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계획 그대로는 아니지만 짧게 내 나름대로 축사.
#노벨문학상 #한강
공권력이 무력으로 민간인을 학살하는 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중범죄다. 그리고 그걸 고발하는 건 작가의 의무다. 충분한 역량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해낼 수 있는 숙제다. 의무를 다한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 슬프게도 내란 사태가 지속중인 이 시국에 이 나라에 그 보상이 떨어졌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놀람과 동시에 느꼈던 그 쌔함의 정체; 그렇다 하마터면 <소년이 온다>실사판을 서울에서 찍을 뻔했다.
유럽의 독자들의 독서 내력은 상향 평준화되어 있다. 해서 고난이도의 텍스트를 읽고 그 의미를 소화하고 해석하는 데 능숙하다. 반면 우리나라의 독자층은 극소수의 뛰어난 해석자들(독자들)을 제외하면 깊이있는 텍스트의 해석에 익숙하지 않다. <채식주의자>는 딸에게 “걱정된다”는 이유로 강제로 고기를 먹이는 아버지를 통해 목적(걱정 염려)이 수단(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계엄령에도 해당된다; 비상시국이라는 명분으로 국민에게 총을 겨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가족 간에 벌어지는 이 싸움이 그저 기괴하게만 여겨진다. 이렇게 작품의 함의를 해석해내는 역량에서 차이가 난다는 점과 이런 역량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대체로 그녀의 작품 세계는 간디가 펼쳤던 “폭력에 대한 비폭력적인 저항”으로 정의내리면 무난하다. 2016년 광화문 촛불혁명과도 맥이 통하는 부분이다.
명심해야 하는 건 하나다.
텍스트의 의미를 결정하는 건 작가가 아니라 독자다. 텍스트가 일단 작가의 손을 떠나면 모든 권한은 작가에서 독자로 옮겨간다. 읽히지 않는 명작이 의미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기회로 책을 통해 자신의 캐릭터에 일말의 권력을 부여하며 인생을 새롭게 시작해봐도 좋겠다. 계엄령 따위로 획득하는 권력보다는 훨씬 가치있는 권력일 것이다. #수상축사
*사실 이 축사는, ”어려워서 접근이 힘들다“며 조언을 구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그분들을 위해서 썼습니다. 한강 작가님 책이 평소 책을 안 읽으시는 분들이 갑자기 접하기에는 아무래도 좀 무리한 부분이 있다 보니 최대한 나름대로 머리를 짜서 써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