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의 폭주
20. 박영민
맹세코, 수연이 그날 노래를 부르게 할 계획 따위는 애시당초 없었다.
정아가 수연과 듀엣으로 축가 부르기를 청했지만 내가 완강히 불허했다. 정아는 아쉬워했지만 어쨌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못을 박았다.
우선, 유수연이 노래를 하는 걸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든 수연에게 공공연히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했다가는 세복이 녀석이 날 그냥 두지 않을 게 뻔했다.
그러니까 그날은 일이 꼬여 버린 거다.
정아는 수연이 아닌 송선우 선생, 그러니까 선우 형과 듀엣곡을 부르기로 하고, 반나절 연습하고 나서는 꽤 그럴듯하게 호흡을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나서 막상 결혼식 당일날이 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절친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말을 듣고 꽤나 당황했다.
결국 위중하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그녀는 축가 따위는 팽개치고 병원으로 뛰어가야 할 상황이 되고 말았다. 병원으로 뛰어가면서 그녀는, 선우 형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수연 언니가 그 곡 아니까, 죄송하지만 수연 언니랑 불러 주세요!"
그렇게 된 거다.
내가 페이 바 클럽을 빌려 준 친구 녀석은 세복이도 아는 녀석이었다. 때문에 세복이와 수연도 결혼식에 참석했다. 수연은 언젠가 내가 본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마침내 결혼식 축가를 부를 차례가 되었을 때, 선우 형은 하객들에게 공개적으로 이렇게 사과했다.
"원래 여기 페이 바 클럽의 대표 여가수인 임정아 씨랑 불러야 할 곡인데, 정아씨가 사정이 생겨서 여기 계신 유수연 씨와 함께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기습공격을 할 줄은 나도 몰랐다. 곧이어 세복이 녀석의 의혹에 찬 눈길이 나를 향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냐?'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문제가 된 건 세복이의 표정이 아니었다.
유수연은 얼굴이 새파래져서 쩔쩔매고 있었다. 일년 넘게 목이 쉬도록 노래방에서 노래를 했던 기억 때문에 노래라면 치를 떤다고 들었는데, 과연 정아와 선우 형이 부르기로 한 그 노래를, 하물며 팝송을, 불러낼 수 있을까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수연은 훌륭하게 해냈다. 다리가 아파 오래 서 있지 못했기 때문에, 비록 의자에 앉아서 부르기는 했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운 음색으로 훌륭하게 선우 형과 듀엣곡을 불러냈다.
문제는 축가 이후 시작된 결혼식 피로연에서 불거졌다. 세복이 녀석이 눈짓으로 따라 나오라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골치가 저절로 아파오는 것을 참으며 따라 나서야 했다.
"약속이 틀리다?"
아무도 없는 복도 한쪽 구석 돌아진 모퉁이에 들어서자마자 녀석은 대뜸 그렇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내가 시킨 거 아니야."
"그러면?"
"낸들 정아 친구가 그런 식으로 교통사고 날 줄 알았냐?"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왜 정아 대타가 수연이였냐고."
"아 글쎄 내가 정한 거 아니라고. 선우 형이 지 맘대로 그렇게 말한 거라고. 저 축가 완전 즉석으로 한 거라니까. "
그때 다급한 목소리로 나와 세복이를 찾는 용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투복 누나! 보스! 어딨어요? 큰일났어요!"
"뭐야?"
우리는 황급히 다시 홀로 뛰어들어갔다. 우리를 본 용태가 다급하게 우리 쪽으로 뛰어오며 소리쳤다.
"수연이 누나가......"
수연이 있는 쪽을 본 세복이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실신한 유수연이 선우 형의 팔에 안겨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일단 데리고 병원으로 가자."
선우 형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는 동안, 세복이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발목이 아프다고 아까부터 계속 소리지르면서 세복이를 찾았었어. 그러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