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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플 May 15. 2023

퇴사전, 마지막 휴일

누가 나를 위로해 줄까?

 퇴사자들에게 마지막 휴일이란 어떤가. 곧 다가올 퇴사 그 이후의 자유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할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하다. 앞으로는 다닐 직장이 없어진다는 게 허전하고 과연 내가 잘한 건가 라는 의심에 우울한 기분일 뿐이다.

 앞편에서 말했듯이 후임님이 오시고 인수인계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발견하게 되어 한편으로는 뿌듯했다. 힘들어서 하기 싫었고 더 버티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퇴사하지만 이 일을 과거의 내가 좋아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직장에서 업무를 배우고자 열심히 익혔던 내 모습, 즐거웠던 추억들이 생각났다. 지금도 인수인계 과정에서 하나라도 더 알려드리고 싶은 욕심은 일에 대한 애정일 것이다.

 한편, 동료들은 닥쳐 올 나의 부재를 받아들이고자 애쓰고 있다. 문자나 전화로 섭섭함을 슬쩍 표현한다. 앞으로 뭐 해먹고 살려는 건지 걱정하는 마음도 있고 갑작스런 소식에 내 심경을 궁금해 한다. 한편으로는, 쉴수있다니, 부럽다 하는 이도 있다. 

 '쉬면, 뭐할꺼야' 어쩌면 당연한 질문인데 나는 그 질문에 모호한 대답만 되풀이 한다. '그냥, 아직은 아무 생각이 없네요.'라는 말 외에는 딱히 계획이 없어 옹색하다. 멋지게 사표를 내 던졌으면 그만큼 희망찬 미래가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벽에 가로막힌 듯이 멈춰서 있다.

 오늘은 막막한 퇴사기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휴일이다. 어젯 밤 꿈에도 예전 직장이 나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타나는 그 곳. 어떤 사건으로 인해 긴박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면 좋지, 라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무기력한 나를 겪는다. 그리고, 심장이 쿵 하고 내려 앉을 때쯤 꿈에서 깼다. 꿈에서 겪었던 스트레스가 깨었을 때도 고스란히 짐으로 남아 지금의 현실을 무겁게 상기시킨다. 

 악몽을 뒤로 한채 침대에서 일어난 시간이 오전 10시. 세수만 하고 예약한 미용실로 갔다. 새 마음을 갖기 위한 쉬운 도구이다. 미용실에서 염색과 커트를 하고 곧이어 헬스도 했다. 머리도 대충, 헬스도 대충. 지난주부터 약간의 두통이 있어 통증이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시간을 때웠다. 즐거워야할 시간에 답답함이 해소 되지 않은 채 요식행위가 된 미용과 운동이었다.

 그리고는 바로 엄마집에 갔다. 엄마집까지는 거리가 있어 도착하자 마자 낮잠에 들어 자고 일어나니 이미 저녁이다. 지난밤 악몽덕에 설잠을 잤기 때문인지, 노곤하게 깊이 잠들었다. 일어나 보니, 엄마가 벌써 식사 준비를 마쳐 놓으셨다. 황송하게도 노모께서 차려 주신 밥을 먹었다. 엄마는 '야, 회사가 그렇게 힘들게 해서 그만치 했으면 더 다닐 필요 없다.'라며 퇴사를 지지해 주셨고 뒷 일이야 어떻게든 된다며 신경쓰지 말라고 하셨다. 너무도 단호하여 나는 더 이상의 의논은 할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아마도, 지금까지 그랬듯이 내가 알아서 헤쳐 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신 듯 하다. 이제 마흔 일곱이 되어 재 취업이 가능할지 장담하기 어려운 딸내미인데 현실보다 더 좋게 보시고 과대평가하신다. 뭐가 이쁘다고, 걱정이 없으신건지. 나는 엄마보다 훨씬, 내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엄마는 나를 믿고 어떤 결정에 대해서도 알아서 해낼 거라 생각하신다. 그래서 나는, 성인이 된 후로는 돈을 버는 것도, 쓰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그만두는 것도 전적으로 내 관할로 진행하였다. 가족들에게 퇴사를 의논 하였을 때, 취업이 힘들다는데 기왕이면 더 다니지 그러니, 라는 대답을 들은 적은 없었다. 신기하게도 단 한번도 없었다. 왠만치 힘드니까, 그만두려는 거겠지 그렇게 받아들이신다.

 직장에 다니면 최소한의 경제적인 어려움이 해소 되고 일상의 책임중 대부분을 수행한 꼴이 되므로 당당하였다. 그런데, 퇴사를 앞두고 맞이하는 두려움은 새로운 종류의 걱정이다. 더 큰 범주의 근본적인 질문을 만나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거지?', '나 과연 먹고 살 수 있을까' ,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어떤 모습인거지?'라는 두루뭉실한 의문이 떠다닌다. 직장을 다니면 모두 한번에 해결된다. 힘든 직장생활, 빠듯한 월급, 일그러진 인간관계에 골몰하게 되고 인생을 전면에 내세우는 거창한 질문들은 덮혀 버린다. 낯설고 묻기도 어색한 물음표들을 맞이한 지금, 나는 약간 불안하다.

 혹여, 그렇게 걱정되면 왜 이직을 하지 않느냐 묻는 분도 있을게다. 내 상태가 지금 휴식외에 다른 직장을 시도할 엄두가 안난다면 대답이 될까.

 이제 밤이다. 컴퓨터를 두드리는 자정. 마지막 일주일 근무를 기다리며, 쉬지도 못하고 걱정에 싸여 하루를 보냈다. 차라리, 확 잊어버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머릿속으로는 퇴직금을 받으면 얼마를 저축하고 얼마를 생활비로 써야 할지 셈해 보았고 퇴직후 맞이하게 될 24시간의 공백을 무엇으로 채울지 공부라도 해야지 싶어 인터넷 강의들을 헤집어 보았다. 내게 화려하고 분명한 꿈이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가족 덕분에 쉴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심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감히 백수가 될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퇴사하고 맞이하는 첫번째 주말을 지낼 북스테이를 예약했다. 여행을 통해 미래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생겼고 오랫만에 여행간다며 즐거워했다. 돈 버는 일보다는 돈 쓰는 게 빠른 철없는 예비 백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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