯이 기뻐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제가 아이를 키우는 10년 동안 눈에 띄는 보육시설의 변화는 없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 삶의 가장 큰 변화를 주는 단계가 바로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 손님이 가장 많은 시기는 여름 휴가철, 연말, 그리고 어린이집 방학 기간입니다. 매년 1월 초에는 어린이집 방학이 시작되어 3~4세의 아이들이 가장 많이 옵니다. 평일에 오시는 분들 중 아가 어린이집을 보냈다가 일찍 하원시켜 오는 경우도 많으며, 숙박을 한 다음 날 8시경에 돌아가 어린이집을 보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약 일주일간의 방학 기간 동안 아이와 함께 있어야 하는 건 그야말로 전쟁이니까요.     


집에서 아이와 함께 24시간 붙어 지내다가 아기가 처음 어린이집에 가는 날에는 해방감과 함께 걱정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아이를 키워 주시기에는 조부모님이 여건이 안 되시고, 달리 아기를 돌봐 줄 보호자가 없는 보통의 가정의 경우 육아를 가장 많이 도와주는 곳이 어린이집입니다. 우리가 둘째를 가져야 할지 고민하던 시기에 당시 다니던 어린이집 원장님께서 “한서 엄마야, 내가 키워 줄 테니까 하나 더 낳아라”라고 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누구도 우리에게 아기를 키워 줄 테니 한 명 더 낳으라고 했던 적이 없어서, 적잖게 놀라면서도 참 고마웠었던 기억입니다. 이렇듯 이 사회에서 육아를 하는 동안 가장 든든한 동반자는 다름 아닌 어린이집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엄마의 마음을 가장 속상하게 하고, 걱정시키는 곳이 어린이집입니다. 어린이집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지금보다 상당히 줄어든다면 그 어떤 육아 정책보다 부모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왜 엄마가 국공립 어린이집에 우리 아기가 못 가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져야 하나요. 아기를 좋은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수많은 정보를 비교 분석하고, 혹여나 어린이집에 대한 선택이 잘못되었을까 노심초사하는 것은 다 부모의 몫으로 되어 있습니다.     


혹여나 어린이집이 학대가 발생하는 등 문제점이 발생하더라도 다른 어린이집으로 아기를 옮기는 일은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갑자기 찾는 어린이집이 괜찮을 리가 없으며, 그런 악조건에 아기를 보낼 수밖에 없는 엄마의 마음은 너무 가슴 아픕니다. 몇몇 철없는 사람들, 또는 자기중심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집에서 아기와 함께 있으면 되지 왜 어린이집에 보내느냐, 혹 어린이집을 옮겨야 하는 빈 기간이 생기는 동안 아기를 데리고 있는 게 뭐가 힘드냐고 말하곤 합니다. 항상 보면 남의 일은 쉬워 보이고, 말로 하면 참 별거 아닙니다. 별거 아닌 본인들의 삶은 힘들어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말이죠.     




