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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닌그라드 Jan 17. 2023

아가, 내 아가


  길을 걸어가다 뒤에서 "아가"라고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설마 하는 마음과 약간의 민망함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그때 운전석의 창문이 열리며 선글라스를 쓰고 단발머리를 우아하게 귀 뒤로 꽂은 중년의 여성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의 어머니다.



  엄마는 나를 부르실 때면 항시 아가라고 부르신다. 내겐 참 민망한 별칭이다. 나는 키가 이미 중학교를 졸업할 때 180을 넘었다. 거리 한복판에서 이런 거구의 청년이 자그마한 중년 여성에게 아가라고 불릴 때면 참으로 난감하기 그지없다.


  나는 생각했다. 과연 저 어른은 나에게서 무엇을 보셨을까. 나의 어디에서 아가의 모습이 보였을까.


  나는 아가라는 별명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아니 다 큰 사내가 애기는 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내가 이렇게 말할 때면 언제나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다. “네가 애지 뭐야. 넌 늘 애야.” 거기다 대고 뭐라고 할 말은 딱히 없는 것 보니 아직 애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의 생각을 깨트린 하루가 있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일을 끝내고 돌아와서 소파에 앉아 TV를 켜고 나를 불러냈다. 그리고선 나를 곁에다 앉히시고 품 안에 눕듯이 기대이셨다. 그렇게 다만 몇 분이나 지났을까, 그렇게 잠시 눈을 붙이고 쉬던 엄마는 번뜩 일어나시더니 저녁에 뭐 먹고 싶냐는 질문과 함께 부엌으로 향하셨다.

  그때 나는 짧은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 속으로 휘말려 들었다. 한마디의 말도 없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아득바득 하루를 살아내고선 또다시 부엌으로 향하는 그 뒷모습엔 아들 하나 지켜보겠다고 작디작은 여자가 혼자서 모두 짊어맨 삶의 무게가 보였다.

  그 지친 하루 속에서 잠깐 쉬어가기 위해 아들 품에 안기듯 잠시 기대어서 들렀다 가는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아, 내가 당신의 전부였습니까.”


  나는 참 내가 힘든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었다. 열아홉에 아버지를 여읜 동화책 속 주인공쯤으로 생각했었나 보다. 그런데 내 옆을 보니 한 여자가 있었다.

  늦게 논 아들 하나 다 키워서 대학 들어갔으니 이제 좀 한숨 돌리나 했는데 남편이 떠나버린, 쉰셋에 과부가 된 아직도 너무 예쁘고 젊은 여자.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남자와의 마지막 추억인 아가를 위해 살고 있었다. 꿈으로 빽빽하게 채웠던 학생의 삶도, 아름다운 여자의 삶도, 화려했던 사회인의 삶도 모두 뒤로 한 채 그녀는 남은 자신의 삶, 기꺼이 자기의 아기를 위해 살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이런 말을 건넨 적이 있다.

엄마는 큰 아름드리나무 같아. 마을 초입에 서있는. 때 되면 흐드러지게 꽃이 펴서 한껏 아름답고, 때 되면 한아름 푸르러서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들려주고. 그렇게 그냥 마을 초입에 서서 그늘 밑에서 쉬어가는 사람들, 지나가는 사람들 보면서 즐거워하고. 뿌리가 하도 깊으니 웬만한 바람엔 꿈쩍도 안 해. 그러니까 주변에 머물러 쉬어가는 사람들이 많나 봐. 그래서 겨울이 와도 초라하지 않아. 또 그러다 금방 봄이 와.
굳이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


  사실 엄마는 늘 밝은 사람이다. 여전히 밝고 해맑고 천진난만하고 긍정적이고 예쁘다. 이 세상 어떤 말도 그녀에겐 다 칭찬이고 격려다. 참 대단하다.

  근데 뿌리는 또 얼마나 깊은지 강단이 어마어마하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사람이다. 사막 한가운데에 떨어트려 놔도 아마 다음 주 정도면 집으로 돌아올 분이다. 이런 애틋한 글이 어울리지 않는 호쾌한 양반이다.

  한 번도 나에게 힘들다 슬프다 가타부타 얘기해 본 적도 없다. 그냥 내가 그렇게 느꼈다 뿐이지 딱히 힘들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글을 쓰는 건 아들 마음이다. 오글거리신다면 읽지 마셔라.






  그녀의 지친 하루, 잠시 육신을 기대어 쉬어간 아들의 품은 어느새 작은 남편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기꺼이 결심했으나 쉽지만은 않았겠지. 때론 버거우셨겠지.


  부모들에겐 우리가 전부다. 그들의 마음속엔 언제나 우리가 살고 있다. 그렇기에 부모의 마음이 무너진다면 자녀인 우리가 거할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집이 무너지지 않게 지켜야 하겠다.


  우리의 육신의 정중앙에는 배꼽이 있다. 첫 번째 이별의 증거요, 어머니와의 첫 번째 추억,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 역사다. 씻을 수 없고 메울 수 없는 이 영원한 흉터가 엄마와 아기의 관계성이다.

  잊을 수 없고 지울 수 없는 흉터인 배꼽은 앞으로도 영원히 메워지지 않을 것이다.


  아가라는 말이 아직도 미치도록 어색하지만 가끔은 기꺼이 당신의 아가가 되어드려야겠다.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Moon River - Audrey Hepb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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