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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닌그라드 Jun 11. 2022

눈이 내린다

봄이 다가온다

 눈이 내린다. 하염없이, 그리운 무언가가 마음에 내리듯 한 송이씩 길을 덮는다.


 난 눈을 참 좋아한다. 반짝거리는 하얀 눈송이를 좋아했다. 사금사금 내리던 눈은 어느새 세상에 흰옷을 입혀버렸다. 마치 다른 나라의 공항 밖을 나온 것처럼, 낯선 거리의 모습들이 일상을 꾸며준다. 똑같은 거리가 하얗게 물들고 터벅터벅 걷던 걸음은 뽀득뽀득 괜한 들뜸을 안게 된다. 한송이 한송이 내릴 때는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 저리 쌓인 눈에 평범하던 일상의 배경이 바뀌어 있다.


 눈은 항상 내릴 때만 예쁠 뿐 그다음 날이 되면 골칫덩어리가 된다. 꽁꽁 얼어버린 길은 우리의 엉덩이를 가만 놔두질 않고, 노변에 눈은 그 곱던 흰색은 다 어디 가고 거무튀튀 해져서 한 구석에 쌓여있다. 국군 장병들은 선배들이 그랬듯이 오늘도 아름다운 눈에 자신들이 처한 처지를 투영하여 온갖 화풀이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눈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마음속 간직만 하던 몽글몽글한 감정이 피어난다. 눈썰매, 눈사람, 화이트 크리스마스, 겨울의 낭만에는 모두 눈이 있었다.


덮수룩한 눈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친구가 나에게 해준 말이 하나 있다.

걱정은 눈 같아서 안 치워주면 계속 쌓인데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했다. 내가 아는 내 친구는 이렇게 멋있는 말을 할 수 있는 아이가 아니다. 분명 어디서 주워들은 말이겠지. 하지만 그 말은 나에게 먼지로 가득 찬 어두운 생각의 창고에 전등을 켜준 것 같았다.


 그렇다. 눈을 안 치우면 쌓이듯 걱정도 쌓인다. 한송이 한송이 흩날릴 때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어느새 걱정은 나의 마음을 빈틈없이 메워 내렸다. 쌓인 걱정은 바닥에 꽁꽁 얼어붙은 빙판이 되어 우리를 노리고 있다. 얼어붙어있는 걱정 위를 조심스레 걸어 다니다 결국은 대차게 엉덩방아를 찧게 되겠지. 그것이 우리가 제때제때 빗자루로 눈을 치우는 이유다.


 한 번은 강원도에서 눈이 말도 안 되게 내려 걱정했던 일이 있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자 소방서에서 눈을 치우는 거대한 차가 나타나 길을 단숨에 뚫어주었고 차들은 익숙한 듯 열린 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처럼 혼자 감당하기 힘든 걱정, 근심들은 때로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마음의 일손을 모아 함께 쌓인 눈을 치워 나간다. 때로는 내가 품고 있는 걱정을 너무나도 간단하게 그리고 명쾌하게 해결해 버리는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의 도움으로 오늘도 우리는 조그마한 마음의 안녕을 얻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걱정이 참 많았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에 대해 걱정하며, 걱정에 의한 불안함으로 잠 못 이루는 유약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나하나 작은 눈송이로 쌓이던 걱정은 어느새 폭설이 되어 내 마음을 덮었고 그 속에서 불안해하며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가 되기 일쑤였다. 한때 미래를 향한 두려움이나, 근거는 없지만 너무나도 강한 걱정 따위에 휩쓸릴 때면 그저 눈과 귀를 막고 눈보라를 외면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외롭게 그리고 춥게. 그렇기에 항상 나는 걱정을 이겨내는 것이 매일의 과제였고, 기도의 제목이었다.


 인생에선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폭설이 내릴 때도 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 속에서 그저 멈춰서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때는 눈을 치울 수 있는 방법이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봄이 와야 한다.

 감당할 수 없이 쌓인 눈을 치울 엄두조차 내지 못할 때, 그 눈은 스스로 녹아야 한다. 겨울이 지나가야 한다. 나는 불안에 파묻혔을 때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고, 세상은 날 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곳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내가  일은 일상을 다시 사는 것이었다. 아니 일상을 살아내는 것이었다. 해야  일을 하고, 봐야  사람들을 보고, 살아내야   하루를 살아냈다. 걸을때 풍경이 바뀌고, 살아가야 시간이 흐른다. 그렇게 살아갈  불안으로만 간직하던 걱정들이 해답을 필요로 하는 삶의 질문으로 바뀌었고 나는 그것의 답을 찾기 위해  삶을 살아냈다. 마음속 얼어있던 감정에 균열이 가고 쌓였던 눈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삶의 상황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마음에도 맑은 시내가 흐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자신이 끝나지 않는 것 같은 겨울 속을 사는 것 같은 사람들도 있을 테다. 하지만 시간은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흐른다. 정지된 상태, 시간도 계절도 흐르지 않는 멈춤의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 시간이 흐르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인정해야 한다. 겨울에 눈이 내리지 않는다면 그것을 어찌 겨울이라 부르랴. 눈을 겨울의 극치로 인정하고 꾿꾿이 살아내는 작은 노력이 시작될 때 그제사 겨울은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인정할 때 걱정은 인생의 발전을 향한 질문이 될 것이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대답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되어준다.






  추운 곳에 눈이 내리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음에 겨울이 찾아오고 걱정이 눈처럼 한송이 한송이 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겨울은 언제 찾아오는 계절이다. 그러나 그곳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는 말자. 근심을 너무 주목하지 말자. 추운 곳에 혼자 있지 말자. 지금 있는 그곳이 설야라면 이제 벗어나자.


 겨울의 낭만을 품은 눈은 우리에게 많은 불편함을 주지만, 나아가 겨울을 더욱 겨울답게   추억으로 남는다.  눈을 헤치고 견뎌낸 날들은 삶의 순간 순간마다 마음속에서 나타날, 이겨낼수 있을거란 믿음의 근거  것이다.

 내리는 걱정에 파묻히지 않게 더욱 두꺼운 을 입고 포근한 털신을 신고 소복이 쌓인 눈길을 걸어가자. 당신이 극복하기로 결정했을   눈은 당신이 걸어나갈 길의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줄 것이다.

 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올 때, 하얀 이불이 걷히고 땅이 드러난다.



 얼음이 녹은 땅 위에 피어날 꽃은 당신을 모질게 괴롭혔던 겨울의 사뭇 미안함 일 것이고, 극복해낸 당신을 위한 작은 선물이리라 생각한다.











sondia -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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