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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닌그라드 May 23. 2022

엔딩크레딧 (에필로그)

뭐하고 지내?


 감정의 과잉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많이 힘든 일이다. 모든 일에 마음을 쓰고 살면 피곤하다. 가끔은 툭 털고 넘겨야 할 일이 있다. 상념에 쓸데없이 발이 묶여 오도 가도 하지 못하는 모습, 하지만 그 누구도 내 발을 붙잡고 있지 않았다. 그저 내가 붙잡혀 있었다.


 어느 날 문득 발견한 내 모습은 조금은 구질구질해 보였다. 특히 싫은 것은 알면서도 바뀌지 않는 모습이었다. 내가 어디에 맘을 빼았겼는지,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구질구질하게 바뀌지 않는 모습은 비단 나뿐만이 아닌 꽤 많은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해는 했다. 놓쳐버린 기회, 다시 오지 않을 시간, 지나간 인연들까지.

 내가 붙잡을 수 없기에 헤어진 자리에서 그저 기다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TV에 새삼 대부가 나오길래 리모컨을 멈추었다. 영화의 말미에는 말론 브란도가 손주와 놀아주다 쓰러진다. 뉴욕의 한복판, 가진 것 없던 이탈리아 이민자에서 갓파더가 되기까지 쉼 없이 달려왔던 대부의 마지막은 별다를 것 없는 흔한 할아버지들처럼 손자와 놀아주다가 어울리지 않는 토마토 밭에서 쓰러졌다.

 그러나 영화는 거기서 끝내지 않고 새로운 갓파더, 알 파치노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난다.


 사건이 끝났다고 해서 일상이 멈추지는 않는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뒤로하고 또 다른 하루, 또 다른 사람들, 또 다른 이야기가 나의 내일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도 지나간 날을 붙잡으며 돌아오라 손짓했으니 기다리는 내일의 입장에서는 꽤나 서운했겠지.






 에피소드의 끝을 END가 아닌 새로이 피어날 꽃봉오리를 보여주며 끝낸다는 것. 그 꽃은 결국 지금까지의 에피소드를 뒤로 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나를 위한 꽃다발이 될 것이다.

 꽃에서 필 이야기가 결국 나의 이야기였고, 나는 내 인생에 END마크를 새기지 않았다.


 오늘의 나는 어제에 머무르지 않았고 오지 않은 내일에 미리 도착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존재해야만 하는 오늘에 서서 작은 봉우리 안에 담긴 꽃의 새로운 이야기를 고이 피워볼 생각이다.




 기죽지 말고 살아 봐

 꽃 피워 봐

 참 좋아

 - 나태주











'엔딩크레딧' 과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kaliningra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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