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페낭 한달 살기 7
이제 제법 여기 날씨가 익숙하다.
우기가 살짝 지난 11월의 페낭은, 낮에는 쨍하다가 한번씩 비가 내리고,
밤에는 꼭 한번씩 비가 내린다.
아침은 어제 내린 비로 상쾌한 기운이 돈다.
오늘도 우리의 아침은 로띠다. 혹시나 다른걸 먹을까 싶어서 준이에게 아침으로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어봤다. 대답은 간단하다. "로띠'. 우리 준이의 별명은 로띠보이가 되었다. 3링깃 사나이다.
아침 식사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엊그제 미니가 한번 버렸는데 그냥 버리면 된다고 해서 궁금했다. 우리가 펜션을 해서 그런지, 쓰레기 분리수거에는 아주 빠삭하다. 양평은 정말 봉지 하나만 플라스틱 쪽에 들어가있어도 바로 딱지가 붙는다. 환경을 생각한다는 면에서는 솔선수범해야겠지만, 예전에 괌에 갔을 때 모든 쓰레기를 그냥 한 쓰레기통에 넣어버리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어서, 사실 쓰레기 분리 수거 하면서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고 보면 되겠다.
여기 쓰레기 버리는 방식은 정말 특이하다. 분리수거를 안한다. 우리는 플라스틱, 라벨 없는 페트병, 캔, 병, 비닐, 스티로폼 등 모두 분리수거를 해야한다. 환경을 생각하면 물론 분리수거를 해야하지만, 이런 나라들에서 그냥 쓰레기 버리는거 보면 참 허무하다. 일반쓰레기, 각종 플라스틱, 음식물 쓰레기 등등 구분이 없다. 그냥 아무 봉지에 넣어서 지나가는 쓰레기통에 버리면 끝. 쓰레기 봉투도 더 없이 싸다. 쓰레기 자주 버리는거 좋아하는 미니에게는 안성맞춤이다. 그 날 그 날 나온 쓰레기를 봉투에 다 넣고, 아침에 나가는 길에 휙 던지면 끝이다. 실로 황당하다. 설마 저걸 또 누가 가져가서 분리수거를 할려나. 우리 어린 시절에 동네마다 있던 철이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쓰레기통에 나 넣고, 밤마다 그냥 태워버렸던 때가 생각난다.
하여간. 말레이시아 쓰레기 버리는 방법!!
1. 다 넣는다.
2. 쓰레기장에 통째로 버린다.
3. 갈 길 간다.
오늘 아침도 쓰레기를 버리고, 로터스로 향한다. 이제 아침 코스가 되었다. 오늘은 로터스 1층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보기로 하였다. 로터스 1층에 스타벅스, 맥도날드, 버거킹, KFC 등 프랜차이즈가 여러개 있다. 자연스럽게 무단횡단을 하여 스타벅스로 갔다.
모닝셋트가 9링깃이다. 스벅 아메리카노와 달달한 도너츠, 또는 간단한 샌드위치다. 아니 우리나라 스벅은 왜 비싼거냐고. 인건비와 월세?? 아니 그럼 월세 싼 곳은 가격이 더 저렴해야지. 스벅에서 먹는 아침식사가 2,700원과 7천원은 너무 큰 차이 아닌가. 정말 이럴 때 보면 말레이시아 물가는 최고다. 로터스에서 코카콜라 1.5L도 3링깃이면 산다. 우리는 2500원은 줘야하는데. 참 내.
아.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말레이시아 문화. 메뉴를 적게 시키거나, 심지어 둘이 하나만 시켜도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는다. 서로 모두 그러려니 한다.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아무 것인 우리나라와 정말 다르다. 우리도 더 여유를 가져야지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오랜만에 아내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침의 여유가 아내에게도 참 따뜻한 시간으로 보였다. 삼삼오오 학부모들이 모여 들어 커피 마시는 모습도 신기했다. 근처에 국제학교가 있다고 들었는데, 한 번 구경 가보아야겠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너무 늦은 것 같아 로터스에 가서 장을 봤다.
