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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닌그라드 Apr 21. 2024

프리지아



  여자친구와 함께 카페를 가던 중 소담한 꽃집 하나가 있었다. 왠지 모르게 시선이 가던 그 가게를 나는 지나칠 수 없었다. 카페에서 잠시 중요한 전화가 있다는 핑계로 빠져나와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노란 프리지아를 좋아하는 나는 여느 때와 같이 꽃집에 들어서자마자 프리지아를 먼저 찾아 나섰다. 그런데 무슨 일인가 프리지아 한 다발을 이미 누가 잔뜩 예약을 해놓아서 내가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프리지아는 그렇게 인기 있는 꽃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이란 꽃말 때문에 졸업식 때나 한 번씩 반짝할 뿐,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꽃집에서도 몇 송이 들여놓지 않는 꽃이었다. 그런 프리지아를 한 아름 끌어안고 갈 남자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심 속으로 그를 응원하기로 결정했다.

  임기응변 나는 은근한 노란빛의 장미 한줄기를 사서 카페로 돌아갔다.


  카페에서 내 꽃을 본 그녀는 내가 기대했던 환한 미소와는 상반된 사색이 된 표정을 나에게 보여줬다. 그러더니 잠시 화장실을 가겠다며 자리를 떴다. 나는 수많은 번뇌와 고민에 휩싸였다. 지난날의 나의 인생을 돌아보며 과연 무슨 실수를 범했을까 스스러 자문하고 또 자문했다. 그렇게 “어제 식사 때 숟가락을 세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다다를 때 즈음 그녀가 돌아왔다. 프리지아와 함께.


프리지아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그 사람이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은 것. 날 보며 지어주는 찰나의 미소, 그 하나만을 바라며 나의 하루를 사는 것.

  그날, 카페에서 얼마나 정신없게 웃었던지. 꽃집 사장님이 더 신나서 요란이시더라. 하나뿐인 프리지아를 사간게 도대체 누구냐 욕했는데 그게 당신이었냐. 그렇게 아무 쓸모도 없지만 서로만 공유하는 추억으로 밤이 깊도록 떠들며 참 소중한 빛 하나가 남았다.




  사랑은 누구에게 건 나름의 모습이 있다.

  프랑스와 나아가 전인류의 위대한 시인 보들레르에게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사랑이었던 잔 뒤발. 흑인이자 매춘부였고 보들레르의 정신을 고문하며 재물을 착취한 그녀였지만, 보들레르는 그런 그녀를 두고 “여인 중의 여인” 이요 “검은 비너스“ 라 찬양했다.


  뒤발이 있었기에 보들레르는 거리낌 없는 문장과 관능적인 표현을 쏟아내며 그의 [악의 꽃]을 완성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문학인들은 흑인이자 여성이었던 뒤발을 보들레르에게서 분해시켜 역사 속에서 지워버렸으나, 보들레르의 사랑을 통해 뒤발은 사람들이 찬미하는 위대한 시 속에서 함께 숨 쉬고 있었다.


  찰나의 인생 속 스쳐가는 인연 때문에 브람스는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향한 피아노 협주곡을 썼고, 아르테미스는 오리온을 그리워하며 밤하늘에 별자리를 새겼다.


오리온자리


  오늘 우리에겐 어떤 모습이 있나. 아이를 사랑하는 어미의 사랑. 연인을 사랑하는 보들레르의 사랑. 신이 우리를 사랑하는 아가페의 사랑.

  어느 사랑이나 그 모습이 있다. 보들레르의 뒤발처럼, 브람스의 클라라처럼, 아르테미스의 오리온처럼.






  평생을 살아도 벚꽃을 100번 보기 어려운 짧은 삶에 찾아온 그 사람에게 후회 없을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아담이 하와를 처음 보았을 때 했던 말-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Brahms piano concerto no. 1 in d minor op. 15 - ii. adag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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