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단계, '피드백'은 이렇게
어렸을 적을 돌아보면, 숙제(공부) 피드백을 한 적도, 받아본 적도 없었다. 일방적인 추궁과 잔소리를 들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학창시절을 보내는 동안,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고쳐가기는커녕, 눈치나 보며 당장의 불호령만 피하는 습성만 키우게 된 것 같다. 이런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게 된 건, 비로소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온 이후였다. 그리고 많은 고통과 시행착오 속에서 아직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요즘 상황도 크게 달라지진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아이들은 더 예민해진데다, 일찍부터 공부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어린 나이에 통제 불능 상태가 되거나 반항기에 접어든 사례를 많이 보게 된다.
숙제의 계획과 실행, 둘 다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피드백은 더 중요하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문제점을 고쳐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철이 드는 과정’이다. 옛날 어른들이 ‘철이 들어야 공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물론 강제로 책임을 따지는 피드백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가는 피드백이어야 한다.
앞서 밝혔듯이, 부모가 책임을 따지는 피드백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가는 피드백이 되어야 한다. 무조건 아이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 먼저, ‘평가’부터 아이가 해야 한다. 흔히들 하는 취조나 심문 투의 질문은 금물이다. 유도 심문도 안 된다.
취조나 심문 투의 질문은 일종의 공격이기 때문에, 자기 합리화나 변명만 하게 만든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하지 못한다. 유도 심문 마찬가지다. 부모가 이미 결론을 내놓고 추궁하는 상황은 아이의 적개심만 키우거나, 주눅만 들게 할 수 있다.
일단, 얼굴 표정과 목소리 톤부터 편안하고 부드럽게 하자. 아이들은 불안한 상황이 닥쳐오면 보통은 부모의 얼굴표정부터 살핀다. 학부모 본인의 감정을 드러내지 말자. 그리고 실패와 성공으로 결과를 단순화시키지 말자. 시간, 양, 질, 태도 등의 부분으로 나누어 평가해 보는 것이다. 아이 스스로 숙제 했던 당시를 떠올리며 평가할 수 있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다.
[예시 사례]
부모 : 오늘 결과 어땠지?
아이 : 실패인 것 같아요.
부모 : 물론 시간 안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15분만 더 있었으면 성공이었어. 성공 같은 실패였지. 질적으로는 어땠니?
아이 : 반 정도 밖에 맞추지 못했어요.
부모 : 음 그건 확실히 실패인 것 같구나. 태도는 어떻게 평가할래?
아이 : 오늘 처음에 집중이 잘 안 됐어요. 그래도 나중에는 엄청 집중이 잘 됐어요.
부모 : 그럼 태도는 반만 성공이네.
결과에 대한 분석적인 평가가 충분히 되었다면, 반성으로 들어가자. 반성이라고 해서 무조건 잘못을 회개하라는 뜻이 아니다. 말 그대로 ‘돌아보고 성찰하는’ 것이므로, 원인을 객관적으로 조목조목 따져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성공한 경우라도 원인분석은 필요하다. 그래야 구체적인 격려와 칭찬을 할 수 있고, 성공경험도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실패인 경우, 원인분석이 쉽지 않다. 원인을 따져 들어갈수록 아이 본인의 잘못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보통 부모의 눈치를 보면서 무조건 본인의 잘못이라고 하거나, 본인의 잘못임을 절대 인정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둘 다 문제다.
무조건 본인의 잘못이라고 한다면, 소심하고 겁이 많은데다, 평소 부모에게 자주 혼나서 눈치를 보는 경우일 것이다. 부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일단 원인이 되는 사실부터 조목조목 나열해 보자. 그리고 아이 본인의 잘못인 것과 아닌 것으로 구분해 보자. 학부모가 객관적이며 공정한 사람이란 걸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이때부터 부모 눈치에서 벗어나 자신을 솔직하게 인정하기 시작한다.
반대로 무조건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방식은 똑같다. 원인이 되는 사실부터 나열하고, 그 중에서 아이의 잘못과 아이의 잘못이 아닌 것을 가려내는 것이다. 가끔 인정하기 싫어 떼를 쓰고 화를 내는 아이들도 있다. 그때는 일단 대화를 멈추고 부모, 아이 둘 다 시간을 갖는 게 좋다. 이 상태에서 더 진행하면 파국에 이르게 되고, 감정의 앙금 외에는 남는 게 없어진다.
[예시 사례]
부모: 그럼 오늘 실패 원인은 일단 뭐라고 생각해?
아이: 초반에 집중을 잘 하지 못했던 게 원인인 것 같아요.
