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팩더블 3 헤리티지 19)

란의 폭주

by Kalsavina

19. 유수연



"안티고네를 알아?"

그날도 내 앞에서 술을 홀짝이던 송선우 선생이 그렇게 말을 걸어왔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저만치에 혼자 앉아 있던 세복이에게 눈길을 줄 수 밖에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세복이는 요즘 들어 이 시간 그러니까 일이 끝날 무렵이면 꼭 이렇게 나를 데리러 오곤 했다. 그리고 그런 세복이와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송선우 선생 말고도 한 사람 더 있었다.

다름아닌 아키였다.

여전히 음산하게 쳐진 눈매와 겉늙어 보이는 퇴폐적인 얼굴을 가진 아키는 어찌된 셈인지 주위에 허다하게 여자들이 따라붙었다. 때문에 아키가 오는 날은 어김없이 그를 쫓아온 여자들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날이라고 생각해야 할 정도였다. 그 여자들을 말리는 것은 나의 동료인 조매니저의 몫이었다.

역시 아키는 세복이를 쫓아온 것이다. 세복이가 나타나는 시간에 맞춰 어김없이 나타나는 아키를 보자마자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아키를 본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아키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박영민, 함세복, 나. 세 사람 중 나는 가장 약한 사람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아키를 처리하지 못할 거라는 걸 직감만으로 알 수 있었다.

오로지 가장 약한 나만이 아키를 처리할 수 있었다.

지난 여름의 끝자락, 결국 나를 납치해서 기절시키고도 그는 내게 손끝 하나 대지 못한 채 나를 세복이에게 돌려보내야 했다. 그때 알았다. 그는 결코 나를 해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가 세복이나 영민이를 해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코 나를 해치지는 못할 운명이라는 것을.

아키도 어쩌면 그 사실을 알았을까. 아니면 집요하게 내 앞을 가로막는 송선우 탓이었을까. 그는 쉽게 내게 접근하지 못했다. 하기야 그가 진짜로 접근하고 싶어하는 상대는 내가 아니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다.

어찌됐건, 송선우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안티고네라면, 잘 알고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비극의 여주인공이다.

"알죠."

나는 간단히 대답했다.

"그래? 아는 사람 별로 없던데. 너 보기보다 똑똑하구나?"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서요. 학교 다닐 때 주구장창 책만 읽었죠. 그 책 중에 그리스 신화도 당연히 있었고요."

"아, 그래."

"오빠 시신을 매장하는 문제를 두고 외삼촌인 왕과 대립하다가 결국 약혼자를 버려 둔 채 자살하죠. "

"맞아."

언제 왔는지 세복이가 송선우 선생 뒤로 다가와 그를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꽤나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순간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안티고네 얘기는 왜 꺼내신 거죠?"

"널 보면, 그 안티고네 생각이 나서 말이야."

딱히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이제 대충 손님들도 다들 물러가고 가게를 정리할 시간이었다. 서둘러 이것저것 정리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는 내 뒤로 송선우 선생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번 주말에 여기서 결혼식 있다던데, 알고 있었어? 영민이 녀석 친구가 결혼한다고 해서 여기 홀을 통째로 빌려 주기로 했다던데."

그 얘기라면 알고 있었다.

"정아가 수연이 너랑 결혼식 축가 부를 계획이라고 하던데."

그건 금시초문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돌아서서 송선우 선생을 쳐다보았다.

"그런 계획, 없어요."

"그래? 내가 잘못 들었나?"

"네. 잘못 들으셨겠죠."

그렇게 대답한 사람은 내가 아니고 세복이였다. 송선우 선생은 몸을 뒤로 돌려 자신의 뒤에 선 세복이를 잠시 쳐다보았다.

"아, 네가 수연이의 룸메이트구나. 반가워."

세복이는 송선우 선생이 내민 손을 잡지 않았다.

"룸메이트가 아니라 애인입니다만."

송선우 선생은 그 말을 듣고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단지 재미있다는 듯 입가에 엷은 미소만을 지었을 뿐이다. 반대로 세복이는 꽤나 표정관리가 힘든 듯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꽤나 씁쓸해 보인다고 생각한 순간, 그애를 달래야 할 필요를 느낀 나는 일부러 세복이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그애의 팔을 잡았다. 어차피 페이 바 클럽에서 우리 둘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어느 누구 하나 놀랄 사람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이미 손님들이 거의 다 나간 상태였던지라 딱히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다만, 저만치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아키의 눈빛이 거슬렸을 뿐이다.

세복이만 없었다면, 아키를 교묘하게 구슬러 어쩌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마약을 빼앗을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키도, 송선우도 세복이로부터 따돌려야만 했다. 특히 여전히 우리의 약점을 잡고 있는 아키가 세복이와 맞대면을 하는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세복이를 보는 아키의 간절함이 담긴 눈빛을 확인한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나는 얼른 세복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온 후, 우리가 안심하고 키스할 수 있는 페이 바 클럽의 비품 창고로 향했다. 그 곳이라면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마음껏 키스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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