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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클럽은 V클럽과 반 킬로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좀 더 상세하게 말하면, 두 클럽 모두 라이브 클럽 밀집지대에 위치해 있었고, V클럽에서 K클럽까지 가기 위해서는 사거리를 두 개나 건너야 했다.
강인은 단숨에 K클럽까지 걸어갔다. 입구에 들어서자 L씨가 반색을 하며 다가왔다.
“야오, 옷 멋진데. 혼자 왔나 보군요. ”
“그래요. 지하실 열쇠는 어디 있죠? ”
“내가 문 열어놨어요. ”
“고마워요.”
강인을 뒤로 한 채 걸어가는 L씨의 입가에서 미끄러운 웃음이 흘렀다.
K클럽의 지하실은 평범하고 너저분한 창고였다. 쓰지 않는 앰프와 무대조명, 낡은 드럼과 못 쓰는 기타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그 지하실에는 음악과는 상관이 없는 도구들도 여러 가지가 널려 있었다. 캐비닛, 중세 유럽의 해적선에서나 쓸 만한 굵은 밧줄, 다리가 빠진 철제 의자, 때가 탄 여러 가지 동물 모양의 인형.......
강인은 숨을 몰아쉬며 구석에 기대앉았다. 스치로폴이 그득 담긴 푸대자루가 훌륭한 의자 겸 쿠션 역할을 했다. 불을 켜지 않아 깜깜했기 때문에 열어 놓은 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얼마 안 되는 빛이 없으면 그는 장님이나 다름없는 셈이었다.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식은 땀을 닦으며 그는 빛이 새어 들어오는 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의 반짝이는 동공은 희미한 절망을 내뿜는 것처럼 보였다.
요란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몹시 분주하게 들렸으나 지하실인 탓인지 소리가 울려서 매우 비현실적인 감각을 자아냈다. 흡사 환청 같았다. 좁게 열린 문 틈으로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왔다. 한 사람, 두 사람. 강인은 그들의 수를 헤아리지 않았다. 열명 남짓한 사람들이 들어왔을 때 문은 완전히 닫히고 강인은 어둠 속에 갇혀 버렸다. 그들은 말없이 모여 서서 강인을 내려다보았다. 모두 남자였고 비슷한 키와 비슷한 검은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강인으로서는 그 이상은 알 길이 없었다.
잠시 후 다시 주위가 밝아졌다. 촛불처럼 은은한 빛이었다. 강인은 품에서 ‘애도’의 사보를 꺼내 던졌다. 한 남자가 그것을 주워 들었다. 그의 안면에서 L씨의 얼굴을 발견하고도 강인은 놀라지 않았다.
“역시 눈치를 채셨나 보군. 하지만 죽여달라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겠지?”
“죽이고 살리고는 당신들 마음이겠지. ”
“뭐 그렇지......그래 불러 보니 어떻습디까? 목숨을 내놓고 부를 만한 가치가 있습디까?”
“없어.”
“아주 쉽게 대답하시는군. 어쨌든 목숨을 담보로 금지된 노래를 불렀으니 이젠 목숨을 내놓으셔야지. ”
“난 내 목숨을 담보로 내건 적 없어.”
“어허, 그 노래를 부른 사람들이 다 죽었다는 걸 알면서 그러시네?”
“그들을 죽인 건 너희들이었나?”
“흐흥, 그들은 죽고 싶어하지 않았지.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목숨을 가져간 건 아니야.”
“쥬이는 어떻게 된 거지? 그가 ‘애도’를 녹음 하고 있었다는 거 사실이야?”
“사실이야. 그는 ‘애도'의 마수에 걸린 여섯 번째 희생자였지. 지금까지의 희생자들이 모두 그래 왔고, 그대 역시 그랬던 것처럼 그도 ‘애도'를 녹음하고 나서야 자신이 ‘애도’에 의해 선택된 희생자라는 걸 알았지. 알다시피 그 노래는 자신의 제물을 꽤 까다롭게 선택하는 경향이 있어서 말이야.”
“그 노래가 아니라 그 노래의 작곡자겠지.”
강인은 입가에 경멸을 담뿍 띤 미소를 지었다. L씨는 약간 얼굴이 굳어졌지만, 그래도 지상에서 활동하는 K클럽 매표 담당자 특유의 그 약간은 능글맞은 사교성을 아주 감추지는 않았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참 이상하군. 그대는 순서대로 치면 일곱 번째 희생자이긴 하지만 피치 못할 변수의 작용에 의해 희생자 명단에서 빠졌을 텐데 어떻게 모든 걸 알았지?”