재미난 에피소드 하나. 여기 사람들이 나에게 꽤 친절함이 느껴진다. 진심으로. 핸드워시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어느 쪽이라고 가르쳐주고 마는게 아니라, 핸드워시 있는 곳까지 데려다 주었다. 가면서도 계속 웃으면서 자기가 착각했다고, 여러 대화를 건넸다. 계산하려고 줄을 서는데, 모두 다 줄이 너무 길고, 줄이 거의 없는 쪽이 한 곳이 있었다. 나는 한국처럼 소액 계산줄인 것으로 알고 줄을 섰더니, 멀리서 미니가 거기 아니라고, 자기도 아까 거기 섰었는데 다른 곳으로 가라고 했다면 옆 줄로 가라고 했다. 멤버쉽 결제하는 곳이었다. 알겠다고 하고 옆줄로 가려고 하는데, 캐셔가 나를 부르면서 계산해줄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미니가 개빡치면서도 웃음이 나오는게 보였다. 미니에게 인정 받았다. 동남아에서 통하는 큰 키와 무쌍. 나의 매력포인트였다.
점심은 항상 지나다니기만 하던 동생에서 밥을 먹었다. 정확한 명칭은 Tong Seung 이지만, 우리는 자주 가다보니 그냥 동생으로 부른다. 깔끔하고, 평도 좋았고, 가격도 괜찮았다. 그 놈의 가격. 진짜 미니 말처럼 왜 그렇게 가격을 신경쓰는지 모르겠다. 주문할 때도 준이는 11링깃, 나는 9링깃 짜리를 먹었는데, 속으로 "저 새끼 꼭 비싼 것만 먹어요"라고 생각했다. 11링깃이 더 맛있어 보이긴 했는데, 뭐 별 차이 없는데 굳이라고 생각했다. 2700원짜리를 주문하고, 3300원짜리를 주문한 아들에게 눈치 주는 꼬라지라니. 웃겨서 말도 안나온다. 정말 찌질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먹은 음식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다. 깨끗하고, 가격도 적당하고,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었다. 고기를 볶거나 간장에 졸여서 볶음밥에 얹어주는 형태인데 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였다. 앞으로 점심은 그냥 여기서 먹으면 대충 만족할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참새방앗간 들르듯이 365 마트에 들러서 물을 샀다. 간단한 물건 사는건 365마트가 짱이다. 동네 마트도 이제 단골이 되어 가고, 점점 현지인이 되고 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요즘 우리의 가장 재밌는 취미인 상가 둘러보기가 시작되었다. 여기 저기 상가를 다 쑤셔보았다. 미니가 맥주 한잔 해보자고 해서, 아이들을 들여보내고 우리는 다시 나왔다. 우리가 목표로 한 맥주집. 약간 카페 분위기이긴 한데, 맥주도 괜찮아보였다. 그 전에 가격 알아보려고 잠깐 들린 집은 말그대로 바 느낌이었다. 그저 메뉴가 궁금했을 뿐인데, 우리에게 너무 가깝게 다가오는 바 직원은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우리는 얼른 나왔다.
우리가 간 맥주집은 9시에 문을 닫아서 딱 50분이 남았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문화라서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술 값이 비싸기도 하지만, 술집 자체가 없고, 일찍 문을 닫는다. 그러고보니 음주 단속도 못봤다. 그냥 전국민이 술을 잘 먹지 않는 듯 하다. 정말 신기하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싶어도 마실 곳이 없다. 테이블에 앉아 QR로 맥주를 주문했다. QR 찍고 그냥 주문하면 되니까 더 없이 편했다. 일단 맥주만 2개 시켰다. 전혀 눈치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옆 테이블은 케이크 하나만 시켜서 나눠먹고 있다.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안주 하나만 시켜도 15000원이라서, 맥주만 마시기도 좀 그렇고, 안주를 시키면 가격이 부담되었다. 여기서는 맥주만 시켜도 되지만, 감튀를 하나 시켰더니, 겨우 10링깃이었다. 엄청 깔끔하고 맛있게 나왔다. 헐. 이게 3천원이라니.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다. 천천히 얘기하면서 먹는 맥주의 맛은 참 좋다. 가벼운 술한잔은 부부의 대화를 편안하게 해주고, 서로의 고생을 달래주고, 서로의 발전가능성을 응원해준다.
설레는 마음으로 대화하고 다시 숙소로 복귀하였다.
내일은 현지 교회를 가 볼 예정이다.
여행이 아닌 한달살기의 묘미는 일상을 살아보는 것이다.
현지 교회를 가서 분위기도 보고, 오는 길에 페낭의 가장 부촌이라는 스테이츠 퀴에 가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