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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닌그라드 May 14. 2022

낮에 뜬 달

밝은 빛 옆에서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미처 자취를 감추지 못한 달과 마주할 때가 있다. 아침의 광명은 기세가 등등한데 아직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달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주인에게 자리를 내주려 부랴부랴 자리를 비켜주는 파수꾼을 보고 있는 듯하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홀로 어둔 밤을 지켰지만 자신에게 빛을 준 주인 앞에서는 그 고운 노란빛을 잃어버리고 마는.


  물론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하지만 그런 감성에 빠질 때면 나는 종종 그 달에게 감정이 이입된다.


'나도 꼭 저 낮달 같구나'

느지막한 햇빛에 달이 비친다.


  나는 이따금 낙심할 때가 있다. 그 모양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긴 인생에 가끔 찾아오는 무력함과 조우한 것이다. 나보다 월등한 동료, 나 혼자 열심을 다하는 인간관계, 자존감의 발목을 잡는 열등감.


  그렇게 별다를 것 없이 찌질해서 조금 더 슬픈 날, 문득 바라본 하늘 위에 떠있는 낮달과 눈이 마주쳤다. 밝은 햇빛 옆에서 창백하게 상기된 모습, 약간은 추운 듯이 서늘함이 서려있는 모습에 나를 투영시켰다.




  가끔이지만 문득 고개를 드는 이 무력함은 마치 한낮에 떠있는 태양과 같아서 주변 모든 것을 압도하고, 사람에게 비추어 그 내면을 샅샅이 드러내 무엇 하나 감출 수 없게 만든다. 내기 아무리 숨기고 싶어 했고 덮어놓고 모른척했던 어두운 면을 모두 드러낸다. 그렇게 드러난 내면은 마치 황량한 사막같아서 열기를 피할 곳 하나 없다.


  그럴 때면 나는 자명하게 드러난 나의 내면을 견디지 못해, 나를 감추고 빛을 피할 그늘을 친다. 자존심과 허영이란 이름의 그늘 아래에서 나는 나를 감추고 괜찮은 ‘척’ 한다.

  하지만 태양이 오랫동안 닿지 않은 그늘에는 습기가 찬다. 습기는 곰팡이를 피우고 곰팡이는 금세 벽 한 켠을 집어삼킨다.

  빛이 아무리 따갑게 숨기고 싶은 나의 모습을 드러낸다 하여도 그 빛을 피해 숨어 곰팡이를 퍼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저 파란 배경에 그려진 달은 어떠한가?
  저 달은 바보 같으리만큼 그저 있다. 태양이 아무리 자기보다 밝게 빛난다 해도, 뜨겁다고 그 낯을 가리지도, 자기가 밝게 있을 수 있는 곳으로 도망가지도 않고 그 자리를 지킨다. 거기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이기 때문에. 그저 그곳에 존재한다.


  그렇게 버티지도 않고 살아보려 아등바등하지도 않던 달은, 주변이 어두워지고 자기의 시간이 되면 태양과 잠시 거리를 두고선 최선을 다해 반짝거린다.

  이렇듯 달이 자신의 시간에 누구보다 더 반짝거릴 수 있는 이유는 태양과 거리를 두고 공존하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을 향해 비추는 빛을 온전히 받아내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를 낱낱이 드러내며 부끄럽게 하는 그 밝은 빛이 결국은 나에게 솔직할 수 있게 해 주고, 훗날 우리를 더욱 빛나게 할 것이라고.

  비록 지금은 나를 창백하게 질린 것처럼 만들지만 차츰 거리를 두고 내 것으로 만들 때 결국 나를 보름달처럼 빛나게 할 것이다.






  세상에 어둠이 많을 땐 자기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빛난다. 동요하지 않는 호수같이 잔잔한 사람들에겐 신비한 아름다움이 있다. 무엇인가를 해서가 아닌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말로 표현 못 할 고고함이 묻어난다.

  그 고고함은 각자의 시간에 각자에게 비친 빛을 온몸으로 받아내 살아온 빛의 찌꺼기다. 나는 그게 낮을 달려 밤에 도착한 달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한다.


  달의 고단함을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햇빛이라고 생각한다.











Bruno Major - Regent’s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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