강인은 말없이 L씨의 손에 들린 악보를 가리켰다.
“이것만으로 어떻게 알 수 있지?”
“물론 그것만으로는 아니야. 내 친구가 그 악보에 붙은 나레이션 부분을 해석해 주지 않았다면 모르고 넘겼을 수도 있겠지. 당신은 사보를 찾아냈다고 했지만 그건 사실 원본이야. 사보에는 그 나레이션 부분이 빠져 있으니까. 그 나레이션을 삽입한 것은 당신이야. ”
“그건 또 어떻게 아셨나요?”
웬일인지 L씨의 말투는 완전히 K클럽 매표 담당자로 되돌아가 있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내 친구가 친절히 해석해 준 덕분이라니까. 그녀가 그러더군. 어쩌면 ‘애도’ 자체가 죽음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예고장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뮤지션들이 악보를 달라고 찾아올 때마다 악보를 내준 건 당신이잖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결정적인 증거가 안 되기 때문에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내 짐작이 맞았나 보군.”
L씨는 그 특유의 익살스런 환호로 강인에게 감탄의 뜻을 표했다. 강인은 그를 가만히 노려보며 침착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궁금한 게 있어. 첫 번째는 그 노래의 작곡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내가 왜 희생자 명단에서 제외되었느냐는 거야. 그리고 쥬이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왜 죽었는지도 말이야.”
“작곡자는 아무도 몰라. 현재 살아 있는 사람 중에서는 아무도 그를 아는 사람이 없어. 그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른다구. 그리고 쥬이나 그 밖의 희생자들에 대해서 우리가 대답해 줄 수 있는 건 우리가 죽이지 않았다는 것 뿐이야.”
여기에서 L씨는 갑자기 참을 수 없는 경멸이 섞인 비웃음을 날렸다. 그것도 강인의 어깨를 잡고 그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날린 비웃음이었다.
“하지만 자네가 왜 희생자 명단에서 제외되었는지는 말해 줄 수 있지. ‘애도’가 일곱 번째 희생자로 자네를 지목했을 때만 해도 자네의 목숨을 빼앗기로 되어 있었는데 말이야. ‘그의 어두운 감춰진 사랑이 네 삶을 파괴하누나.’ 하는 그 영시의 마지막 구절 혹시 기억하나? 생각해보면, 내 발상이긴 해도 그 영시를 택한 건 그다지 좋은 생각은 아니었어.”
“요점이 뭐야.”
“이런.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야겠군. 알았어. 요는 말이야. ‘애도’가 자네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거야. 아니면 작곡자겠지. 어쨌든 그의 혼이 담겨 있거든. 그는 자네를 희생자로 택하기로 결정한 마지막 순간에 자네를 사랑하게 되었단 말이야. 그래서 자네를 죽이지 않고 그대로 놔두기로 했지. 뭐 이해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상은 설명 못 해.”
“그럼 칠득이는......”
“칠득이에 대해서도 잘은 모르지만, 자네처럼 ‘애도’의 사랑을 받아서 제외된 게 아니라는 건 분명히 말할 수 있지.”
강인은 침통한 심정이 되었다. L씨의 말대로 뭐가 뭔지 이해가 되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정말로 자신의 내부에 있던 뭔가가 파괴당했다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아주 슬픈 느낌이었다. 슬픔은 분노로, 분노는 갑자기 지하실에 내려온 이래 계속 느끼지 못했던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잘 알았어. 내가 아는 건, ‘애도’의 작곡자도, 살인자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거야. 그만 나가게 해 줘.”
그러나 강인이 여전히 어슴푸레한 빛 가운데서 문을 향해 다가서자 여전히 비슷한 키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그의 팔을 잡아 바닥에 넘어뜨렸다. 그들 가운데서 다시 익살맞은 웃음을 띤 L씨가 나타났다.
“우리도 이대로 곱게 보내주고 싶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은 그렇게 안 돼. 애도의 희생자들이 죽기 전에 받은 질문을 그대도 받아야 해. 좀 골치아픈 질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때?”
