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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닌그라드 Oct 09. 2024

삶을 유지하는 것


  삶의 한복판에서 넘어진다. 뭐에 걸렸는지 모르겠다. 뒤를 돌아봤다. 왜 출발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걸어왔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눈앞에는 넘어진 두 다리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길 없는 들판만이 펼쳐진 기분이다.



  한동안 넘어져 지냈다. 굳이 일어나려곤 하지 않았다. 다시 걷기 싫었다. 길이 없는 들판에서 어느 방향인지도 모른 채 걷는 삶은 이제 별로.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러고 있을 수 있겠는가. 다시 걸어야지. 한 방향을 정했고 뒤돌지 않았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아니 꺾여도 알아채지 못할 거 그냥 가자. 그러면 사람들은 그걸 길이라 부르고, 흔적을 인생이라 하겠지.




  육신은 한낱 덩어리 진 먼지 아닌가. 태초에 작은 한 점에서 시작된 빛과 에너지는 억겁의 세월을 건너 지금 우리를 이뤘다. 모든 이야기는 결국 모종의 이유로 일어난 빅뱅과, 그로부터 비롯된 원자들이 빚어져 만들어진 물리의 문학이다.


  우린 태초 때 빛의 부산물이다. 그 삶이 누군가에겐 신화가 됐고, 누군가에겐 눈물 나는 이야기가 되겠지.


  그렇다. 결국 살아지는 대로 살겠다는 것이다. 뭐 거창한 뜻 없이, 특별히 거대한 담론 없이. 오늘의 하루를 주어진 상황에서 살 것이다.



  이제 주어진 임무는 삶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가라앉지 않게 적당한 때에 돛을 펼치고, 적당한 때에 항구에 정박하는 것. 가야 할 때 가고 쉬어야 할 때 쉬는 것.


  바람 불 때 멀리 나아가고 바람 잠잠하면 닻을 내리고 물고기나 잡을터. 인생은 제 알아 흘러갈 것이다.


  서로의 순간 속 잠시나마 얼굴을 마주하고 나누는 의미 없고 소소한 대화. 고작 글씨뿐인 종이 뭉치를 한 장씩 넘기며 흘리는 눈물 몇 방울. 유한한 삶에 감히 영원을 들먹거리며 고백하는 연정.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삶이라 부른다.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옥상달빛 -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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