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칼리닌그라드 Jan 25. 2023

오리온자리

영원한 사랑의 성좌


  추운 겨울, 태양이 서둘러 자리를 비키고 어둠이 찾아오면 유독 밝은 별 몇 개가 문득 낮은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 영원한 사랑의 별자리, 오리온자리다.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가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인간 오리온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자신의 환한 달빛에도 감춰지지 않을 만큼 밝은 별들을 엮어 만든 마지막 사랑 고백.



  사실 밤하늘에서 별자리를 찾는다는 게 어불성설이긴 하다. 억겁의 별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밤하늘을 이루고 있는데 거기서 다만 조금 더 밝은 점 몇 개를 선으로 이어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오리온자리는 다만 고대 그리스에서 잠깐 성행한 로맨스 판타지로 끝나지 않는다. 전 세계에는 겨울철 유난히도 밝은 오리온자리를 보고선 그냥 지나치지 아니하고 모두 저 나름대로 만들어낸 이야기들이 있다. 수메리아에서는 양치기로,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로, 북유럽에선 프리가로, 고대 중동에서는 네피림으로 불렀다.


  이렇듯 인류는 별이라는 작은 점들 사이에 선을 그어 잇고 이름을 붙여줬다.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권위자의 특권이다. 인간은 어둠 너머 닿을 수 없이 광활한 우주 속 별들을 관찰하고 제멋대로 이름까지 지어줌으로써 닿을 수 없는 별들을 정복했다. 만약 수많은 별들 중에 우리와 다른 존재가 있다고 한들, 그들은 자신들이 별자리로 박제 되어 동화 속 주인공이 됐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할 것이다.




  독일의 사상가 발터 벤야민은 자신의 논문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이념들은 영원한 *성좌들이며, 그 요소들이 이러한 성좌들의 점들로 파악되는 가운데 현상들은 분할되는 동시에 구제된다.
* Konstellation(獨), 별자리


  만약 한 물건이 그 쓸모를 잃었다고 치자. 그 물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아마도 버려지겠지. 칸트에 따르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현상이다. 그리고 이렇듯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은 이념, 사유를 통해서 그 의미가 부여되고 이유가 설명된다.


  볼펜은 잉크를 머금고 있을 때 그 존재의 의미가 설명된다. 잉크가 마른 볼펜은 더 이상 볼펜이라는 이념에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과연 잉크가 마른 볼펜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어린 시절 우리는 다 쓴 볼펜을 어떻게 하였는가. 그 몸통만을 분리하여 몽당연필을 끼워 쓰지 않았는가? 이는 다 쓴 볼펜이 볼펜이라는 이념적 별자리에서 벗어나, 연필의 연장선이라는 별자리로 편입됨으로써 다 쓴 볼펜이라는 하나의 현상은 구제된 것이다.


  삶에서도 성좌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존재라는 하나의 점을 다른 현상들과 선으로 이어 성좌, 곧 별자리를 만듦으로 우리의 존재를 구제해야 할 것이다.



  우리 눈에 비치는 하나의 별자리를 이루는 별들은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제각기 다른 시간, 다른 곳에서 서로의 존재도 모른채 빛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별자리라는 이름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가 됨으로써 억겁의 시간과 무한한 공간을 뛰어넘는 하나의 역사를 공유하게 됐다.

  저 별들이 얼마나 오랜시간의 영속에서 빛나고 있던 상관없이 이 땅 위에 있는 우리에겐 별자리라는 이름으로 “지금”이 된다.


  우주라는 자연의 현상이 우리의 해석을 통해 “풍경”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 속에서 많은 현상들이 우리의 해석을 통해 “추억”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Across The Universe - Rufus Wainwright



이전 02화 트루먼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