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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닌그라드 Jan 21. 2024

패자부활전

한 번쯤 넘어져도


  따듯함 봄이 더운 여름으로 바뀌던 언젠가. 매년 그맘때 치르던 운동회가 생각난다. 치열한 열정과, 눈부시도록 풋풋했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운동장을 말이다.


  각각의 승패가 갈리고 순위의 향방이 정해질 때 즈음 어김없이 치러지던 패자부활전이 기억난다. 어린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던 어른들의 배려. 비록 패했을지라도 실패하진 않았다는 가르침.


  그렇게 지켜온 동심의 축제를 추억한다.



  우린 얼마 전 소중한 친구를 잃었다. 아니 계속해서 잃어왔다. 이전에도, 또 그전에도. 한 번의 실수와 함께 시작된 손가락질은 눈을 감고 휘두르는 검의 날이 되어 그들을 할퀴었다. 그들의 죄의 대한 벌이 굶주린 사자에게 던져지는 콜로세움의 죄수가 되는 것이라면 고민이 필요하겠다.


  사람들은 개인이 군중이 될 때 내재된 힘이 나타난다. 그 힘으로 부당한 권력자를 이겨내고, 불온한 외세의 침략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 힘은 언제나 옳은 방향으로만 흐르지 못한다. 불의를 향해 쉽게 공의를 품을 수 있게 된다면 분노 또한 쉬워진다는 말이겠다.




  군중의 역사는 그렇게 흘러왔다. 그리스인들은 소크라테스에게 독잔을 내렸고, 유대인들은 예수께 십자가를 지게 했다.


  나는 오늘 군중 속 어디에 서 있을까. 맨 앞줄에 서서 돌을 던지고 침을 뱉고 있을까. 아니면 무리의 한가운데서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 가십 삼아 시끄럽게 떠들고 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무리의 저 뒤 어딘가에서 모른 척 방관하고 있을까.



  죽을죄짓지 않았다면 한 번쯤 기회를 주자. 나에게 피해 준 것 없다면 가던 길 가자. 알고 싶지 않은 사람 붙들고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말자.






  패자부활전이 필요하다. 일어날 기회가 필요하다. 잡고 일어날 따듯한 손이 필요하다.

  우리 손 내밀어 수많은 작은 구원자들이 돼주자. 구원의 군중이 돼주자.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I’ll Be Seeing You - Billie Holi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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