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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닌그라드 Aug 05. 2022

너는 왜

기대 어린 애정, 애정 어린 기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 길에 어디선가 소란스런 소리가 들린다. 연인 한쌍이 참 보기 좋게 싸우고 있다. 한민족에게 있어 싸움 구경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유혹이다. 물론 우리 모두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기에 가던 길을 멈춰 서고 빤히 쳐다볼 수는 없겠지만 나와 내 일행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발맞춰 속도를 늦춘다. 비단 우리 일행만 그런 것은 아니다. 연인이 다투고 있는 주변은 마치 시공간이 휘어지듯이 그 일대 모든 사람들의 속도가 느려진다. 나는 저렇게 아름답게 투닥거리던 적이 언제였나. 부러움이 짜증으로 바뀌기 전에 얼른 다시 갈길을 떠난다.


 과연 연애가 무엇이길래 서로에게 첫째가 돼주어야 할 이들이 저리도 으르렁 거린단 말인가.



 우리는 참 뭘 소유하기를 좋아한다. 돈, 차, 집, 물건. 사람이라면 응당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한다. 예부터 인간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싸우고 빼앗아서라도 자신의 것 삼았고, 작금의 발전된 사회 또한 모두 그 욕망의 결과로 보인다.

 문제는 우리가 사람마저 소유하려 한다는 것이다. 인간을 내 것, 내 사람이라는 소유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이 어디 그렇게 쉬운 존재던가. 나는 나의 것이라는 교육을 세뇌에 가깝게 받고 살아온 세월이 벌써 몇 년인가. 워라벨이라는 신흥 가치 앞에서 우리는 집단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시던 어버이의 세대와의 작별을 고했다.


 소유의 조건에는 애정이 있다. 나에게 필요하지 않다 하더라도 애정을 품게 되면 그것을 소유하려 한다. 갖고 싶은 마음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다. 우리에게 지혜롭지 못한 소비의 결과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사람이라는 표현을 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향해 애정을 품었기에 그 사람을 가지고 싶었고 나아가 연인, 부부의 관계를 맺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옆에 있는 이 사람이 나의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애정에는 기대가 따른다. 차에 애정을 가지면  차가 나를  뽐내주리라 기대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승차감 대신 하차감이라는 말을 쓴다. 이에 대표적인 것이 명품일 것이다.  명품이 나와 다른 이들 간에 사회 경제적 지위를 구분 짓고, 나의 가치의 영역을 채워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애정을 가진 사람에게 당연시 여기며 품는 기대가 있다. 연인에게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외모, 성격, 말투, 지식, 재력  모든  사람 향한 나의 기대다. 기대는 어느덧 욕심으로 하고, 사람 자체를 소유하고 제어하려 든다.  뜻대로,  마음에 맞게  사람이  기대에 부응해줘야 하며 그러하지 못했을  분노하고 다투게 된다.

 정작 당사자는 어리둥절할 때가 있다. 자신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고, 들어보지도 못했을  있기 때문이다. 충분한 대화와 의견 제시가 있었다면 모를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이상향을 정확히 그려본 적도 없다. 명확한 이상향이 없는 경우 자신이  원하는지는 모르면서 마음에  드는 것만 계속 보인다. 그것은 결국 지적이 되고 사랑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 폭력으로 변한다.



 부모와 자식 간에, 연인 간에, 부부간에, 사제간에, 우정관계 간에 우리는 수많은 관계에서 지적하고 또 실망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지적하고 실망할 수 있는 권리가 언제부터 생겼는가. 우리는 사람을 돈 주고 산 적이 없다. 매매를 통해서 사람을 구매하고 소유 삼은적이 없다. 결국 우리는 사랑이라는 화폐로 그 사람의 마음을 산 것이다.


 물론 다투고 싸우는것도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아예 모르는 사람한테는 헌신의 사랑을 하기 쉽다. 베풀고 봉사하고 섬길수 있다. 내가 정말로 애정하는 사람이기에,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게 안되는 것이다. 물이 끓을 때면 뜨거워지며 연기가 난다. 만약 서로가 뿌예지고  보이고 답답하기만 하다면 그것은 그대가 진심으로 애정했다는 증거다.


 우리가 기대를 안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순서가 중요하다. 기대 어린 애정을 품어서는 안 된다. 애정 어린 기대를 품어야 한다. "이 사람은 이럴 거야"라는 기대를 갖고 애정을 품는 것이 아닌, "내가 애정 하는 이 사람에게 이런 모습도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기대해야 하는 것이다. 기대가 앞선다면 우리는 마음에 안 드는 모습을 참을 수가 없다. 상대의 그런 모습을 기대하고 사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정 어린 기대를 갖게 되면 우리는 오래 참을 수 있다. 내가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그 사람이 변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기대가 앞선 사랑은 조건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기대보다 앞선 사랑은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아가페 사랑과 에로스 사랑을 얘기한다. 아가페 사랑은 신이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모습을 말한다. 헌신하는 이웃사랑. 모든 것을 주고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해도 실망하지 않는 사랑이다. 에로스 사랑은 육체의 사랑이다. 서로가 뜨겁게 사랑하며 쾌락을 공유하는 사랑이다. 보통의 연인들은 에로스의 사랑을 하고 있다.

 에로스는 풍요의  포로스와 결핍의  페니아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포로스는 아프로디테의 생일잔치에서 거나하게 먹고 취해 쓰러져있었다. 그때  앞에서 음식을 구걸하려 기다리던 페니아가 그를 보고서는 그와 함께 있으면 굶주림을 면할  있을 거라 생각해 결합하여 에로스를 낳았다. 에로스의 사랑은 태생적으로 결핍을 가지고 있고 끊임없이 풍요로 나아가려는 성질을 갖게 된다.

 우리는 부족함과 결여가 있는 존재들이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 연인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뜨겁게 갈망하며 내면을 충족하려 한다.


 결핍의 충족만을 위해 사랑하면  옆의 연인은 도구일 뿐이다. 나의 만족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치품일 뿐이다.

 인간은 모두   사람이 들어갈  있는 분량의 영혼의 공백이 있다고 생각한다. 술이나 쾌락도, 돈이나 물건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도구의 애정은   칸을 채울 수가 없다.


 우리는 너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지키려 한다. 아끼는 물건이 혹여 상할까 고이고이 보관한다. 정말로 애정을 한다면, 정말로 사랑하게 된다면  존재 자체가 소중해진.

 우린 지금 어떤 모양의 사랑을 하고 있는가. 우리에겐 필리아적 사랑이 필요하다. 나의 만족을 위해  사람을 사용하는  아닌 그저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모습.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사랑.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제는 우리가 이런 사랑을 소유했으면 좋겠다. 모든 것을 응당 주지만 모든 것을 받지않는 사랑. 나를 위한 사랑이 아닌 상대를 위한 사랑.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사랑.


 









Can't Help Falling In Love - Haley Reinhart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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