부모: 음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반 정도 밖에 맞추지 못했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해?
아이: 그것도 집중을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부모: 글쎄, 내가 지켜본 걸로는 집중 문제가 아니라, 이해가 잘 안 돼서 그러는 것 같은데. 틀린 문제 몇 개만 다시 풀어보면서 확인해보자.
이제 ‘반성’ 단계를 넘었다면, 대안 모색으로 넘어갈 차례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니?’라고 질문을 던져서, 아이 스스로 대안을 제시하도록 하자. 그리고 아이가 제시한 대안에 대해 객관적인 분석을 해 주는 것이다. 이 때 주요한 포인트는, 아이 본인이 해결해야 할 것과, 부모나 교사가 도와줘야 하는 것을 세심하면서도 유연하게 나눠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이가 ‘더 집중하도록 노력할게요.’라고 한다면, ‘혼자 노력한다고 집중력이 올라가는 건 아니란다. 내가 이렇게저렇게 해서 집중을 더 할 수 있도록 도와줄게.’라고 하는 것이다. 혹은 ‘더 빨리 할게요.’라고 한다면, ‘내가 봤을 때 그건 무리인 것 같고, 오히려 시간을 넉넉하게 늘리는 건 어떻겠니?’라고 하는 것이다.
때로는 거꾸로 부모가 일부러 잘못된 제안을 하고, 아이에게 의견을 묻는 것도 방법이다.
피드백을 하는 타이밍은 따로 있다. 잔소리꾼이 되기 싫으면, 평소에는 입이 근질거려도 꾹 참아야 한다. 그게 학부모의 정신건강에도 좋고, 자녀와의 관계에도 좋다.
먼저, 숙제(공부)가 끝난 직후가 피드백 하기 가장 좋은 타이밍이다. 예를 들어 오늘 7시부터 9시까지 숙제를 했다면, 끝난 직후 바로 하는 것이다. 만약 하루에 두 번, 각각 다른 과목을 했다면, 각각의 숙제가 끝난 직후 바로 한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고, 보통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억하려 하기 때문이다. 결과가 눈앞에 나온 바로 그 순간, 피드백을 해야 한다. 간혹 하루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하는 경우도 있는데, 가능한 한 지양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새롭게 계획을 짤 때, 반드시 지난 번 피드백 내용을 확인하고 반영해야 한다. 숙제 시간을 너무 짧게 잡았거나, 한 번에 할 숙제량을 너무 많이 잡았거나, 혹은 환경이 문제가 있었다거나 등등의 피드백 내용을 기반으로, 지난 계획을 수정, 새 계획을 짜는 것이다. 이 루틴을 지속적으로 반복해 삶의 방식으로 자리잡게 된다면, 앞으로 아이의 인생에 크나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숙제를 시작할 때, 꼭! 다시 한 번, 지난 피드백 내용을 재확인하자. ‘지난 번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 기억나니? 그래 우리 명심해서 다시 잘 해보자.’ 이런 방식으로 말이다. 각인효과를 불러일으켜 실행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앞서도 여러 번 이야기 했지만, 보상과 체벌 모두 절대 금물이다. 물론 하도 답답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부모의 마음도 알고, 동기유발을 강화하려는 의도도 이해한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원하는 ‘자기주도’의 길을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으면 한다.
보상으로 유인하다 보면, 점점 더 강한 보상을 원하게 되고, 지속 시간도 갈수록 짧아져 결국 효과를 볼 수 없게 된다. 심지어 버릇이 되면, 자기 숙제를 가지고 부모와 거래를 하려고도 한다. 자기 일인데 마치 남의 일 해주듯이 하는 것이다. 아이의 미래에 매우 좋지 않은 습관이다.
체벌의 경우도 비슷하다. 체벌에 익숙해져 효과 지속 시간이 짧아지고, 점점 더 강한 체벌을 해야 한다. 아이에게 분노와 공포를 동시에 길러주는 길이다. 게다가 클수록 체벌이 불가능해진다.
보상과 체벌을 하지 않는 것은 눈 앞의 손쉬운 방법을 포기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아직 본인에게 뭐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잘 모르고, 그저 숙제의 고통과 압박에서 벗어나려고만 한다. 그런 아이에게 보상과 체벌을 하지 않고 숙제를 시키는 것은, 부모 스스로 고난의 가시밭길을 걷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힘들더라도 부모부터 옳은 길을 걸어야 아이도 따라오지 않겠는가?
그 길의 끝에, 성공에서 얻는 성취감과 자존감을 진정한 보상으로 여기고, 실패에서 얻는 자괴감과 패배감을 스스로 체벌로 받아들이는 아이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