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찰나를 향한 애틋함이 있다. 여름의 해가질 무렵. 덥지도 그렇다고 선선하지도 않은 그런 날씨. 더위에 축 처진 풀잎 위로 유난히 늦은 햇빛이 비출 때 품는 감정이다. 봄의 새싹에도, 가을의 낙엽에도, 겨울의 눈꽃에도 없는 그런 감정. 늦은 저녁이지만 해는 떠있고, 날씨는 덥지도 선선하지도 않기에 밖에 나와 앉아 느끼는 여름의 한가로움 일 것이다.
노을도 그렇다고 정오의 햇빛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 아주 멀리서 비추는 애틋한 햇빛이 있다. 학교가 끝나고 나오면 팔을 스치던 마른바람. 푹 젖은 옷을 순간 말려 주던 훈훈한 바람. 아버지가 운전하던 차 창에 기대어 바라보는 노을 진 도심. 어떤 색이던 모두 주황빛으로 물들이는. 그런 늦여름에 나는 애틋함을 가진다.
단점을 보는 것은 본능이지만 장점을 보는 것은 능력이라고 한다. 상대의 단점, 약점을 파악해야만 내가 살 수 있었던 선사시대부터 우리는 본능적으로 단점을 볼 줄 안다. 지금도 우리는 각자의 약점을, 혹은 상대의 단점을 대라고 한다면 종이 한 바닥으론 부족할 만큼 써내려 갈지 모르지.
나는 그럴 때 늦여름을 생각한다. 여름이지만 덥지 않고, 저녁이지만 해는 지지 않는 그 순간을 기억한다. 사계절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시간.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그 시간 속에 모든 사물은 흐려져 윤곽만 남아있고, 너와 나는 분간이 안된다. 서로의 정체성이 없어지고 오직 너와 나의 진성(眞性)만이 남은 시간이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과연 있을까?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자신의 본질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 앞에서 도망가려 한다.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기 어려워하고, 그 모습을 아름답다 말하기 꺼려한다. 스스로의 기준과 잣대 속에서 자신을 재단하기 바쁠 뿐이다.
진성(眞性)은 본질을 뜻한다. 참된 성질. 본래의 모습. 나에게서 발하는 진짜 빛. 강렬한 태양에 비친 모습도 아니요, 어둔 달 아래 비친 모습도 아닌 늦은 노을 옆에서 비로소 발하는 자신의 빛. 존재는 윤곽만 남아있고 그 안은 나로만 오롯이 채워지는 그 시간. 나는 늦여름의 노을 속에서 본질을 생각해 본다.
꾸밀 것 없이 너도 나를 몰라보고 나도 너를 몰라보는 그 진성의 시간에 나는 오롯이 나로만 있을 수 있었기에 나는 그 시간을 사랑했던 것 같다.
그대의 아름다움을 보길 원한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여름도 가을도 아닌, 무엇 하나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 시간처럼 당신의 편암함이 당신의 아름다움이 되길 바란다.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다린 -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