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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닌그라드 Dec 13. 2022

아버지, 아들은 이제서야 아빠를 다 잊었나 봅니다.


  벌써 아버지가 내 곁에서 조금 멀리 떠난지도 햇수로 4년이나 되었다. 세월은 감성에 젖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갈 길을 갔고, 나는 그 속도에 발맞추어 늦지 않게 따라가려다 보니 어느덧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문득 뒤돌아 보게 되니 꽤 먼길을 와 있는 것 같지만, 나는 그저 살아야만 하는 매일을 살았을 뿐이었다.

  참 감사한 일이다. 내가 뭔가를 하지 않아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 쌓여만 가니 말이다.


  내가 겨울에 아빠를 생각하는 이유는 별 것 없다. 아빠의 생일이 겨울이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항상 내게 자신은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해가 바뀌어 한 살을 꽁으로 먹었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하셨다. 그마저도 50이 넘어갈 무렵부턴 왜 일주일 먼저 태어나서 일 년씩 빨리 늙냐 투덜대셨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항상 겨울에는 좋은 기억들로 가득 차있다. 언제나 기아 옵티마의 뒷자리에 나를 태우고 엄마와 아빠는 앞자리에 앉아 동네마다 가득한 겨울을 누비고 다녔다. 부모님은 한아름 아름다운 트리로 꾸며진 교회에서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성가대 연습을 했고 나는 뒷자리에서 부모들을 기다리는 나와 같은 처지의 아이들과 함께 왠종일을 놀았다. 아빠는 생일에 맞춰 겨울이면 항상 맛있는 걸 먹으러 다녔고 본인의 친구들과 만날 때 항상 나를 데리고 다니며 인사를 시켰다. 나이 마흔에 얻은 외아들이 얼마나 예뻤으면 말이다.


  내가 사계절 중 겨울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 이런 좋은 기억들로 가득 차있어서이지 않을까.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동대문 청계천변에서,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파주 프로방스 마을에서, 종로 낙원상가에서.


  도대체 겨울은 왜, 지금 내 맘이 이렇게도 아프게 하나같이 좋은 기억들로만 가득가득 차있단 말인가.



  많이 힘들었다.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 많이 갑작스러웠고, 꽤 급했다. 난 아직도 가끔 아쉬워한다. 그날 아침 아버지가 나에게 "아빠 갈게."라고 말했을 때, 왜 가기만 하냐고 따져 묻지 못한 것을. 항상 "아빠 갔다 올게."라고 인사했으면서 왜 그날은 간다고만 인사했냐고. 먼저 알고 있었던거냐고. 나한테도 알려 줬으면 세상 모든 것이 부서져라 꼭 껴안아 줬을 텐데 왜 아빠만 나한테 인사했냐고. 나도 인사가 많이 많이 하고 싶었는데 왜.


  시간은 잔인도 하셔라. 내가 조금만 더 슬퍼할 수 있게 잠시만 멈추어 주지. 나는 다시 세상으로 나갔다. 매일매일을 살았다. 살아냈다. 발버둥을 쳤다. 장례가 끝나고 딱 하룻밤만 슬퍼했다. 나흘 전 아침식사 그릇을 설거지하지 않아 벌레가 꼬이는 집안에서, 차갑게 식어버린 방바닥 위에 앉아 딱 하룻밤만 슬퍼했다. 정리해야 될 일이 많았기에, 앞으로 살아내야 할 일상이 있었기에 우리가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은 단 하루 저녁뿐이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아무것도 못할 줄 알았는데,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힐 줄 알았는데, 나는 남들이 사는 일상을 다시 똑같이 살아가기 시작했다. 장례에 와주신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전화번호부를 뒤져 한 사람씩 감사인사를 드렸고, 월요일이 되자마자 대학교로 찾아가 갑작스럽게 결석한 수업의 교수님들을 한 명씩 찾아다니며 상황을 설명하고 출석 인정을 부탁했다. 그중에는 나를 독한 냉혈한으로 보는 교수님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아내야만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 삶이 나를 어떻게 할지 모르겠었다. 내가 이 삶을 살아내지 않는다면, 이 삶이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그게 나의 살길이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생존을 위해 하루를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자 삶은 나에게 '망각'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점차 조금씩 잊혀갔다. 좋았던 추억도, 나빴던 기억도, 슬픔이나 기쁨 따위의 감정들도 조금씩 조금씩 아주 천천히 희미해져 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인간에게 망각이 주어진 이유는 너무 오래는 슬퍼하지 않길 바랐던 신의 배려였구나. 매일매일 또렷하게 기억하고 매일매일 사무친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살아갈 길은 길고 남은 삶은 한참인데, 슬픔이 계속 쌓여만 간다면 그 짐은 너무나도 무겁겠지.


  망각의 축복으로 사람들은 지난날에 파묻혀서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아닌, 다시 또 바보같이 도전을 하는구나.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사람을 사랑하고, 누군가를 추억하는구나.

  신기하지. 혼나기도 많이 혼났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왜 그런 건지 그 이유는 가물가물 하다. 함께여서 즐거웠던 기억, 웃고 있던 표정, 충만했던 감정은 고이고이 잘 개어서 마음 한켠에 남아있는데 말이지.






  그런데 오늘, 문득 아빠가 나의 기억 저편에서 배를 타고 넘실넘실 다가왔다. 아빠가 갑자기 생각나니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았다. 그 이유는 아빠의 목소리가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생각뿐일 지라도 아빠는 항상 나에게 "잘하고 있다." "반칙하지 마라" "사랑한다." 이야기해줬는데, 어느샌가 더 이상 아빠는 당신의 목소리로 나에게 말해주고 있지도 않구나라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오 주님 이럴 순 없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목소리는 추억하고 싶은걸요."


  가끔 만나는 아빠는 한 번씩 이렇게 내 마음을 훑고 지나간다. 지금 이 글도 눈물로 얼룩진 채 써 내려가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마주하는 추억은 왜 이렇게 아린 것인지. 세월의 한복판에서 갑자기 마주치는 어린 아들과 그의 아버지는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가.


  하지만 됐다. 이렇게라도 아빠를 한번 더 생각했으니 됐다. 생전 떠올리고 살지도 않던 아빠, 이렇게라도 잠깐 만났으니 됐다. 오늘 한껏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슬퍼한 뒤에 내일이 되면 나는 아빠를 더 잘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갑자기 밀려드는 추억으로 마음이 터질 것만 같이 충만해서 저녁은 안 먹어도 될 것 같다.




  아빠 다시 만난다면 얘기해줄게요. 그날 아침, 학교 가는 길에 피어있던 벚꽃나무를.
  투정도 조금만 부릴게요. 많이 힘들었다고, 너무 무서웠다고.

   그런데 그것보다는 먼저 얼굴만 오래, 아주 오랫동안 쳐다볼게요. 내가 알던 그 얼굴이 맞는지, 내가 아는 그 목소리와 똑같은지, 당신의 눈동자에 담긴 나의 모습은 그대로인지.











산들 - My Childhood Story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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