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
23. 함세복
무슨 정신으로 집까지 돌아왔는지 기억이 안 난다.
다른 어느 때보다 단단히 공장 문을 걸어 잠갔다. 수연을 데리고 내 보금자리로, 아니 우리들의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동안, 계속해서 누군가가 우리를 덮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어 계속해서 주위를 살피며 문단속을 단단히 했다.
마침내 우리들의 보금자리에 안착한 후에 우리가 벌인 짓은, 차마 영민이에게는 단 한 마디도 털어놓을 수 없는 짓들이었다.
처음에는 서로의 혀를 탐닉하는 걸로 충분했지만, 어찌 된 셈인지 몸이 점점 그 이상의 것을 갈구하는 것이 느껴졌다. 결국 우리는 혀와 손을 모두 사용해 서로가 원하는 것, 서로를 만족시킬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가지는 꽤 성공적이었다.
다만, 서로가 절정에 도취된 어느 순간 수연이 손을 떼며 착잡한 표정을 짓던 게 기억난다. 분명하고 찬연한 죄책감이 얼굴에 드리워져 있었다. 그런 표정이 싫었다. 그런 표정은 나를 언짢게 하고 아프게 했다.
그 선량해 보이는 까만 눈으로, 참새의 부리를 떠올리게 하는 예쁜 입술로 살포시 웃으며 지저귀듯 속삭이는 수연을, 나는 좋아했다.
나는 결국 그애가 절정에 이르러 소리를 지르게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는 동안, 온갖 책이며 TV며 인터넷이 떠들어대던 저주들이 생각났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저주며, 더러운 죄악이라는 비난이며, 에이즈며, 사탄의 자식들이나 할 짓이라는 둥 하는 그런저런 저주들 말이다.
솔직히 말해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 가운데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 옆에서 자신의 체온으로 나를 따스하게 녹이며 내 옆에 눈을 감고 잠든 유수연을 좋아했다. 밤새 잠들지 않고, 그 모습만을 언제까지나 지켜보고 싶을 만큼.
바람이 우는 소리에 쉽게 잠들지 못하고, 일어나 앉아 불안한 눈빛으로 밤새 바람 소리에 귀기울이던 그 모습 또한 좋아했다.
그러나.
그애가 오늘 내게 선사한 것들은 너무나도 무서운 것들이었다. 나는, 이제 그애가 없으면 견딜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내 눈 앞에서 잠깐이라도 그애가 사라지는 것조차 두려워졌다.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수연을 악착같이 붙잡아두려 했던 그 괴물이 왜 그애를 놓아주지 않으려 했는지 알아 버렸다. 그 작은 나비를 놓지 못한 거다. 언제든지 스스로를 내던질 준비를 하고 있는, 떨어지는 낙엽 같은 나비를 차마 날려보낼 수가 없었던 거다.
처음으로 수연을 데리고 발안으로 들어오던 날, 휴게소에서 바람을 맞으며 머리카락을 나부끼던 모습에서, 나는 그애가 가지고 있는 숨길 수 없는 어떤 것을 꿰뚫어보고 말았다. 비애라고 표현하면 맞을까. 아니다. 그것은 그저 연약한 사람의 비애가 아니었다.
아마도 그것은 수연의 내면에 깃들어 있던, 죽음이었을 것이다. 죽음은 늘 그애의 곁에서 한 발짝 비껴서서 아슬아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죽음을 떼어내고 싶었다.
나 자신 역시 그애와 마찬가지로 외나무다리 위에 선 아슬아슬한 인생인 줄 알면서도, 그애로부터 그 죽음을 떼어내고 싶었다.
절대로 내가 가진 것들을 그애에게 전염시키고 싶지 않았다. 원한, 분노, 파멸하고픈 본능,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막함, 결국은 파국으로 이어질 게 뻔한 무(無)를 향한 갈망, 그런 것들을 그애와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애는, 유수연은, 자신의 내면에 내가 키우는 것보다 더 지독한 악령을 키우고 있었다. 아무리 머리를 흔들고 또 흔들어도, 그애가 병원에서 내게 했던 말을 귓가에서 떨쳐낼 수가 없다.
-죽으려고 거기까지 갔었는데, 거기서 널 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