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닌그라드에 관하여
칼리닌그라드는 나의 작가명이다. 그리고 칼리닌은 소비에트 전연방 중앙집행위원회 의장이다.
칼리닌그라드는 원래 독일의 전신, 프로이센 공국의 수도로서 쾨니히베르크라고 불렸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동프로이센이 해체되며 소련에게 넘어갔고, 소련이 붕괴한 지금은 러시아 본토와 떨어져 마치 섬과 같이 고립된 영토가 되었다.
이곳은 임마누엘 칸트의 고향이며 한 번도 이곳을 떠나 산적이 없다고 한다. 칸트는 서양철학사의 전과 후를 나누는 기준이 되고, 아직도 독일 사람들 에게는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남아있다.
칸트의 고향이자, 프로이센 공국의 수도이기까지 했던 이곳의 이름이 아직도 칼리닌그라드라니. 뭔가 이상하다.
사실 칼리닌그라드라는 작가명은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무의미의 축제> 속에서 미하일 칼리닌은 명목상 소련의 국가원수였지만 정작 소련 내부의 모든 실권은 스탈린이 쥐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꼭두각시였던 것이다. 책에서는 칼리닌의 전립선 비대증을 얘기하고 있다. 스탈린이 일장 연설을 하고 있을 때면 칼리닌이 오줌보를 참느라 애쓰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리고 스탈린은 그의 지극히 인간적인 투쟁에 연민을 느낀다. 그리고 그는 독일 연방에게서 빼앗은 칸트의 도시를 칼리닌에게 헌정한다. 투사들의 투쟁과 혁명이 아닌, 오줌보라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가장 처절한 사투에 전리품을 하사한 것이다.
소련의 해체 이후 레닌그라드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스탈린그라드는 볼고그라드로 이름이 바뀌었다.
레닌은 소련을 건국했고 스탈린은 압도적 권력의 독재자였다. 소련 공산당의 창시자도 극악무도한 독재자도 러시아 땅에서 그 이름이 지워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줌보 참기만도 바빴던 꼭두각시는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야말로 오줌보의 패러독스이다.
무의미하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칼리닌의 사투는 무의미해 보이지만, 그로서는 사회적 지위와 체면 속에서 얼마나 처절했을까.
쇼펜하우어는 세계라는 본질을 개인의 의지로 사유할 때, 세상은 사람 안에서 표상이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세상을 다 다르게 보고, 다 다르게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는 70억 개의 제각기 다른 세상이 있게 된다. 그 가운데 우리는 의미와 무의미를 나눌 수 있는가?
혁명가의 투쟁과, 비대증 노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투 중 무엇이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 가운데 우리는 어떤 사람도, 시간도, 행동도 버릴 수가 없다.
그렇기에 오늘도 난 무의미한 것을 사랑하려 한다.
빛나는 단 하나의 별 보다 쏟아질 것 같은 은하수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용맹한 영웅의 역사보다 작은 일상의 일기를 사랑한다. 크지 않더라도 그저 묵묵히 살아내는 개인의 작은 삶을 사랑한다.
That's Life - Frank Sinatra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