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칼리닌그라드 Jul 11. 2022

아버지의 수제비

눈을 치우고

 추운 겨울날 불어먹는 수제비를 참 좋아한다. 어린 시절부터 늘 수제비는 아버지의 몫이었다. 손에 밀가루가 묻고, 힘들게 반죽을 빚어야 하는 일을 엄마를 시킬 수 없다는 참으로 갸륵한 사랑이었다. 날이 추워서, 쌀을 채워놓지 않아서, 만두를 빚다 피가 남아서, 수제비를 먹는 이유도 참 가지각색이다. 수제비는 언제나 친근한 음식이었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수제비는 한겨울 눈을 치우고 그 아래 묻어둔 김장독을 닦고 나서 먹었던 김치수제비다. 어찌나 춥던지 손끝이 빨갛다 못해 검붉게 달아올랐고, 어린놈이 아버지를 뭘 얼마나 대단하게 돕겠다고 낑낑거렸는지 옷은 온통 흙투성이 었다. 아마 나 때문에 일이 더 늦게 끝났을지도 모르지. 그마저도 아들에게 먼저 들어가란 말 없었던 건 아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아버지의 계략이리라.


항아리


 너무 추웠던 지난 1월, 문득 영화에 나온 김치수제비를 보며 아버지를 향한 막연한 그리움으로 수제비를 빚어봤다. 그런데 수제비의 반죽은 조금만 물을 더 넣으면 질축하고 가루가 많으면 점토처럼 깨지길 반복했다. 결국 내가 만든 수제비엔 기대했던 추억이 없었다. 뻑뻑한 밀가루 덩어리는 떡에 가까웠고, 엄마의 김치가 아닌 석사들의 레시피로 만든 김치는 수제비를 해 먹기엔 너무 달았다. 김치야 엄마에게 남은 것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달라고 하면 될 테지만, 반죽을 해주실 아버지는 이제 안 계신다. 어린 시절 너무나도 쉽게 만들어 내던 아버지의 수제비에는 무엇이 들어갔을까.


  어린 시절에 보았던 아버지의 반죽을 치대는 모습은 참 신기했다. 어린 나이에 호기심으로 나도 반죽을 해보겠다 말하면 주먹만큼 떼어 주며 네가 먹고 싶은 모양대로 만들어 보라던 반죽을 난 지점토처럼 갖고 놀았다.

 약간 뻑뻑하게 치대어 밀대로 밀어 썰어내면 면이 되고, 동그랗게 누르면 만두피가 되고, 조금은 질게 손으로 죽죽 뜯어내면 수제비가 되던 반죽. 그런 반죽은 나에게 아버지를 뭐든 만들어내는 마술사처럼 보이게 하는데 충분했다.




 반죽 그 자체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모양이 없고 색도 없으며 하물며 먹을 수도 없다.

그저 물과 밀가루, 계란의 혼돈.

무생물과 이미 죽은 생명 그리고 앞으로 생명이 될 존재들의 집합.


 이야기는 대개 그런 곳에서 시작된다. 말도 안 되는 집단. 혼돈 속에서 창조가 일어난다.

 꽤 유명한 옛날 얘기에서는 세상이 흑암 속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땅과 바다로 자라날 수많은 가능성들이 작고 검은 점 안에 뒤섞여 있었다. 그곳에 질서와 규칙이 부여되고 그 모양이 늘어지고 가늘어지고 넓어지길 반복하며 우주의 모양이 갖추어졌다. 그 속에서 인간을 빚어낸 이는 당신의 모습을 꼭 닮은 친구가 필요하셨을지도 모르지.


 카오스는 그 속에 무한한 창조의 씨앗을 품고 있고 그것을 반죽할 때 코스모스가 시작된다.

 아버지는 어떤 코스모스를 빚어냈을까?



 아버지의 반죽 안에서 창조된 것은 가족을 향한 사랑이었다. 추운 겨울날, 자신의 어린 시절을 아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마음, 수제비는 먹고 싶지만 아내의 손이 더러워지는 것은 원치 않았던 사랑.


 우리와 가까운 곳에 반죽이 하나 있다. 바로 마음이다. 우리의 내면에 우주가 있다. 우리가 사유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우리의 우주이다. 데카르트는 사유가 곧 존재라고 말했다. 세상을 자신 안에 사유함으로 곧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면으로 사유하는 우주에서 피어난 사랑은 물질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느껴진다. 어린 아들의 특별할 것 없는 하루를 추억으로 채워준 것이 바로 그 한 그릇이었다.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의 마음엔 수많은 카오스들이 있다. 이미 정해진 코스모스 속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의 영역. 그 반죽에서 무엇을 창조해 낼지는 우리의 작은 손에 담긴 사랑에게 답이 있다.


 나는 거대한 우주의 코스모스가 아닌 작은 보라색 코스모스를 피워내고 싶다. 반죽에서 금은보화를 빚어낼 수는 없지만 단지 작은 한 그릇의 수제비는 끓일 수 있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역사를 바꾸는 영웅은 되지 못해도 작은 하루를 고이 모아 역사를 만들 수는 있다.

 똑같은 일상을 앨범의 한 페이지로 남길 다만 한 그릇의 사건. 아버지가 피워냈던 작은 사랑. 그것이 먼 훗날에도 작게나마 어렴풋이 기억날 온기이다.


 왜인지는 몰랐지만 늘 알고 있었던 사실, 누구나 품었던 보편적인 사랑의 근거. 그것은 아마 따듯한 그릇을 내어주던 눈빛이 아닐까.


 그것이 추운 겨울이 마냥 춥지만은 않았던 아들과 아버지의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Ben Folds - Still Fighting It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이전 08화 가끔은 당황스럽더라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