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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숙제는 반드시 해 오는 걸 전제로 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학생 스스로 무난히 해결할 수 있는 난이도의 숙제를 내주는 경향이 많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무언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학부모에게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양을 불린다. 한편 양을 불리기 위해, 암기를 위해 반복을 시키는 경우도 많다. 학부모 본인이 이런 숙제를 하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과정은 의미 없이 지루하기 짝이 없고, 기껏 하고 나도 별다른 효용감을 얻을 수 없다.
한편 어떤 학원에서는 학생이 혼자 힘으로 해결 불가능할 정도로 과도하게 어려운 숙제를, 얼토당토않을 만큼 무지막지한 양으로 내는 경우도 있다. 순수하게 교육적 효과를 위함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학원 커리큘럼 홍보를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경우가 많다. 해결과정이 고통으로 가득 찰 테니 학생 입장에서는 가능한 한 손도 대기 싫을 것이다. 게다가 어찌어찌 해결했다고 해도,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닐 테니 그 결과가 그다지 달콤하지도 않고, 그 고통을 또 겪을 생각을 하면 도망치고 싶어질 것이다.
이렇게 과정도 결과도 의미를 느끼기 힘든 숙제를 어찌됐든 해 가게 하려고, 엄마는 갖가지 노력을 기울인다. 먼저, 스스로 교도관 노릇을 자청하는 것이다.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못할 짓이다. 엄마와 아이 사이가 나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엄마 성격과 삶까지 피폐해진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럴수록 아이는 숙제를 하는 과정과 결과에서 더더욱 의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또 달콤한 보상으로 달래려고도 한다. 원하는 물건을 사준다든가, 게임이나 놀이 시간을 준다든가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시도는 인간이 아니라 가축을 길들일 때 하는 것이다. 내 아이를 가축처럼 길들이려고 하다니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게다가 수학 숙제를 하고 수학 사고력이 향상됐다든지 하는, 행위 자체의 결과가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또 다시 과정에서도 결과에서도 의미를 느낄 수 없게 만든다.
흔히들 과정 없는 결과는 없다고들 한다. 운동이든, 일이든, 인생이든, 과정 자체에서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보상이 아무리 달콤해도 금방 포기하게 된다. 혹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더라도, 보상만 바라고 대충 때우게 되기 쉽다. 결국 과정이 빈약해지면서 결과도 보잘것없어지게 된다.
다들 숙제는 ‘혼자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학부모들은 처음에는 함께 하거나 옆에 있어 주지만, 곧 알아서, 혼자 할 것을 아이에게 기대하고 요구한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기대와 요구는 바로 무너진다. 일단 알아서 하지를 않는다. 게다가 했는지 확인하고, 하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알아서 책상 앞에 앉지를 않는다. 겨우 책상 앞에 앉아 숙제를 펴 놓고 있어도, 엄마가 눈 앞에 보이지 않으면 금방 딴짓에 빠져든다.
이 아이들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어른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알아서, 혼자 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고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고 인생 경험이 많아질수록, 완전히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물며 아직 어린 아이들이라면? 기껏 숙제가 무슨 큰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에게 숙제는 인생의 현 단계에서 매일매일 닥쳐오는 가장 큰 고난이다.
숙제를 해갈 납기일을 확인하고, 양을 가늠하고, 시간이 얼만큼 걸릴지 따져보고, 언제 할 지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어른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다음은 실행이다. 홀로 책상 앞에 앉아 묵묵히 의식을 집중해가며 숙제를 해결해 가야 한다. 이런 일은 어른에게도 외롭고 힘겹다. 머리로는 알아도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 의식을 집중할라치면 마음이 답답하고, 자꾸 딴 생각이 든다. 평소에 잘 하지 않던 짓도 이때에는 그렇게 하고 싶어진다. 숙제를 ‘알아서, 혼자 한다’는 건 실은 이렇게나 힘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