강인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L은 일어서서 얼굴이 잘 보이지도 않는 그들의 동료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강인의 앞으로 다가와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강인은 기겁을 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얼굴이 바로 얼마 전에 죽은 쥬이의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곧이어 눈앞에 친구들의 얼굴이 차례차례로 나타났다. 용환, 헌수, 진호, 민규, 칠득이 등. 그들은 차례차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났다. 때로는 한꺼번에 여러 얼굴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환청이 아니면 전에 들어서 기억하고 있던 소리들을 떠올린 것에 민효지 않을 터였다. 이 떠들썩한 소리는 환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더구나 기억 속에 남아있던 소리는 아니었다. 강인을 아는 사람들이 그를 찾는 목소리였다.
“이 자식이 화장실 가서 빠져 죽었나? 강윤 너 좀 가서 찾아 봐라.”
“앞으로 강인 녀석 조심 좀 해야겠다.”
“까짓 거 노래 하나 불렀다고 죽는 놈이 어딨어? 쓸데없는 소리 그만두고 저 아가씨(민효)한테 2차 갈 건지 물어봐.”
“형. 강인 없어졌다는데요?”
“없어지다니? 녀석이 갈 데가 어딨다고 없어져? 다른 데 잘 찾아봐.”
주접을 떨어대는 칠득이의 요란스러운 목소리를 듣자 강인은 킬킬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왁자지껄 떠들던 목소리들은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의 목소리처럼 가늘게 멀어져갔다. 다시금 주위는 고요해졌다.
다시 쥬이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는 가늘고 건조한 국수가락 같은 목소리로 강인에게 말을 걸었다. 노래로만 듣던 그의 목소리와는 아주 판이했지만, 그래도 쥬이의 목소리임에는 틀림없었다.
“잠깐 혼선이 일어났군. 그런 쓸데없는 건 보여줄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야. 어쨌든 질문을 시작하지. 후회한다고 하지 않았나? 교향곡 ‘애도’를 부른 걸 말이야.”
“후회하지 않아.”
“그럴 리가. 분명히 사람들에게 후회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조금은 후회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왜 후회하고, 왜 후회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듣고 싶은 걸.”
강인은 보이지 않는 손들이 자신의 온몸을 붙들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어떤 음악이든 내 생애 전부를 합친 것보다 중요한 음악은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어서 후회스러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아. 후회하고 싶어도 후회할 수 없어. 허울 좋은 궤변인가?”
“그럴듯한 궤변이야. 생애의 전부란 뭐지?”
“몰라. 지금까지 조금씩 알아왔고, 앞으로도 알아갈 거야.”
“앞으로 알아갈 기회 따윈 없을 거야. 지금 넌 네 생의 끝을 맞이할 순간에 이르렀으니까. 너의 애도는 성공했어. ‘애도’란 죽은 사람. 즉 지금 죽게 될 너를 위한 것이지. 너를 위한 ‘애도’의 성공은 너의 죽음을 위한 거야. 하지만 너의 죽음은 평범한 죽음이 되지 않을 거야. 넌 목숨을 버려 가면서까지 음악을 택했으니 반드시 전능한 음악의 신의 피를 받은 천재 뮤지션으로 부활할 거야. 어때? 부활을 택하겠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인의 눈앞에서 뭔가가 번쩍 빛나는가 싶더니 이내 주위가 새하얘졌다. 눈과 눈 사이로 따뜻한 것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앞으로 꼬꾸라진 강인의 귀에 커터 나이프로 살을 자르듯 날카로운 목소리가 비명처럼 들려왔다.
“강인, 애도는 죽은 사람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야. 그건 산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기도 해. 산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을 애도하면서 애도를 행하는 그들 자신의 고통까지 위로하는 거야. 그걸 알아야 해.”
이건 누구의 목소리였을까? 누가 이렇게 뼈에 사무치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던 것일까? 대체 누가 이 나의 옴쭉달싹도 못할 죽음 앞에서 나를 불러 답을 가르쳐 준 것일까.
내가 불렀던 교향곡 X+1번 ‘애도’는 과연 성공작이었던가? 나는 어떻게 그 곡을 해석했던가? 그저 단순한 장송곡? 단순한 록 발라드? 단순한 러브 송? 나는 사랑을 잃은 데 대한 비탄을 노래했어. 하지만 그 비탄을 스스로 달래야 하는 고통까지는 노래하지 않았어. 그건 아직 어린 내게는 너무 어려웠어. 누구도 그렇게 부를 수 없을 거야. 나는 실패한 것일까?
그렇다면 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대로 죽을 순 없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