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처마 아래서 휴식을
늦은 저녁 광화문 앞을 지나는데 무언가 날카로운 빛이 검은 하늘을 가로지른다. 공연을 했는지 뭘 했는지 몰라도 청와대에서 쏜 파란색 레이저 조명이 버들나무 이파리처럼 춤을 추다가 행인들 사이까지 스며드는 것이었다. 잔디밭과 함께 넓어진 광화문 광장, 그리고 한창 공사 중에 있는 광화문 앞을 걸으면서, 스쳐 지나간 옛 추억이 눈앞에서 흩날렸다. 새로움을 향한 기대와 추억의 소멸 사이에서 나는 별 것도 아닌 행인이지만 주제넘게 상념에 빠져봤다.
수많은 변화들 중 가장 돌이키기 어려운 변화인 풍경의 변화 가운데 나는 새삼 생각했다.
아쉽다!
무엇인가가 변화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아쉬움이 따른다. 변화는 헤어짐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상황의 변화, 시대의 변화, 인간의 변화, 풍경의 변화. 그것이 어떤 형태인지간에 무형과 유형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변화는 헤어짐과 만남 사이에서만 이뤄진다.
한창 철거 중인 공사장과 애저녁에 변해버린 여러 도시의 풍경 속에서 나는 서울 속에 품고 있던 내 추억의 증거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 아쉬움에 깊이를 더해준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청와대발 레이저 조명이었다. 70여 년의 역사 동안 저런 것을 만져 볼일도 없었던 청와대가 뿜어내는 저 파란 레이저 조명은 마치 한때를 풍미했던 늙은 노인의 쓸쓸한 노년 같았다.
나는 이 글에 정치를 끌어들이고자 함이 아니다. 그저 지나가는 행인 중 한 명으로서 잡념을 적을 뿐이다. 나는 이재명과 윤석열을 둘 다 싫어하고, 우리 어머니는 윤석열 대통령과 같은 파평 윤가로, 파는 다르지만 대손으로만 따진다면 2대손 차이가 나는 할아버지와 손녀 관계이다.
느부갓네살과 바빌론은 이스라엘을 격퇴하고 솔로몬 성전과 다윗성을 파괴했다. 무쓰히토와 일본제국은 조선을 멸망시키고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켜 그곳에 각종 짐승들을 풀었다. 국가의 멸망에는 필시 왕궁의 파괴가 함께 자행된다. 왕궁의 파괴는 곧 백성들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위였다.
그렇게까지 행동했던 이유는 바로 왕궁이 권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왕정의 시대 동안 왕은 곧 나라였고 왕이 있는 그곳은 국가의 중심일 수밖에 없었다.
통치는 권위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행위다. 무력으로만 쟁취한 권력은 불안정하고 언제든 빼앗길 수 있었기에 통치자들은 자신이 왕을 해야만 하는 정당성과 정통성, 그리고 권위를 확보해야만 했다.
과거에는 압도적 다수의 무지로 인하여 인간에게 신성을 부여하는 가장 단순하고 과격한 방법으로 소수가 권위를 가질 수 있었다. 알에서 난 박혁거세, 하백의 손자 주몽, 스사노오의 후손 천황, 주님의 대리자인 교황이 세운 군주.
그러나 르네상스가 이룬 근대사회에서는 지성의 발달로 인하여 더 이상 신성의 논리가 통하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교황은 뒤로 물러났다.
근대의 역사에서 통치의 모양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로 이관되었다. 소수가 취하는 권력과 이익의 부패를 끊어내고, 권력의 근간을 민중에게 두었다. 국민이(민) 주인 된(주) 국가의 탄생은 교육의 보편화와 불가양도 천부인권 속에서 태어난 필연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할지라도 지도자에겐 권위가 필요했다. 하지만 지도자는 이제 ‘신탁’이 아닌 ‘선택’을 받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권위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역사성 밖에 남지 않는다. 시간은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는 역사가 된다.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가르침을 얻고, 가르침은 영향력이 된다. 영향력은 점차 권위가 된다.
청와대는 정부 수립 이래로 대한의 역사의 중심에서 굳건하게 존재했고, 청와대는 어느새 권위의 상징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권위의 상징이 되어 현대인의 궁궐로서 언제나 이 나라의 꼭대기에 서있던 저 높은 옥좌가, 이제는 민중들의 발아래에 놓인 그 모습에서 수많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이별이 두려워 변화를 망설일 수는 없다. 고인물은 썩기 마련이고, 흐르지 않는 강은 강이 아니기 마련이다.
나는 청와대 개방을 무척이나 환영하고 또한 지지한다. 현대 민주사회에서 탈권위주의는 지당한 일이고 응당 실천해야 할 시대적 흐름이다. 다만 나는 목적론이 아닌 방법론을 얘기하고자 한다.
청와대는 현대 한민족들의 국가 설립 이후 줄곳 최고 행정 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 주었다. 환희의 역사건, 치욕에 역사건 상관없이 청와대라는 공간 그 자체만은 70여 년의 인생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임무를 수행해준 성실한 공무원이다.
그런 공간이 쓰임이 없어졌다 하여 과연 어울리지 않는 그림을 걸고, 수많은 군중들의 신발 밑창으로 밟아 뭉개는 것이 그 공간을 향한 존중일까 생각해 봤다.
우리에겐 존중이 필요하다.
공자는 “스스로를 존경하면 남도 나를 존경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간다. 우리의 역사를 우리가 먼저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우리를 존중하고 존경하겠는가?
나는 그 청와대를 쓰던 사람들을 향해서, 청와대가 가지고 있던 권위와 압박감을 향해서 공경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이제까지 수고해준 그 공간의 역사를 존중하고자 한다.
청와대는 드디어 그 모든 상념과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기쁨의 역사와 치욕의 역사를 모두 뒤로하고, 수많은 사람이 울고 웃던 그 모든 권력투쟁에서 이제는 자유하다.
구중궁궐, 높은 권부라는 오명으로 불리며 고생만 하던 청와대가 아닌 이제 완전한 자연의 일부로서, 70년 통치의 역사를 간직한 휴식의 상징으로 남기를 작게나마 바란다.
지나가던 행인은 다시 광화문 거리를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