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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닌그라드 Aug 08. 2022

아버지의 업라이트

늙어가는 소음, 익어가는 울림


 우리 집에는 나보다 20살 많은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가 있었다. 부모님께서 결혼하자마자 중고로 15년도  더 넘은 피아노 한 대를 사셨다. 어린 시절 나는 작곡을 전공하신 아버지를 따라 음악을 가까이했고, 늘 나에게 피아노 학원을 보내려 하는 아버지를 피해 도망 다니기 바빴다.

 왜인지 어렸을 땐 피아노가 시끄럽기만 했다. 그럴만도 한것이, 나무는 20년도 더 넘어 어지간히도 삐그덕 거렸고 오래된 줄은 튜닝이 맞지 않아 소음에 가까웠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피아노 앞에 앉으셨다. 아버지는 내가 피아노를 치면 듣기만 하실 뿐, 절대 본인이 연주를 하신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4부 성가 악보를 펼치시곤 굳은 손을 더듬더듬 느리지만 조심스럽게 치시기 시작했다.

 그날의 늙은 피아노는 웬일인지 시끄럽지 않았다.


먼지가 가득한 작업실


 1981년, 어쩔 수 없는 역사의 흐름과 당시 청년들이라면 외면할 수 없었던 시대의 부름에 아버지는 음악을 포기하셨다. 한양대에서 제적을 당하고 군대에 끌려가셨고, 그 안에서 배운 기술로 간판일을 시작하셨다.

 현장에서 몸을 쓰는 블루칼라로 억척스레 살아오셨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낭만을 잃지 않았다. 썩 어울리는 뿔테안경을 끼고 문학책을 읽었고, 옷장에는 수십 벌의 정장과 넥타이를 색별로 정리해놓았다. 차를 탈 때면 언제나 레너드 번스타인의 뉴욕 필하모닉 CD가 틀어져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평생 공부와 음악만 하시던 분이 선택한 노동자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겠지. 언제나 집에 오시면 고단한 일에 지친 자그마한 육체를 바닥에 뉘이기 바쁘셨다. 그렇기에 본인이 포기한 음악의 길을 아들인 내가 마무리 지어주길 원하셨고, 나는 티없이 순전하고 맑은 그 기대가 참 많이도 불편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피아노 앞에 앉으셨다. 아들에게 쳐달라고 하지 않으시고, 아들의 연주를 듣지 않으시고 본인이 직접 그 자리에 앉았다. 나는 아버지가 피아노 앞에 앉으신걸 처음 봤다. 아버지가 피아노를 치신다니. 다 까먹으셨을 텐데.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묘한 설렘이 피어나기도 했다. 아버지가 직접 치는 피아노는 과연 어떤 소리가 날까.

 물론 아버지의 피아노는 내가 기대한 것만큼 아름다운 선율은 아니었다. 성가보를 펼치고 찬송가를 4부 화음으로 더듬더듬 음을 찾아가며 치실 뿐이었다.


 갑자기 왜 피아노를 치시는지는 알 수 없었다. 새삼 젊은 시절을 추억하셨는지, 아니면 돌아오지 않을 청춘을 안타까워하셨는지.


 다만 나에겐 피아노 앞 아버지한테서 뜨거웠던 여름날 대학가의 청년이 보였다.



 피아노는 늙어가며 소음이 난다. 삐그덕거리는 페달 소리, 기름칠되지 않은 경첩 소리, 조율되지 않은 스트링. 늙어간다는 건 그렇다. 육체는 노화해 삐그덕 거리고, 마음은 점점 조율되지 않아 남들과 부딪히며 잡음을 낸다. 한때는 아름다운 선율을 담아내던 피아노가 점점 소음만 남아 있는 땔감으로 말라간다.


 그러나 피치가 어긋난 피아노는 조율하면 된다. 기름칠을 하고, 마른걸레로 계속 닦아 낸다면 그 위로 다시 은은한 광택이 올라온다. 충분히 익은 나무에 풍부한 울림이 울려 나오고, 음색은 적당히 무뎌져 더 이상 날카롭지 않은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 기름칠된 부속은 부드럽게 움직이는 유연함을 가진다.

 익어간다는 것은 울림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괴테는 배가 항구에 있을  가장 안전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배의 존재의 이유는 아니라고 했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잃어버린 나의 존재의 이유는 없는가 생각해본다.


 아버지의 그날은 당신을 조율하는 날이었을 것이다. 단 몇 그램도 되지 않는 건반 앞에서 마치 거친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내셨겠지.

 자신이 포기한 꿈을 누군가에게 투영하지 않는 것. 자신이 직접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가는 결단. 고된 삶 속에 순순히 늙어가 주는 것이 아닌 다시금 삶의 의지를 회복하고자 하는 늙은 항해사의 출항.

 그것이 아버지의 조율이었고 기름칠이었다.


 아버지는 그날, 아마 다른 때보다 조금 더 힘든 날이지 않았을까 싶다. 저물어 가는 자신의 삶이 그대로 침몰해 버릴 것만 같아서, 다시 한번 자신의 배에 녹슨 엔진을 켜고 구멍난 돛을 편 것은 아닐까.



 삐그덕 거리던 피아노 페달처럼. 적절한 삶의 소음이 필요하다. 매일의 똑같은 적막을 깨고 내가 아직 살아있구나를 분명히 느끼게   계기가 필요하다. 반복되는 매일을 강물에 띄우듯 흘려보내는 것이 아닌, 나의 의지로 방향키를 잡고 항해할  우리는 늙어가는 소음이 아닌 익어가는 울림을 가지게  것이라 생각한다.











Beethoven: Piano Concerto No. 5 in E-Flat Major Op. 73 “Emperor” - l. Allegro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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