우리도 갑자기 치솟는 아파트 전셋값을 견디지 못해 이사를 가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사를 가야 하는 두 달 사이 첫째 아이를 봐줄 어린이집을 못 구해 쩔쩔매다가, 한 아파트의 가정형 어린이집에 겨우 한 자리가 나서 다녔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사를 가서 주변 엄마들의 얘기를 들어 보니 아이를 잘 돌보지 않으며, 가족들이 모두 선생님으로 이름만 올려놓고, 실제 보육은 1~2명의 선생님들이 전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3개월 뒤에 다시 이사를 가게 되어 다행이었지만, 그 3개월 동안 얼마나 시달렸는지 모릅니다. 알 수 없는 상처들은 계속 생기고, 아이를 찾으러 가면 아이를 데리고 어딘가에 가서 어린이집 안에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며, 원장하고 둘이서 대형 마트에 갔다가 다른 엄마들이 연락해 줘서 찾아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전셋값 때문에 이사해야 하는 우리 자신을 탓하고, 더 좋은 어린이집에 미리 신청 못 한 것에 대한 미안함에 참 힘든 나날을 보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게 어떻게 우리의 잘못인가요. 2년 사이에 40% 넘게 오르는 전셋값이나, 쫓겨나다시피 한 곳에서는 어린이집이 없는 이런 기현상을 30대 초반의 어린 부모가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건 이 사회가 얼마나 비정상적인 구조인지 말해 줍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둘째 출산은 남의 얘기에 불과했습니다. 아예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미숙아, 그러지 마. 네가 그 꽃다운 나이에 오빠들 뒷바라지한다고 청계천에서 미싱 돌리고, 월급 따박따박 받아 올 때마다 엄마는 가슴이 찢어졌었어. 너무 착한 내 딸. 너 미싱에 손이 그리돼서 왔을 때 엄마 가슴이 얼마나 찢어졌는지 몰라. 그때 마음껏 안아 주지도 못하고, 고맙다는 말도 못 해 미숙아, 미안하다. 지영이 힘들어도 다 알아서 잘할 거야. 강단 있게 키웠잖아.”     


영화에서 엄마가 지영이 일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했을 때 지영이가 할머니로 빙의되어 한 말입니다. 보통의 가정이라면 그 엄마도 얼마나 고생하시면서 사셨는지 알기 때문에 내 아이를 맡기면서, 나로 인해 또 고생하시는 걸 보기 원하지 않습니다. 아직 환갑이 되지 않아 경제 활동을 하는 엄마들도 많을 겁니다. 또 친정어머니 또는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겼을 때 서로 다른 육아 방법으로 부모와 자식 간에 다투는 경우도 많습니다. 육아로 인해 조부모님과 같이 사는 경우에 장서 간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이 심각하다고 합니다. 장모님이 사위의 직장 생활이나 퇴근 시간 등 사위의 모든 일에 관여한다는 가정, 남편이 먼저 퇴근하면 아이를 돌보는 게 아니라 장모님이 알아서 육아하겠지 하고 바로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는 가정, 너무 어린 아이에게 초코 과자를 자꾸 먹여 고부간의 다툼이 많다는 가정 등 부모님이 아이를 돌봐 주시는 경우 발생하는 다툼의 소지 또한 무궁무진합니다.     


저는 이처럼 육아 환경에 따라 여러 갈등이 발생하는 상황을 세 가지 정도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올바른 보육기관 정책의 부재, 둘째는 아이는 무조건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잘못된 사회적 인식, 셋째는 적절한 육아 도우미를 활용하기 어려운 경제적 상황 등입니다.     


우선 첫째로 올바른 보육기관 정책의 부재입니다. 저는 펜션을 하는 것 이외에도 정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업무를 약 10여 년간 하고 있습니다. 보육 정책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정책적으로 불가능한 너무 터무니없는 제안은 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서울에서 양평에 내려와 보니 어린이집 대기 순서가 상대적으로 적었고, 대부분의 어린이집에 정원이 있는 전원주택형 어린이집이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마다 안심이 되었습니다. 도시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정된다는 말입니다. 다만, 여기도 맞벌이 가정이 많기 때문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육 시간에 대해서는 불만이 상당합니다. 게다가 작년에는 보건복지부의 보육 정책이 변경되어서, 아이를 4시 전에 데려가야 하는 가정과 4시 이후에 데려가는 아이를 구분하여 보육 비용을 차별화하는 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아이를 몇 시에 데려갈지는 부모의 선택이어야 하지, 정부에서 정해 주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아이를 많이 낳고, 맞벌이는 해야 한다고 하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4시 전후에 찾아가라는 건 얼마나 모순된 바람인지요. 정책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집에 있는 엄마들이 왜 아이를 늦게 데려가. 맞벌이도 아니면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건 아닌지 의심해 봅니다.     

