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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닌그라드 Jun 20. 2022

식사대접

맛이 어때?


  나에게는 독특한 취미가 하나 있다. 가끔씩 좋아하는 사람들을 잔뜩 불러놓고 음식을 차려주는 것이다. 먼저 나서서 "저희 집에서 밥 한 끼 하시죠" 라며 사람들을 불러 모은 후 한가득 상을 올려 바친다. 약속 며칠 전부터 장을 보고 메뉴를 정할 때면 마치 놀이동산을 가기 전 어린아이와 같이 설레한다. 마침내 때가 되고 사람들이 찾아오면, 나는 요리를 하고 주위 사람들이 그걸 돕는다. 그리고 손님들은 맛있게 먹는것을 보며 나는 할머니처럼 뿌듯하게 웃는다.


  코로나를 통과한 우리에게 주어진 모임 제한 해제라는 신호탄은 내 광적 취미에 다시금 불을 붙였다.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고 전날부터 음식을 준비해 함께 나누어 먹었다.

  오랜만이라 해서 별 건 없다. 그냥 대차게 뻗어버렸을 뿐이다. 취미생활이 이렇게나 힘들었던가.


 그때 한집에 사는 분이 물어본다.

 "너는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사서 하니?"

 육체의 고단함과 마음에 포만감을 가지고 대답한다.

"이게 내 취미야"


식사대접


  인간에게 있어 가장 짐승적인 면모가 많이 남아있는 잔재는 아마도 식사의 영역일 것이다. 식사는 인간에게 있어 너무나도 기본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중요한 행위이다. 의식주 중 지금 당장에 없다면 생명의 위협을 받을만한 가치는 "식" 밖에 없을 것이다. 식사는 곧 생존이다.


  결국 식사대접은 생존을 위한 인간 본연의 욕구를 존중하고 맞아줌으로써 한 사람을 그저 인간 그 자체로 완벽하게 환대하고 존중하는 일이리라. 중요한 윤리의 가치는 어디 멀리 있는게 아닌 밥상머리에 있다.




  음식은 아마 철학과 인문학의 개념에는 부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식사는 인간으로서의 지적 행위에 도달할 수 없는 짐승의 추잡함이기도 하다. 하지만 음식에는 문학과 철학이 품을 수 없는 가치가 존재한다. 나의 생존을 포기하고 내 아이에게 먹을 것을 내어주는 마음. 내 가족을 먹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사냥터로 나아가는 마음.

  완벽한 사랑의 모습은 어쩌면 인간으로서의 사랑이 아닌 짐승들의 사랑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오늘날 식사는 입으로 넣기 바쁜 게걸스러움에서 그치지 않는다. 오늘도 음식으로 사랑을 선물해주기 위해 수많은 셰프들이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포장하듯 음식을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라면 대게 가족을 떠올릴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보편적인 사랑의 공동체. 그 가족을 부르는 또 다른 말은 식구(食口)다.


  함께 먹는 사이. 식사를 공유하는 사이. 나의 생존을 나누어 주는 사이. 가족이 된다는 건 나와 다른 너, 개개인의 본능의 영역을 뛰어넘어서 생존을 나누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식사를 함께 나눌 때 어우러지며 그 순간의 식구가 된다.


  사랑은 본능과 지식의 경계를 뛰어넘어 존재한다.

  오늘 우리가 작은 한 그릇의 접시에 담아 전한 마음은 무엇일까.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내가 좋아하는 옛날 얘기다.

  대자연을 만들었다는 신이 우리를 찾아온다는데 그 이유가 참 별 볼 일 없다. 세상의 혁명을 도모하거나 난세의 영웅을 찾기 위해서가 아닌 그저 우리랑 밥 한끼 하고자 함이란다. 그저 저녁 한 끼 먹으려고 우주를 만드는 것은 좀 과하지 않았나 싶다.

  창조의 이유가 식구가 되기 위해서, 가족이 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주기 위해서라는 것은 참으로 소소하고 귀여운 명분이다.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무언가 어마어마한 선물을 준다던가, 목숨까지도 바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나의 생명의 조각을 나누는 한 끼의 식사에 이미 담겨있을 거라 생각한다.



  매일 받아 드는 밥그릇에 묻어있는 사랑이 반짝거린다.











Blues Man - B.B.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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