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발톱 3/5

by Kalsavina

“네 머리카락이 국수냐? 머리에 젓가락 꽂고 다니게?”

마이어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는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하고 묻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어. 그녀의 눈을 본 순간 가슴이 뻐근했어. 사랑에 달콤한 사랑과 쓰디쓴 사랑이 있다면, 내 사랑은 적어도 달콤한 종류의 사랑은 아니라는 걸 나는 그 순간 똑똑히 깨달았어.

“이거 젓가락 아냐.”

그런데 수쓰엔이 내 말을 들었던 모양이지. 그녀는 지체없이 내 쪽으로 걸어와서는 내 앞에 버티고 서서 위압적인 태도로 나를 내려다보며 윽박지르듯 입을 열었어.

“마이어 말대로 저건 젓가락이 아니지만, 젓가락 꽂고 다니는 게 뭐가 어떻다는 거야?”

수쓰엔과 싸울 생각은 없었어. 알다시피 머리에 젓가락을 꽂는 건 중국식 헤어스타일이고 마침 마이어의 패션 컨셉도 차이나 걸이었으니, 수쓰엔은 내가 차이니즈 스타일에 반감을 가졌다고 생각했나 봐. 나는 되도록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어.

“내가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래. ”

“그래, 그건 좋아. 네 취향에 안 맞는 건 그렇다 치자구. 그런데 말야. 너 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뭘?”

“왜 맨날 마이어한테 그렇게 거만하게 굴어?”

나는 정말로 당황했어. 자칫하면 수쓰엔에게 내 본심을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침착하고도 냉담한 태도를 유지하느라 필사적으로 애쓰며 반문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야.

“내가 그랬나?”

“그래, 그랬어.”

마이어는 신기하게도 수쓰엔을 말리지 않았어. 손에 든 잡지를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기는 내 손에 땀이 배었어. 등골에서도 식은땀이 솟아났지만 나는 침착해야 했어.

“그랬을 수도 있겠지. 싫어하는 사람에게 호의적으로 대할 수야 있나.”

“그래, 네가 마이어를 싫어하는 건 알겠는데, 왜 싫어해? 적어도 마이어는 네가 그러는 것처럼 널 시큰둥하게 대하지는 않아. 마이어는 너한테 무시당하거나 깔보여도 괜찮은 바보가 아냐. 설령 바보라고 해도 네가 마이어를 대하는 태도는 좀 심해.”

나는 잡지를 소리가 나도록 덮으며 수쓰엔을 노려보았어. 나를 정면 공격하는 그녀의 태도에 정말로 짜증이 나 버렸거든. 바로 그 때였어. 내가 내 발등 찍는 말을 해 버린 건.

“사람 싫어하는 것도 이유가 있나? 내가 마이어에게 특별히 잘 대해줘야 할 이유는 없지 않아? 글쎄. 앞으로는 좀 친해져 보도록 하지. 그 누르끄레한 얼굴에 밀가루 떡칠하는 것만 좀 자제해 주면 말이야.”

그 말에 여기저기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렸어. 나는 그 말을 다른 친구들이 듣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한순간 아차 싶었어. 마이어의 얼굴을 차마 쳐다볼 용기가 없었어. 한순간 어색한 침묵이 정적이 되어 흘렀지. 그러나 그건 오래가지 않았어. 마이어가 놀라울 만큼 여유만만한 어조로 입을 열었으니까.

“네 호의를 구걸할 마음 없고, 네가 날 그렇게 싫어한다면 앞으로 네 앞에 얼씬거려서 네게 민폐끼치지 않을게. 하지만 나한테 심한 말 한 건 사과해 줘.”

“사과하지 않겠다면?”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어느 새 나는 이죽거리고 있었어.

“그러면 팔씨름이나 한 판 할까? 내가 이기면 넌 나한테 사과해야 해. 대신 네가 이기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줄게.”

나로서는 뜻밖의 제안이었어. 조금만 생각하면, 그 제안이 첩첩산중이었다는 걸 너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그녀와 대등한 위치에서 승부를 내야 한다는 건 심정적으로 힘든 일이었어. 남자가 여자에게 애정을 느낄 때 흔히 품는 그 보호본능이라는 걸 저만치 던져 버리고, 상대를 냉혹한 심정으로 마주해야 하는 그 심정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잘 모를 거야. 그러나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는 없었어. 다만 전에도 한 번 승부를 겨뤘고, 그때 그녀가 졌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기에 나는 비아냥거리며 반문했어.

“너 도대체 머리가 얼마나 나쁜 거냐? 어글리 덕스에서 나한테 진 걸 벌써 잊고?”

그러자 그녀는 생긋 웃었어. 그 웃음이 내 가슴에 톱니날을 한 비수가 되어 꽂혔지. 아직도 그 침착하고 여유로워 보이던 미소를 잊을 수 없어.

우리는 또다시 탁자에 마주 앉았어. 그리고 어글리 덕스 클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 친구들이 탁자를 에워쌌고. 나는 겉으로는 냉정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뻐근해져 오는 가슴을 달래느라 속으로는 죽을 지경이었어. 너 지금 웃고 있구나. 나를 상처입힐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하는 거지? 그래, 전에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그런 대사가 있었다고 하지만 사랑은 부메랑과 같아서, 상대를 향해 날린 펀치마저도 나를 향해 되돌아오더군. 정말로 코가 아찔했어. 적어도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만큼은 그랬다구.

