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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닌그라드 May 19. 2022

엔딩크레딧

뭐하고 지내?

 하루를 마무리하며 조그마한 화면에 영화를 틀었다. 별일 없었던 날은 하루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길 바라며, 우울한 날엔 그 감정이 딱히 나쁘지 않아서, 적당한 영화를 고른다. 그렇게 하루의 취향을 약간 섞어 맥주캔을 딴다.


 영화를 고를 때 나는 기준이 하나 있다. 여운이 없어야 한다. 꽤나 많은 감수성을 품은 나에게 많은 여운을 주는 영화는 다만 며칠을 온전히 그 감정에 내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 수고롭고 번거로운 과정을 피하기 위해 오늘도 조금은 가벼운 영화를 고른다.


Take 9


 누가 봐도 슬플만한 새드엔딩은 피한다. 로맨스도 너무 애틋하면  된다. 시리즈 영화는 금물이다. 주인공들과 정이 들어버린다. 해리포터가 죽음의 성물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을  어찌나 힘이 들던지, 마치 오랜 정이든 친구를 잃은  같은 상실감에 젖어있었다. 이것이 내가 마블 영화를  보는 이유다.


 어쩌다 그런 영화를 보았노라면 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하고 쓰잘데 없는 청승을 떤다.




 나는 현실도 다를 것 없었다. 새드엔딩으로 끝난 나의 에피소드에서 한동안 허우적거렸다. 지나간 날들에 옷자락을 붙잡고 '과연 이렇게 되었다면 더 나았을까, 다른 선택을 했으면 결말이 바뀌었을까.' 수많은 미련을 가지고 이미 밝아진 영화관 안에서 일어나길 주저하고 있었다.

 그냥 그렇게 그곳에 머물러 지나간 결말을 다시 찍어보려 했다.


  막힌 해피엔딩만을 바라면서  인생에는  어떤 어려움도 고난도 시련도 허락하지 않았다. 진부하지만 그냥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전래처럼 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때 내가 한 질문이 하나 있다.


주인공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주인공들은  이야기 안에서  다른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멋진 음악 떠나는 주인공의 뒷모습, 그저 그런 엔딩 후의 이야기는 우리만 모를  그다음 날도 주인공들은 똑같이 눈을 뜨고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잠깐이었던  시간 분량의 이야기들을 뒤로하고 그들의 시간은 흐를 것이다.

 우린 그저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어디선가 행복하겠지라는 믿음으로 흘려보낼 뿐이다.


나는 겨우 두 시간 남짓 주인공의 인생을 엿봤다. 그 찰나는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잠깐을 영원인 것처럼 아파하고 있지는 않은가? 엔딩크레딧 앞에서 오지 않을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를 슬프게 한 이야기들도 결국은 두 시간 남짓한 에피소드였으면 한다. 새드엔딩이 무서워 다음 이야기를 향한 발걸음이 멈춰 서지 않았으면 한다.


 이어령 교수는 영화가 끝나면 엔딩 마크가 아닌 꽃봉오리를 놓겠다 한다. END 끝이지만 꽃은 봉오리 안에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을 거라고. 나는 그것이 죽음 앞에 놓는  국화꽃이리라. 영화는 끝났지만 영화관에선 다음 영화가 틀어질 것이다.






 당신의 이야기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그곳에서 끝났는가, 아니면 꽃봉오리와 함께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가. 많은 관객들은 주인공의 행복을 바란다.

 지나간 이야기들이 흘러가길 바란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당신이 지금쯤은 행복할 거라는 믿음으로.



 END라는 글자 뒤에 숨어 이야기를 끝내긴 아쉽다. 꽃 한 송이에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 주인공의 앞 길을 응원한다.


 조그만, 하지만 확실한 해피엔딩을 위하여.











Bruno Major - To Let A Good Thing Die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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