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팩더블 2 웨이크 업 28)

란의 여름

by Kalsavina

28. 유수연(유영)




세복이에게 그토록 험하게 협박을 당하고도 아키는 뻔질나게 웨이크 업을 들락거렸다. 다만, 그 전에 그랬던 것처럼 집요하게 나만 붙들고 나만을 상대로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이제 그는 혼자 오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인상이 좋아 보이지 않는 서너 명의 남자들, 혹은 야하고 천박한 느낌을 주는 여자들 두셋과 함께 오곤 했다. 그 여자들은 간혹 저희들끼리 손으로 나를 가리켜 보이며 쑥덕거릴 때가 있었다.

사실 여자들보다는, 일행인 남자들 쪽이 신경이 쓰였다. 비록 조폭들이긴 하지만, 타고난 심성이 나빠 보이지 않는 중해방 조직원들에 반해 그들은 음산하고 지저분해 보였다. 죄질이 나쁜 범죄에 깊이 개입해 있는 사람 특유의 그 음산한 느낌을, 오래 전 윤락가에 몸담았던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아키 또한 변했다는 느낌이었다.

함께 오는 사람들은 수시로 바뀌었고, 아키는 웨이크 업의 사람들이나 나와는 물론 말을 섞지 않았지만 자신의 일행들과도 떠들썩하게 혹은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는 법이 없었다.

이제는 나 또한 사람들에게 잘 알려졌고, 나름의 인기라는 것도 생겼다. 사람들은 나를 '웨이크 업의 영'이라고 불렀다. 좀 어리버리하지만 잘 웃는,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다정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내게는 과분한 찬사였다. 사실 나는 세복이에 대한 열정을 빼고 나면, 그리 속이 따스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박영민을 선량한 사람으로 오해하는 것처럼, 그렇게 겉모습만 보고 나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날 아키는 아마 내가 보인 단호한 모습에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그 전부터, 아키가 그 수상한 사람들과 쑥덕거리다가 뭔가를 잽싸게 주고받는 광경을 종종 목격했었다. 하지만 워낙 빠른 손놀림 탓에, 그게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제대로 목격하고 말았다.

하얀 종이에 싼 작고 납작한 것은, 누가 봐도 약이었다.

잠시 후, 아키가 술을 주문하러 카운터 쪽으로 왔을 때 나는 안경을 벗고 아키를 향해 생긋 웃어 보이며 속삭였다.

"너, 잠깐 나 좀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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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키를 데리고 지하 창고로 내려갔다. 그곳 말고는 중해방 조직원들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아키는 나의 요구를 극구 거부했다.

"대체 뭘 내놓으라고는 거예요? 미치겠네."

"그거, 네가 방금 그 사람들하고 주고받은 거, 호주머니 속에 더 들어있지? 다 알고 있으니까 내놔."

"영 누나."

"영이라고 부르지 마."

안경을 벗은 나는 눈을 똑바로 뜨고 아키를 노려보았다.

"나는 영이 아니야. "

"......"

"좋아. 네가 정 그렇게 나온다면."

"잠깐만요."

"그래, 어떻게 할까?"

"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그거 하나만 대답해 줄 수 있어요? 그러면."

"그러면?"

"강태석 살인사건은 내가 막아 줄게요. 영민이 형보다 더 확실하게. 아무도 잡혀가지 않게."

맙소사.

순간 몸이 휘청거렸던 것 같다. 아키가 나를 재빨리 붙잡았다. 머리가 핑 돌았다. 쓰러질 것 같았다.

"네가 그걸 어떻게."

"요전에, 세복이 누나가 날 협박하러 온 날, 나 여기에 숨어 있었거든요. 집에 안 가고."

"......"

"미안해요. "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

"그러니까요."

아키는 나를 벽에 밀어붙이고 내 귀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댄 후, 조용히 속삭였다.

"진짜 세복이 누나가 강태석을 죽였어요?"

"아니."

"그러면, 영 누나가?"

"아니."

"그러면 영민이 형이?"

"아니."

"범인을 일러줘요. 나, 경찰에 신고 안할게요. 진짜로요."

"수연이."

"네?"

"유수연. 그게 범인의 이름이야."

아키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후, 피식 웃었다.

"그런데 왜 세복이 누나는, 자기가 했다고 하는 거죠?"

"날 사랑하니까. 내 죄를 뒤집어쓰려고."

"그 누나, 진짜 그 정도로 누나를 사랑해요?"

"응."

"그래서 누나는 어떻게 하려고요? 경찰에 들키면?"

"박영민이 그랬어. 정황은 나한테 불리하다고. 내가 그날 강태석에게 끌려가는 걸 본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내가 잡혀갈 가능성이 크다고. 그러니까."

"누나가."

"그래, 내가 유수연이야."

나는 아키를 향해 침착하게 웃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로 침착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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