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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닌그라드 Apr 16. 2023

꽃길만 걷길




  다만 며칠 전, 바람이 많이 불던 날. 늘 똑같은 길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똑같은 이유 때문에 걷고 있었다. 다소 쌀쌀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우며 땅을 보며 걷던 중 무엇인가 한아름 나를 덮쳐 안음을 느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강한 바람에 길가에 맺힌 수많은 꽃잎들이 흩날리는 것이었다.


  돌아보니 온통 꽃잎뿐이었고, 나는 어느새 꽃밭 한가운데 서있었다.



  예년보다 일찍 핀 꽃들은 어느새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자취를 감췄다. 형형색색 한껏 치장했던 나뭇가지들도 어느새 비슷비슷한 연두색 유니폼을 맞춰 입었다. 다만 한 달을 채 가지 못하는 봄이 벌써 그리운 기분이다.


  눈에 보이는 봄은 꽤나 짧다. 들에 핀 꽃도, 나무에 달린 꽃잎도, 움트던 새싹들도 다만 며칠을 가지 못한다. 가장 아름다운 봄은 만물에게 가장 짧은 시간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긴 봄이 있다. 겨우내 바싹 마른 흙냄새 사이로, 어제보다 춥지 않은 오늘의 아침 공기로, 어제보다 길어진 해 덕분에 조금 더 밝아진 퇴근길로, 길 위를 한가득 수놓은 꽃길 위에서 우리는 봄이 남겨둔 봄의 흔적 속에서 긴 봄을 살아간다.




  우리의 봄은 언제인가. 먼 옛날? 젊었을 적? 요즈음? 아니면 아직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찬란하게 아름다운 그 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열매를 맺으려 떨어질 것이고, 적당히 따사로웠던 날씨도 어느새 타들어가는 더위로 바뀌어 버릴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멈추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봄의 흔적이 우리에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내가 걸어야 할 길이, 흩날리는 꽃잎으로 수 놓인 끝이 보이지 않는 꽃길이기 때문에 나는 기꺼이 그 길을 걷는다.



  아름다울 줄 알자. 꽃은 저물면서도 아름답다. 우리는 질지언정 꽃으로 지자. 흩날리는 꽃발로 마음껏 날아다니다가 살포시 내려앉아 꽃길을 만들자.


  내 마음의 꽃은 내가 피울 수 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가 아는" 사랑을 하는 것. 내가 아는 착한 마음을 베푸는 것. 누군가 아는 착한 일이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해서 내 감정을 향해 베푸는 선한 행동이 나의 마음에 꽃을 피워낸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꽃을 피워 길가로 한송이 한 송이씩 던질 때, 작은 꽃잎들이 한 송이씩 모여 비로소 아름다운 꽃길이 완성될 것이다. 개인의 선한 행동 하나하나가 꽃밭을 일굴 것이다.


  오늘 하루, 작지만 아름다운 다섯 개의 분홍 꽃잎을 피워내 저 꽃길을 향해 툭 던져본다.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최유리 -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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