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셔서
요즘, 햇살이 참 좋다. 하늘은 끝도 없이 높고, 높새바람이 하늘에서 불어온다. 구름은 마치 하늘에 대롱대롱 걸려있는 것 같다. 뜨겁기만 하던 태양은 어느새 곡식을 비춰주는 가을빛으로 한걸음 물러났다.
매섭던 이글거림이 잔잔한 광명이 되는 이맘때면 뭐라 말하기 어려운 감정이 올라온다. 딱히 풍요롭지도 여유롭지도 않지만 그런 것을 뛰어넘어 마음에서 올라오는 넉넉함이 생긴다.
태양은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존재다. 식물의 생장과 낮과 밤의 시간의 흐름 가운데에서 태양은 언제나 절대적인 존재로 군림한다.
하지만 우리는 왕왕 태양을 피해 가며 산다. 눈이 부시다는 이유로, 살갗이 탄다는 이유로. 여름철, 겨울철, 바다에서나 스키장에서나 때와 상황에 따라 제각각의 이유로 눈부심을 피한다.
평범하던 일상에도 태양을 피하고 싶어지는 날이 온다. 태양처럼 나의 삶을 비춰주고 길라잡이가 돼주었던 꿈, 믿음, 가치들이 헛되게 느껴지고 그 헛된 꿈과 가치들이 현실의 나를 태워버릴 것 같아서 우리는 등을 돌려 태양을 피하게 된다.
나의 요즘 생각이다. 지금 이 상황이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아서, 내 노력의 범주 밖에 일이라서, 꿈이 허황된 망상처럼 느껴져서, 현실이란 이름 뒤에 숨어 절망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태양은 역사와 문학 속에서 늘 희망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고흐는 해바라기를 그리며 기뻐했고, 낭만적인 이태리의 사내들은 오 솔레 미오(‘O Sole Mio)라 노래하며 연인을 태양으로 고백했다.
이집트에서는 태양신 라가 아포피스와 싸우는 시간을 낮이라 부르며, 크리스천들에게 태양을 하나님에 비교한다.(시 84:11)
반면에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속 뫼르소는 너무나 밝은 태양의 빛을 감당하지 못한다. 뫼르소는 태양을 ‘냉혹하고 가혹하다’라고 말했고, 해변에서 아랍인을 죽인 뒤 ‘태양 때문에’라고 대답하며 사형선고를 받는다.
이렇듯 곡식이 익어가는 평화로운 들녘에서 태양은 따스한 풍요로움의 찬미 일 것이나, 고난뿐인 사막에서 태양은 정수리를 태울 것만 같은 역경 일 것이다.
우리의 꿈, 믿음, 가치 기준들은 이전과 다르지 않다. 변하는 것은 오직 우리의 상황이다. 상황에 따라 꿈은 희망이 되기도 절망이 되기도 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신 앞에 선 단독자’를 말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이 말과 함께 아브라함과 입다를 비교한다. 아브라함은 100세 하나님이 약속한 아들 이삭을 얻었다. 신은 그런 귀한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떤 사설도 달지 않고 이삭을 돌 제단 위에 눕혀 칼을 높이 빼들었다. 그때 천사가 임하여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며 다급히 말린다. 그리고 준비해둔 숫양 한 마리로 대신 제사를 지내게 했다.(창 22:12) 신은 숫양을 기뻐 받으시고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로 불리게 됐다.
반면 입다는 암몬과 전쟁하기 전에 자신이 승리를 한다면 고향에 돌아가 나를 마중 나오는 첫 번째 사람을 인신공양으로 바치겠다고 스스로 서원한다. 그렇게 승리한 뒤 돌아간 고향에서 처음 마중 나온 사람은 자신의 딸이었다. 그때 입다는 옷을 찢으며 울부짖고 후회하며 딸을 제물로 바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입다의 제사를 받으셨다는 기록이 성경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제사를 명령하신 적도 단연코 없다. 입다는 서원을 하기 전에 이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신의 능력을 받았다.(삿 11:29) 그런데 입다는 주위에 시선 속에서 명을 받지도 않은 멋대로 한 약속 때문에, 사랑하는 딸을 누구도 받지 않는 무의미한 제사로 잃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를 통해 말한다. 주변의 어떠한 상황도 아닌 오직 나라는 존재 자체가 신 앞에 독대하는 태도로 살아갈 때 더 나은 삶을 살게 된다고.
사회의 기준도, 주위의 비교도, sns의 자랑도 아닌 오직 내 안의 믿음, 가치 기준, 꿈만이 나의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한다.
모든 상황 앞에서 우리는 태도를 결정한다. 모든 일의 패러다임은 마음에서 나온다. 내 허락 없이 누구도 나를 불행하게 할 수 없다.
태양을 등지고 있다면 우리 눈앞에는 그림자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태양 앞에 서서 마주할 수 있다면 우리의 앞에는 광명 뿐일 것이다.
그러다 추운 겨울이 오면, 세상 모든 것이 웅크리고 손을 뻗지 못할 때 오직 태양만이 유일한 따듯함의 기원이 되어 우리를 비출 것이다.
언젠가 우리가 힘들게 지켜온 믿음과 가치가 그리고 꿈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오늘도 당신 안에 밝게 혹은 뜨겁게 빛나고 있을 꿈을, 믿음을, 가치를 지켜내길 바란다.
anson seabra - keep your head up princess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