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칼리닌그라드 Jun 23. 2022

낭만의 갈증

너랑 얘기하면 오글거려


 나는 가끔 친구들과 대화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나는 감정에 솔직하고 감수성이 많아 대화에도 그런 것들이 묻어난다. 그런데 친구들은 조금 다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하면 흔한 말로 무슨 말을 못 하게 한다.

 위로가 필요한 친구에게 넌지시 건네는 위로도, 갑자기 떠오른 꼭 말해주고 싶은 책의 구절도 친구들에겐 그저 오글거리는, 감성에 젖은 진부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들의 대화 주제는 재산과 재물, 주변인들의 가십거리, 더 나아가 외설적인 내용들까지 서슴없었다. 그런 대화들은 마치 나의 영혼을 좀먹는듯했다.


 감성과 낭만은 구시대적 유물로 치부하고 실리와 유흥에 중점을 둔 대화에 이골이 났다.


책들이 노을과 함께 쉬고 있다.


 인문학적 가치가 현대 세상에서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세상의 실리를 중요시 여기며 문화의 가치를 취미 그 이상도 이하로도 여기지 않았던 지난날의 과오는 이제사 나타나고 있다.

 비싸지는 책값과 비어 가는 내용들에 책은 더 이상 갈증을 느끼는 학생들의 지적 금맥이 되어주지 못하고, 전시회들은 교양의 사치품으로 전락했다. 돈은 넘치지만 인문학적 소양은 떨어진다. 경매에 팔리는 그림의 예술적 가치보다 낙찰액이 더 중요해졌듯이 말이다.


 인문학적 감성이 사라진 시대. 사람들의 텍스트는 종이와 펜에서 스마트폰과 손가락으로 옮겨갔다.

 어둠 속에서도 빛날 미래와 소망을 꿈꾸던 시인의 상념은, 밝은 빛 아래서 재산과 이익을 탐구하는 글이 되었다.

 아고라는 노변과 광장에서 인터넷 속 댓글 창으로 옮겨갔다. 해학과 풍자의 민족은 조롱의 민족으로 변화하여 조롱과 비난이 말의 목적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언어가 위로와 희망의 도구에서 비난과 힐난의 무기로 변화했다.

 알베르 카뮈는 “대화와 개인 관계가 선동 또는 격론으로 대체되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경쟁사회에서 훈련된 이성의 아비투스를 가지고 살고 있다. 쓸데없는 감정과 감상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더 높은 곳, 더 많은 부를 향한 날개를 펴 지금까지 날아왔다. 그 결과 누구도 넘보지 못할 기라성을 세웠다. 그런데 이제는 그 날개가 피곤한지 삐그덕 거리기 시작한다. 초라할지라도 나트막한 건물 사이사이 묻어있던 사람들 간의 정은 높고 거대한 빌딩들 속에서 차갑게 식어갔다. 좁은 편지봉투와 우표 한 장에 다 담을 수 없어 속으로 삼켜야 했던 사랑의 노래가 메신저 속 단 몇 글자로 가벼워져 간다.


 낭만의 아비투스를 꿈꿔본다. 감성이 오글거림으로 치부되지 않고 문학에 감동하며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할 로마의 햇빛이 비취길 소망해본다.


 나는 인문학적 질문이 인간과 짐승을 구별짓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번식과 번영, 쾌락의 본능을 넘어서 오늘 하루에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 종족번식과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짐승의 연대기에서, 제각기 다른 모습의 의지와 의미를 갖고 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행위.


 수학이 대체하지 못할 미학의 영역이 있다. 과학이 대체하지 못할 문학의 영역이 있다.
 나는 조금의 낭만이 과열된 군중 속 우리들의 작은 숨구멍이 되길 바란다.


 나는 어쩌면 감성과 낭만에 갈증이 생긴 듯하다. 물론 감성과 감정은 현대의 세상에서 품고 살아가기엔 너무 무거운 짐일지도 모르겠다.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바보 같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분명히 세상에는 낭만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성에 세계에서 살아가는 낭만적인 바보들이 있다.

 이들의 세상에선 일상의 채도가 짙어진다. 그저 지나칠 매일매일의 노을의 최후를 목도하며 어김없이 떠오르는 새 아침에 감사한다.


 마음도 생물학적으로는 뇌라는 고깃덩어리의 화학반응일 뿐이지만 단지 인간인 우리가 조금 더 민감할 뿐이다. 하지만 그 조금의 민감함으로 호메로스는 영웅들을 찬양했고 이상은 날개를 펴 날아올랐다.






 고된 사회생활 속에서 채도를 잃어가는, 너무 빨리 어른이 된 회색의 어린아이들이 있다. 마음은 따라가지 못한 채 시간의 흐름 가운데 마음에 세월의 튼살이 생긴 어른들.

 회색으로 점점 희미해져 가는 일상에 채도가 다시 짙어지길 바란다. 노을이 다시 붉어지고 이파리들은 다시 녹색으로 물들며 한 잔의 물이 아직은 어린아이로 남고 싶은 당신의 순전함처럼 투명해지길 바란다.


 길지 않은 영화 한 편에 눈물을 담고, 내려먹는 커피 한 잔에 여유를 담고, 길고 긴 책 한 권에 순간을 담아낼 때 작은 일상은 구석부터 물들듯이 색이 채워지리라 생각한다.



 낭만이 칠해진 우리의 작은 일상은 어제보다 다만 조금은 더 찬란하리라 생각한다.











Yesterday Once More - Carpenters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이전 06화 꽃길만 걷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