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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닌그라드 Aug 27. 2023

페르시안 카펫


  우리 집 거실엔 그리 크지 않은 푸른색 페르시안 카펫 한 장이 깔려있다. 주말 아침 나는 종종 LP를 한 장을 걸어놓고 카펫 위에 앉아 테이프 클리너, 일명 돌돌이를 돌린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기도 한 그 순간, 나는 마치 수양이라도 하듯 카펫이 머금고 있는 숨은 먼지 한 톨까지 꼼꼼히 청소한다.


  다 쓴 돌돌이가 한 장 한 장 쌓여갈 때면 마음의 묵은 때도 몇 겹이고 벗어지는 기분이다.



  카펫은 여러모로 참 쓸모가 많다. 걸어 다닐 때 발소리가 나지 않고, 겨울엔 방바닥을 더욱 따듯하게 해 준다. 두터운 천이 방 안에서 울리는 소리를 먹어 소음을 없애기도 한다. 게다가 문양도 예쁘니 인테리어도 되지 않는가?

  그러나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카펫도 단점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너무 쉽게 먼지가 붙는다는 것이다.


  카펫은 까다롭다. 며칠에 한 번은 돌돌이로 밀어줘야 한다. 안 그러면 해운대 앞바다 마냥 서그럭 서그럭 거린다. 털어도 털리지 않고,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덕분에 온 집안의 먼지는 카펫이 다 머금고 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다. 보기엔 그저 예뻐 보이나 가까이 가서 본다면 온갖 먼지투성이다. 주변의 온갖 소음과 스트레스를 머금고 낮게 가라앉아 괜찮은 척, 의연한 척 미소만을 띄워 보낸다. 뭐가 좋다고 그 먼지들을 한 아름 껴안고 놔주질 않는다.



  돌돌이질이 필요하다. 돌돌돌돌.. 말없이 가만히 앉아 돌돌이를 돌리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온갖 것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걱정, 불안, 분노, 슬픔, 원망들. 물론 그 힘이 카펫을 찢을 수는 없겠으나 카펫에 들러붙어서 서그럭 서그럭 표면을 거칠게 했던 것들을 말이다.


  감정의 모양이 선명해지고 그 원인이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먼지의 감정들은 한 장 한 장씩 쌓여서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된 불행은 불행이 아니다. 그러므로 행복이 설 자리가 생긴다. “
이상복,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中


  돌돌돌돌.. 감정이 분명 해지는 것. 내 모습이 분명해지는 것. 이는 마주칠 수 없던 “나”를 마주하는 과정이겠다.


  자기를 선명하게 보는 사람들의 의연함이 있다. 적요 속에서 잠잠히 자신의 삶을 풀어내고 인정한 이들.

  삶을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자유해질 것이다. 이야기된 불행은 더 이상 불행이 아니게 될 것이다.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루시드 폴 - 사람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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