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고 지내?
하루를 마무리하며 조그마한 화면에 영화를 틀었다. 별일 없었던 날은 하루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길 바라며, 우울한 날엔 그 감정이 딱히 나쁘지 않아서, 적당한 영화를 고른다. 그렇게 하루의 취향을 약간 섞어 맥주캔을 딴다.
영화를 고를 때 나는 기준이 하나 있다. 여운이 없어야 한다. 꽤나 많은 감수성을 품은 나에게 많은 여운을 주는 영화는 다만 며칠을 온전히 그 감정에 내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 수고롭고 번거로운 과정을 피하기 위해 오늘도 조금은 가벼운 영화를 고른다.
누가 봐도 슬플만한 새드엔딩은 피한다. 로맨스도 너무 애틋하면 안 된다. 시리즈 영화는 금물이다. 주인공들과 정이 들어버린다. 해리포터가 죽음의 성물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을 때 어찌나 힘이 들던지, 마치 오랜 정이든 친구를 잃은 것 같은 상실감에 젖어있었다. 이것이 내가 마블 영화를 안 보는 이유다.
어쩌다 그런 영화를 보았노라면 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쓰잘데 없는 청승을 떤다.
나는 현실도 다를 것 없었다. 새드엔딩으로 끝난 나의 에피소드에서 한동안 허우적거렸다. 지나간 날들에 옷자락을 붙잡고 '과연 이렇게 되었다면 더 나았을까, 다른 선택을 했으면 결말이 바뀌었을까.' 수많은 미련을 가지고 이미 밝아진 영화관 안에서 일어나길 주저하고 있었다.
그냥 그렇게 그곳에 머물러 지나간 결말을 다시 찍어보려 했다.
꽉 막힌 해피엔딩만을 바라면서 내 인생에는 그 어떤 어려움도 고난도 시련도 허락하지 않았다. 진부하지만 그냥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전래동화처럼 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때 내가 한 질문이 하나 있다.
주인공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주인공들은 그 이야기 안에서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멋진 음악과 떠나는 주인공의 뒷모습, 그저 그런 엔딩 후의 이야기는 우리만 모를 뿐 그다음 날도 주인공들은 똑같이 눈을 뜨고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잠깐이었던 두 시간 분량의 이야기들을 뒤로하고 그들의 시간은 흐를 것이다.
우린 그저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어디선가 행복하겠지라는 믿음으로 흘려보낼 뿐이다.
나는 겨우 두 시간 남짓 주인공의 인생을 엿봤다. 그 찰나는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잠깐을 영원인 것처럼 아파하고 있지는 않은가? 엔딩크레딧 앞에서 오지 않을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를 슬프게 한 이야기들도 결국은 두 시간 남짓한 에피소드였으면 한다. 새드엔딩이 무서워 다음 이야기를 향한 발걸음이 멈춰 서지 않았으면 한다.
이어령 교수는 영화가 끝나면 엔딩 마크가 아닌 꽃봉오리를 놓겠다 한다. END는 끝이지만 꽃은 봉오리 안에 또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을 거라고. 나는 그것이 죽음 앞에 놓는 흰 국화꽃이리라. 영화는 끝났지만 영화관에선 다음 영화가 틀어질 것이다.
당신의 이야기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그곳에서 끝났는가, 아니면 꽃봉오리와 함께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가. 많은 관객들은 주인공의 행복을 바란다.
지나간 이야기들이 흘러가길 바란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당신이 지금쯤은 행복할 거라는 믿음으로.
END라는 글자 뒤에 숨어 이야기를 끝내긴 아쉽다. 꽃 한 송이에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 주인공의 앞 길을 응원한다.
조그만, 하지만 확실한 해피엔딩을 위하여.
Bruno Major - To Let A Good Thing Die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