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의 여름
30. 유수연(유영)
"그래서, 누나 그냥 그대로 잡혀갈 거예요? 내가 불면?"
"그럴 각오는 되어 있어."
"세복이 누나는 어떡하고요?"
"그 애를 감옥에 보낼 수는 없지. 무슨 일이 있어도."
"하지만 누나가 과연 세복이 누나를 이길 수 있을까요?"
"내가 범인이라는 유서 쓰고 자살하면 돼. 그러면 끝나. "
"누나."
"유수연은, 네가 아는 착하고 다정한 웨이크 업의 영이 아니야. 전혀 다른 사람이야."
"그런 것 같네요."
"네가 내 약점을 쥐고 있으니, 마약 내놓으라는 말은 못하겠구나. 이제 가. 다시는 여기 오지 마. 오라고 해도 안 오겠지만."
"영민이 형이 우리 대화 듣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럴지도 모르지. 이 창고에서 하는 얘기, 2층으로 바로 녹음되어 올라가니까. 너, 그걸 알고 중간에 선을 연결해서 도청했구나. 세복이랑 영민이 대화."
"그랬죠. 뭐 지금은 회수했어요. 세복이 누나랑 중해방 사이에 오가는 대화가 궁금했을 뿐인데, 뭐 그 누나 그러고는 한 번도 여기 오질 않았으니."
"영민이한테 말해서 여길 다 뒤집으라고 해야겠다."
"그럴 필요 없어요. 이제 여기 안 올 테니까."
"너, 혹시 삼일에 다시 가입한 거니?"
"글쎄요. 아직은요."
"가입할 의향도 있다는 뜻으로 들리네?"
"세복이 누나를.......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세복이가 왜?"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그애는 건드리지 마. 요전에 그애가 너한테 했던 짓은 내가 사과할게."
"에이 뭐 그런 섹시한 도발을 가지고 제가 화가 났을라고요. 아무튼, 이제 앞으로 더 이상은 못 만나겠네요. 잘 지내요. 수연이 누나, 아니 영 누나. "
-------------
"아가씨, 아가씨?"
"네? 주문하시겠어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든 내 눈 앞에 선명한 흉터가 보였다. 내 코 앞까지 바싹 다가온 세복이의 왼쪽 눈 아래 와잠을 장식한 흉터였다.
"정신 차려. 여기 웨이크 업 아니야."
"아......"
"나하고 있을 땐 나한테 집중 좀 하지?"
웃고 있는 세복이의 가늘어진 눈을 보며, 가슴이 뻐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진짜, 한 번 멍해지면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 건지 모를 정도로 넋을 놓는다니까."
골이 난 표정으로 세복이는 그렇게 퉁명스럽게 내뱉었지만, 반대로 손은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듯 나의 짧은 단발을, 아니 이제는 꽤 길어서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머리를 쓸어내렸다.
"이 옷은 나하고 있을 때만 입어, 알았지? 웨이크 업에서 입지 마. 다른 사람이 이거 입은 거 보면 너한테 반할지도 몰라. 불안해."
아키에 대한 생각으로, 옆에 세복이가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잠시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그날, 지하 창고에서 세복이를 언급하다 말고, 갑자기 입을 다무는 아키를 본 순간, 느껴서는 안 될 것을 느끼고 말았기 때문이다.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아키가 나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섣불리 그 이야기를 하거나 경찰에 신고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영민이가 세복이에게 아키와 나의 대화에 대해 알려줄 리도 없었다. 분명 아키와 나의 대화를 다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영민은 웬일인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아마 아키가 그 건을 빌미로 뭔가는 협상을 시도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과연 아키는 뭘 요구할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세복이에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 해서도 안 된다는 것, 그것만이 확실했다.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함세복과 박영민을 화해시켜야 했다. 아키에게 강태석의 일을 들킨 이상은 더 이상 세복이가 박영민을 외면하며 혼자 겉돌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 애가 감옥에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박영민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