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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닌그라드 Jul 04. 2022

오늘 하루의 진보

무대 위로 올라가


 음악을 전공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과 협연할 일이 생긴다. 내 악기와 다른 여러 악기들이 앙상블을 이루어 하나의 곡을 완성해 나가는 작업이다. 그런데 가끔 정말 말도 안 되는 실력의 연주자들을 만나게 된다. 작은 뉘앙스의 차이 같은데 그 결과는 꽤나 큰 차이가 나타난다. 어쩔 때는 내 연주가 그 사람의 연주에 방해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황새에게 뒤처지지 않으려 종종걸음으로 달려온 뱁새는 마치 KO패 당한 복서처럼 널브러져 순간에 몰려오는 파도처럼 헛헛함에 침몰되어버렸다. 남을 향한 부러움과 동경이 내 안에 삐뚤어진 자기혐오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같은 음악을 하면서 나는 왜 저렇게 하지 못하는가' '실력이 부족하다면 과연 이곳에 머물러도 되는가' 수많은 자책의 질문들로 마음속이 미어터져갈 때 즈음, 나에겐 결국 매일 도착하는 종점이 하나 있다.


나는 그저 오늘에 최선을 다했는가?



보면대


 1878년 차이코프스키가 자신이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당대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들을 찾아가 연주해달라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연주가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그 어렵다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요새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연주한다. 그렇다고 사람이 불과 150년 만에 진화를 하지는 않았을 터, 150년 전 사람들과 지금의 사람들의 손 모양이 다르지 않다. 그저 그 곡을 연습할 수 있는 150년이란 시간이 있었고, 그 기나긴 역사 동안 포기하지 않았던 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있었던 것이다.




 대게 진보는 천재들이 이루어낸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길을 개척하고 새로운 로드맵을 구축한다. 그러나 정작 세상의 발전을 도운 것은 진보적인 천재들이 아닌 보수적인 둔재들이었다. 천재들을 따라가기 위해서 적절한 조율을 해내며 보수적으로 최선의 방향을 찾아가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진보적인 천재들만 있었다면 그들의 발명은 그저 당대 똑똑했던 젊은 청년들의 일탈행위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청년의 일탈에만 멈추지 않고 진보의 진보를 거듭해 지금을 살 수 있는 이유는 둔재들의 적응해 나가려는 노력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 한 명의 압도적인 천재 파가니니 앞에서 절망하지 않고, 단지 젊다는 이유로 열정을 가지고 좁은 자신의 방에서 연습에 정진했을 광명 뒤에 숨은 어린 음악가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라 캄파넬라를 책과 악보로만 접하며 궁금해하는 것이 아닌 직접 우리의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일보의 전진을 포기하지 않았던 둔재들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또한 그들이 스승이 되어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를 수세대동안 거듭해오며 지금에 이르렀다.


 헤겔은 양적 변화가 축적되어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정반합 속에서 완만하게 이루어지던 양적 변화가 그 분량이 찼을 때에 급격하고 혁명적인 질적 변화로 바뀐다.


 천재들과 비교적 자주 마주치며 살아가던 나는, 인간은 언제나 비교의 대상을 가지고 살아간다 생각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경쟁사회에서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말했고, 조금 더 나아가서는 남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과 경쟁을 하라고 했었다. 그것을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려 한다.


 오늘의 해야 할 일들과 내가 노력하고자 마음을 품은 일에 최선을 다했을 때 그제야 비로소 일보 전진한다고 생각한다. 남들과 비교해가며 자신이 어떤 길 위를 걷는지도 알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목적지를 분명히 알고 그곳을 향한 올바른 길 위를 걷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비교도 경쟁도 아닌 그저 걸어가야 하는 시간 속에서 하루의 분량을 감당해냈을 때, 채워져야만 하는 하루의 분량이 다 찼을 때 그제야 내일을 향한 진정한 진보가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꽃밭 사이에서 홀씨를 뿌리려 억척스럽게 살아남은 민들레처럼, 내가 수많은 세상의 기준과 천재들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해야 될 오늘의 일을 해내는 것 결국 오늘의 최선이 나의 해답이었다.



 오늘의 모습은 어제의 흔적이다. 어제의 선택은 열매가 되었고, 열매에는 어제의 땀방울이 묻어있다. 오늘 남들이 먹는 저 열매보다, 나의 어제가 묻어있는 이 과실이 더 달콤하리라 생각한다.











Piano Quartet in E-Flat Major, Op. 47: III. Andante cantabile - schumann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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