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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닌그라드 Jun 07. 2022

앵프라맹스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어릴 적 나는 여러 주택들이 나래비 서있는 동네에서 자랐다. 담을 사이로 두고 여러 채의 집들이 나트막 나트막 하게 붙어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무렵 즈음에 유독 강한 향기를 지닌 기억이 있는데 그것은 어릴 적에 담장 너머로 듣던 여자아이의 웃음소리다. 짧은 단편적 기억이지만 내 또래였던 그 아이의 웃음소리는 나에게 있어 순서를 알 수 없는 오래된 기억들 중 하나이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 집을 나와 엄마와 대문 밖으로 나갈 때면 여지없이 옆집 그 아이도 집에서 나섰다. 웃음이 많았던 그 아이는 집을 나서면서부터 장난기를 잔뜩 머금은 웃음소리를 내며 뛰어나왔다. 그렇게 대문을 나와서 마주친 그 아이는 한바탕 웃고 난 뒤 묻어있는 은은한 미소를 품고 날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런 그 아이를 보며 나는 어린 나이에 이해할 수 없었던 감정을 느꼈다.

 

 나를 보면 항상 웃어주는 아이. 하지만 그 웃음은 나로 인해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난 그 아이를 좋아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았다. 그런 감정을 알기도 전인 어린 시절이었다.

 그런데 나는 내가 그 미소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것에 꽤나 깊은 거리감을 느꼈다.


좁은 골목길


 개념미술을 창시한 뒤샹은 '앵프라맹스'라는 말을 만들었다. 눈으로 식별할 수 없는 초박형의 형태.

 기반을 뜻하는 인프라와 차이를 뜻하는 민스가 합쳐진 것으로 우리말로 하면 얇은 기반 정도가 될 것이다. 뒤샹은 이것을 정확이 무엇이다 정의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60여 개의 예시를 통해 이해시키려 했다.


 멀리서 들리는 비로드 바지가 서로 부딪히며 나는 소리

사람이 앉아있다 떠난 의자의 온기

총성이 울린 후 표적에 구멍이 나기 직전의 시간


 이처럼 그는 가깝게 느껴지지만 서로 하나가 될 수는 없는 그 미묘한 차이, 얇은 막과 같은 거리감이 예술을 구분 짓는다고 말했다.


 이어령 교수는 뒤샹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이 앵프라맹스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어린아이의 열나는 이마 위에 올려준 어머니의 차가운 손, 그 사이의 찢길 수 없는 미세한 온기의 막을 느낀다고 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찢어질 수 없는 막을 사이에 두고 하나가 될 수 없음에 슬퍼하는 어린아이의 마음.


 나에게는 그 아이의 미소가 바로 얇은 막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예술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뒤샹의 물질적 앵프라맹스, 인간 사이의 하나 됨의 간절함과 애틋함을 품은 이어령의 정서적 앵프라맹스. 어떤 모습으로 건 어디에서건 이러한 얇디얇은 막의 장벽은 튼튼하게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뒤샹이 앵프라맹스를 만들어 내기 오래전부터 이미  장막은 가족들 사이에서 이어져왔을  같다.  달을  몸으로 품고 있다 헤어진  영원히 다시 하나가 되지 못했던 어머니와 자녀들. 꽤나 오랜 시대 동안 가족들과 친해지는  어색했던 지난날의 아버지들. 이어령 교수가 느낀 앵프라맹스지금까지 표현 못한 우리들 간의 거리감이었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존재이지만 결론적으론 내가 아닌 결국 타인일 뿐인 사람들.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 옆에서 이불을 깔고 잤다. 그런데 아버지는 항상 먼저 잠든 나를 어둠 속에서 빤히 쳐다보곤 하셨다. 인기척에 문득 눈을 뜨면 언제나 아버지가 머리맡에서 나를 지켜보고 계셨고 그땐 그 모습이 꽤나 무서웠다. 내가 뭘 잘못했나라고 생각해야만 했었다.


 얼마 전, 한밤중까지 침대 위에서 잠을 못 이루고 있는데 안방 문을 열고 주무시는 어머니의 코 고는 소리가 안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문이 열리는 소리에 깨실까 나가보지도 못하고 문 틈에 살포시 귀를 대고 들어 보니 새근새근 곤히 주무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사소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때 불현듯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늦은 나이에 얻은 늦둥이 하나가 곤히 자는데 움직이지도 않고 숨소리도 작으니 이게 자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고 깨울 수도 없는 노릇에 그저 가슴팍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달빛에 의지하여 바라보셨겠지. 사랑스러워서, 애틋해서라기보다는, 그보다 생존을 확인하려  신경을 집중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레비나스는 대면이 윤리라 했다. 타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윤리의 시작점이라는 것이다. 너와 나 사이의 도저히 좁혀질 수 없는 앵프라맹스를 인정하고 더 가까워지지도, 더 멀어지지도 않은 채 다만 얇은 막 사이에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윤리의 출발점이고 사랑의 시작이다.

 그것이 창틈에 스민 달빛을 의지하여 잠든 아들을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눈빛이요, 문득 잠에서 깬 아들과 눈이 마주친 뒤 머금어 보인 미소라고 생각한다.


 그날 밤부터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아버지를 깨달은 아들의 기억이다.

 얇은 막 사이로 영원히 맞닿을 수 없어서, 완전한 하나가 될 수 없어서 참 애틋한.


 그렇기 때문에 더 아름다울 수 있는 발치에서 머무는 한 발짝의 사랑












Eric Clapton - Little Man, You've Had a Busy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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