기본적으로 퇴근 시간이 명확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들의 하원 시간이 최소 8시는 되어야 합니다. 그 안에서 일찍 데리고 오든지, 야근 때문에 늦어지든지 부모의 선택에 따라 알아서 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보육교사의 처우 개선이나 복지, 보육시설 개선은 당연히 뒷받침되어야 할 것입니다. 보육교사의 현재 월급 수준은 너무 낮으며, 노동의 강도에 비하여 근무 시간 단축이나 기타 복지의 문제도 심각합니다. 보육교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 보육교사의 자격 취득을 더 엄격히 하는 한편, 보육교사의 처우를 대폭 개선하여, 질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보육 정책을 통해 보육 시스템과 보육 환경을 개선해야지, 어린이집 문제가 이슈될 때마다 처벌에 급급한 지금의 모습은 참으로 어리석어 보입니다. 대대적인 보육기관의 확대, 보육교사의 처우 개선을 통한 질적으로 우수한 보육교사 양성, 부모 중심의 보육 시간의 자율화, 실시간 CCTV 의무화 등 보육시설의 개방, 보육 지원비를 부모에게 직접 지급해서 부모의 어린이집 선택권을 강화시키는 방안 등이 기본 방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모의 눈에는 보이는 정책들이, 그저 시행되는 척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다음으로, 아이는 무조건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입니다. ‘꼰대’는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학생들의 은어로 시작되었으나, 최근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됩니다. ‘육아’와 ‘교육’은 그 결과가 어떻든 기성세대는 거의 모두가 경험한 분야입니다. 여기서 ‘결과가 어떻든’이라는 말은 꼭 경제적으로 성공한 삶이 아니더라도 그 아이가 ‘부모가 원하는 방향대로 잘 커주었는가’라는 의미입니다. 아마도 질문을 조금 바꿔서 기성세대에게 “본인의 아이가 본인이 원하는 방향대로 자라 주었습니까”라고 물어본다면 대부분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겁니다. 상식적으로 어떠한 방법론을 적용해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방법론을 바꿔서 다시 적용해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육아와 교육을 경험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실패한 같은 방법을 적용하고자 합니다. 권위적인 사고를 가지고 아랫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육아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나 오래전에 육아를 해본 기성세대의 입장은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 “엄마들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 놓고 편하게 지낸다” “아이 늦게 찾아서 뭐하려고 하느냐”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간단한 문제를 하나 제시해 보았습니다. 아빠와 엄마가 6시에 퇴근하고, 둘이 오랜만에 외식하면서 간단히 술도 한잔하고서, 8시에 아이를 데리러 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FGI(Focus Group Interview, 집단 심층면접)를 통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육아 중인 부모는 대단히 반색하면서 “부부간에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행복할 것 같다” 등의 긍정적 반응이 대부분이었던 반면, 육아를 하지 않는 집단에서는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휴가를 내고 낮에 만날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아가 재우고 얘기하거나 부모님에게 잠깐 맡기면 되는 것 아니냐” 등의 답변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조부모님뿐만 아니라 미혼인 젊은 층에서도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겪어 보지는 않았지만, 잘못된 교육과 사회 분위기로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젊은 꼰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아이를 사회가 함께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육아의 1순위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사회가 아이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부모와 아이가 우선인 사회, 아이가 부모와 떨어져 있어도 안전한 사회, 아이의 보육은 부모 외에도 보육시설의 역할이 커야 한다는 인식 등이 뒷받침되어야 육아의 1순위인 부모가 아이에게 더 사랑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제발 우리 때는 혼자서 아기 넷을 키웠다느니, 밭 갈다 애 낳았다느니, 요즘 엄마들은 아기 키우기 쉽다느니 이런 고리타분한 얘기가 이 사회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회 인식의 변화가 더 나은 정책을 만드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셋째로 적절한 보육 도우미를 활용하기 어려운 경제적 상황입니다. 보육 도우미, 육아 도우미, 베이비시터 등으로 불리는 분들의 한 달 월급은 평균 200만 원 내외라고 합니다. 입주 5일 교포분들이 이 정도이며, 한국분으로 구할 경우 250만 원 정도 한다고 합니다. 보통 직장인의 연봉으로 계산하면 약 3,500만 원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엄마가 출퇴근을 하면서 소요되는 경비는 계산하지 않고, 순수하게 육아와 간단한 살림 정도만 도와주는 비용입니다. 게다가 아이를 육아 도우미에게 맡길 경우 아이에 대한 미안함, 타인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에 대한 불안함, 아이를 맡긴다는 것에 대한 주변의 불편한 시선 등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오롯이 부모의 몫입니다. 경제적인 것 외에도 감당해야 할 것이 너무 많으며, 결국 ‘이렇게까지 해서 회사에 다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마저도 대기업이나 전문직에 종사하여, 연봉 5,000만 원 이상을 받을 수 있는 능력 있는 엄마에 한 해 해당하는 얘기입니다. 대략적으로 우리 시대에 수능 시험 10% 안에 들어야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조부모의 경제력, 대기업 취업률 기타 등등 고려 요소를 따지지 않더라도, 연봉 5,000만 원 이상의 타산이 맞는 직업을 가진 엄마의 수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은 쉽게 나옵니다.     

