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아 나 살려라

by 칼리닌그라드

높은 산이다. 돌아가자.

깊은 협곡이다. 피해 가자.


도망가자.

여차 하거들랑 도망가자.

죽기 살기로 뛰어서

삼십육계 걸음아 날 살려라.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자.


가만.

도망쳐서 도착한 곳엔 낙원이 있을까?


사울을 피해 도망가는 다윗


나는 웬만하면 분쟁을 피하고 싶다. 도망은 내 특기 중 하나다. 하다못해 도로에 차가 밀리면 다른 길로 돌아간다.

나는 힘들고 싶지 않다.


포기는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언제나 내 친구 노릇을 자청해 왔다. 이 고얀 놈은 어찌 나를 그리 잘 아는지. 슬쩍 와 내게 속삭이면 난 거스를 수가 없다.

굳이 뭐 어렵게 해, 이만하면 됐어, 그만하고 쉬자, 굳이 왜 일을 키워. 이 얼마나 달콤한 속삭임인지.


성서에는 다니엘이란 선지자가 나온다. 멸망한 왕국의 백성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가 훗날 적국의 총리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환상을 보는 사람이었고, 꿈을 풀어주었으며, 쉬지 않고 기도했다.


좋은 사람에겐 역시 좋은 이들이 따르는 것일까. 그의 친구들 이야기가 떠오른다.




신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 왕은 아시리아 제국의 잔재를 척결하고, 이집트를 물리쳐 당대 레반트 지역을 점령한 정복왕이었다. 그리고 그런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게 포로로 끌려간 이들이 있었으니,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신 만을 자신들의 신으로 섬기고 바빌로니아의 종교에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수많은 회유에도 그들은 곧은 자세로 자신들의 신념을 지켰다. 분노한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그들을 불타는 풀무불에 집어던져버렸다.


풀무불은 대장간에서 철을 녹일 때 쓰는 불이다. 철광석을 녹여내기 위한 풀무불은 그 온도가 무려 1500도를 웃돈다. 삼겹살은 3초면 익는 그런 불 말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 불구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과 발이 묶여 불구덩이로 던짐 당했다. 그리고 그때 그들의 신께선 그들을 지켜냈다. 그들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타지 아니하고.


풀무불 속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허무맹랑한 신화처럼 보여도 전 세계 30억 명이 믿는 이야기엔 이유가 있겠다.


신은 풀무불을 꺼트릴 수 있다. 비를 내려 모든 불을 다 끄고, 그들을 바람으로 들어 꺼내올 수 있다.

하지만 그분은 다니엘의 세 친구를 풀무불로 들여보내셨다. 장난기가 많은 분이라서? 괜히 친구들 겁이나 한번 줘보려고? 분명 더 큰 이유가 있다.






신은 그런 존재다. 다르게 말해보자.

세상은 그런 곳이다.


어려움을 피할 수 있는 샛길을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어려움을 헤치고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는 삽 하나를 손에 쥐어주는 곳, 그곳이 바로 세상이다.


우린 때로 시험과 환난, 어려운 난제를 피하길 원한다. 하지만 이 얄궂은 세상은 계속해서 저 으르렁거리는 사자에게 우리 등을 떠민다.


그런데, 용기는 그곳에서 생긴다.

당당히 맞설 때, 차오르는 눈물을 이 악물고 참을 때 어른이 된다.


영화 에반 올마이티의 대사가 생각난다.

누가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면 신은 그 사람에게 인내심을 줄까요? 아니면 인내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려 할까요?

용기를 달라고 하면 용기를 주실까요? 아니면 용기를 발휘할 기회를 주실까요?


오늘의 시련은 용기를 발휘할 기회다.

우리가 풀무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우리에게 능히 이겨낼 힘을 주지 않을까?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Jeff Beck - People Get Re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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