그녀의 손은 차갑고 축축했어. 비록 잠깐이지만 몸이 오싹하게 하는 기운이 그녀의 손 안을 떠돌고 있었던 걸 아직도 기억해. 내가 서서히 손에 힘을 넣기 시작했을때 뜻밖에도 그녀가 입을 열었어.

“여자라고 봐주지 마.”

나는 그녀의 눈을 통해서만 그녀를 알려고 했지 그녀의 입이나 그녀의 말을 통해서 그녀를 알려고 한 적은 없어.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도 모르게 그녀의 입을 주시하게 되더군. 하마터면 손에 들어간 힘이 도로 빠져나갈 뻔했지만 서서히 그녀의 손아귀의 힘이 억세게 나를 압박해오는 걸 느꼈어. 확실히 여자로서는, 그녀는 꽤나 센 팔뚝 힘을 지니고 있었던 셈이야. 그러나 내가, 남자인 내가 정말로 팔씨름에서 여자에게 졌다고 하면 너 역시 믿지는 못하겠지? 나는 내가 재대로 하기만 하면 당연히 이길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유만만하게 내 손에 들어온 그녀의 손의 감촉을 즐겼어. 아니 즐기려고 했어. 적당히 시간을 끌어주다가 결판을 내 주리라고 마음먹으면서. 하지만 그녀의 손에 내가 가하는 힘이 서서히 가중되면서, 그녀의 입가는 차츰 묵직해졌어. 그녀의 모공에서 땀이 솟아나는 것이 보일 정도로 그녀의 얼굴은 내 앞에 가까이 있었어. 나는 내게 지지 않고 맞서는 그녀의 힘을 내 팔뚝뼈의 견고함에 의지해 받아내면서 그녀의 정체를 탐색했어. 물론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잘 알아. 그녀는 데렉의 애인의 친구이고 표면적으로는 나와도 직접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 가운데 하나지. 물론 내가 그렇게 가혹하게 대하지만 않았다면 내 친구가 되었을 수도 있었고. 하지만 말이야. 그녀의 얼굴과 이름과 나이와 주소와 전화번호 등등을 안다고 해서 내가 그녀를 정말로 ‘안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거잖아? 나는 첫 만남에서, 정확히 말하면 그녀와 내가 겨룬 첫 번째 팔씨름에서 내가 알아내지 못한 그녀의 실체를 알고 싶었어. 내 손에 힘이 들어감에 따라 그녀의 입가는 점점 묵직해져 가더니 이윽고 그 예쁜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지기 시작했어. 그녀는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눈을 감았지만 한사코 자신의 팔뚝에 넣은 힘을 빼지 않았어. 엉뚱한 얘기지만, 나는 그만 그 모습에서 나와 섹스를 하는 마이어를 상상하고 말았어. 그녀의 찡그린 얼굴이, 내 위에서 절정에 이른 그녀의 표정이 되어 그렇지 않아도 흥분으로 들뜬 내 머릿속을 점령하고 만 거야. 얼굴이 불그레하게 달아오르면서 나는 내가 어쩌지 못할 정도로 당황한 나머지 그만 손목의 힘을 완전히 빼고 말았어.

언제부터 깨달았던 걸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여자이고 아니고를 떠나 여자를 상대로 이기려고 기를 쓰고 있는 나 자신에게 미칠 듯이 화가 났어. 그러나 나를 향해 도전해온 상대는 결코 나에게 뒤지지 않는 강인함과 대범함을 가진 사람이었어. 나는 직감적으로 내가 손을 마주잡고 있는 이 여자가 내 보호를 받을 사람이 아니라 내 존경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 마이어가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현명한 정신의 소유자라는 걸 간파한 순간, 나는 찡그린 마이어의 얼굴을 보며 내가 떠올렸던 그 야한 장면에 대해 일말의 수치심과 서러움을 동시에 삼켜야 했어. 다음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손목은 우리가 팔꿈치를 괴었던 탁자 위에 힘없이 넘어져 있었지.

내가 졌다는 사실에 스스로 다행스러워할 만큼 나는 낭패감에 젖어 버렸어. 나는 결코 내 손아귀에 넣을 수 없는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던 거야. 울고 싶을 만큼 뼈아픈 순간이었지. 실제로 팔뚝뼈가 뻐근하기도 했고. 나는 내 팔뚝뼈를 타고 흐르는 골수가 심장 대신 우는 그 육중한 진동음을 들으며 마이어를 바라보았어. 마이어는 여전히 침착하고 차분한 표정이었지만, 어쩐지 슬퍼 보였어.

어찌 된 셈인지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은 우리의 승부가 난 후에도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고요하게 침묵을 지켰어. 한참 있다가 데렉이 이렇게 중얼거렸을 뿐이야.

“참, 이렇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승부가 다 있군. 그나저나 마이어도 독종이야. 남자를 상대로 저렇게까지 오래 버티다니. ”

오래 버텼을 뿐 아니라, 그녀는 결국 이기기까지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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