현실적으로 보통의 부모에게 아이를 육아 도우미에게 맡기고, 맞벌이를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저 누군가 그렇게 하고 있다면 더욱더 아이에게 미안해지고, 나 자신에 대한 자책만 늘어날 뿐입니다. 이렇듯 사회의 구조적 문제임에도 우리 사회는 부모 스스로의 능력 부재라며, 부모 자신의 탓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놓고 집에서 아이를 키운다면서 편하게 사느니, 맘충이니 하는 참담한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부모의 잘못이 아니며, 아끼고 아껴도 조부모님의 도움 없이는 집 하나 살 수 없고, 아이를 키우면서 맞벌이를 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부모에게 선택지가 없게 해놓고서는, 유례없이 비난받고 있는 요즘의 부모들에게 이 사회가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엄마가 도와줄게.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엄마의 말이 참 가슴 아픕니다. 이런 사회를 만들려고 열심히 일한 만큼 세금 내고, 나라에 희생한 것이 아닐 텐데요. “네가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아가 때문에 일을 못 해. 여러 보육기관에 알아보자. 다들 그렇게 하더라” 같은 대화가 당연시되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아이를 부모가 끼고 키워야 한다는 생각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부모가 자신의 꿈을 향해 일하고, 자기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 아이에게도 도움 된다고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선택을 하든 그것은 그 부모의 결정이고, 우리 사회는 그것을 존중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선택이 올바로 실현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을 해주어야 합니다. 누구나 육아를 해봤다고 해서 자신의 방법이 옳다고 강요하지 않으며, 부모가 주도적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죄책감에 시달리는 현실이 하루라도 빨리 개선되길 희망합니다.     



죄책감 갖지 마세요. 엄마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의 잘못이 아닙니다. 



당장 사회가 우리에 대한 시선을 바꿀 수도 없으며, 나랏일 하시는 분들이 진정으로 육아맘들을 위한 정책을 낼 것 같지도 않아 보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민식이법 하나 통과하는데도, 부모들이 울면서 부탁을 해야 하는 현실이니까요.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습니다. 모든 가정이 각자의 사정이 있고, 각자의 선택이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어떠한 선택도 최선의 선택이 될 뿐, 최고의 선택이 될 수는 없습니다. 국공립 어린이집에 보내도, 육아 도우미를 구해도, 직장을 포기해도, 어떠한 선택을 하든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최선의 선택을 하셨습니다.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보다는, 선택한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오늘 하루도 육아맘의 선택이 옳았다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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