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누이
오누이는 눈 덮인 산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열 서너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오래비는 저보다 서너 살 정도 어려 보이는 누이를 등에 업고 걸었다. 오래비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눈은 두 사람의 몸무게에 눌려 내려앉으며 뿌드득 소리를 냈다. 오래비는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힘겹게 몸을 돌려 이미 멀어진 마을의 집들을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발길을 재촉했다. 손이 곱을 만치 추운 날씨였지만 오래비는 장갑을 끼고 있지 않았다. 여동생은 이따금 오래비의 귀에 호호 입김을 불었다. 제딴에는 오래비의 언 귀를 녹여 주려는 모양이었다.
좀 있으면 고개 넘어야 되는데, 무서바서 우짜노.
오빠야가 있는데 머가 무섭노.
오래비는 약간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누이에게 대답했다.
밤에는 산에서 귀신 나온다 아이가.
귀신 같은 거 없다.
있다. 저번에 순정이가 내한테 말해줬다. 밤만 되믄, 그 산에서 목매죽은 처녀 귀신이 나와가꼬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사람들 홀리가꼬 집 못 찾아가게 한다 카드라.
순정이 지가 귀신 봤다 카드나.
아니.
남매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바람이 이따금 생각난다는 듯이 산 쪽에서 휘몰아치며 내려와 남매의 머리카락을 날리고는 조용히 가라앉았다. 바람이 멎자 오래비는 고개를 약간 옆으로 돌리며 누이에게 물었다.
숙아. 약 잘 들고 있나.
응.
오래비의 어깨 앞으로 늘어진 누이의 한 팔에는 조그마한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뒷짐을 진 모양새로 누이를 업은 오래비의 손에는 조기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마을에서부터 누이가 기어이 약봉지만큼은 자기가 들고 가겠다고 우기는 통에 오래비가 마지못해 허락한 것이다.
오빠야. 고개 넘을 때, 너무 힘들면 내한테 말해라. 내 그냥 걸어가께.
니는 아파서 안 된다.
아파도 걸어갈 수 있다.
약방 할배가 뭐라 카데. 뛰어댕기면서 기운 쓰지 말고 가만 있으라 안 캤나.
그래도 내 업고 고개 넘을라카면 힘들다 아이가.
괜찮다. 하나도 안 힘들다.
하늘이 눈에 띄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밤이 되기 전에 고개를 넘어야 조금이라도 편히 집에 갈 수 있을 터였다. 오래비는 발걸음을 한층 빨리했다. 오래비의 낡은 잠바는 새어들어오는 바람을 막기에는 너무 얇았다.
고갯길에 다다르자 길이 가팔라졌지만 오래비는 동생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입을 다물고 행여 얼어서 미끌미끌한 돌을 밟을까 조심하며 비탈진 산길을 올라갔다. 깊이 쌓인 눈이 오래비의 발목을 넘어 종아리까지 차올라왔다. 누이는 오래비의 이마 언저리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땀이 나고 있었다.
오빠야 힘들면 내 내려서 걸을란다.
안된다. 가만 있어라. 잘못하면 미끄러진다. 뒤로 넘어간다. 니가 가만 있어야 고개를 빨리 넘을 거 아이가.
누이는 안심이 안 되는지 목을 빼 오래비의 발을 유심히 살피며 손에 든 꾸러미를 더욱 꼭 그러쥐었다. 산에서는 밤이 일찍 찾아오게 마련이었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을 잔뜩 거느린 나무들이 이따금 길게 뻗은 잔가지를 길까지 내뻗어 오래비의 행로를 방해했다. 그럴 때면 오래비는 이따금 팔이나 귀를 스쳐 지나가는 나뭇가지 때문에 얼굴을 찡그렸다. 하늘이 차츰 검은 먹빛을 띠기 시작하자 오래비는 누이를 한번 털썩 추슬러 올려서 고쳐 업었다. 달빛에 반사되어 희게 빛나는 눈이 오래비의 갈 길을 일러 주었다.
누이는 졸리는지 오래비의 어깨에 머리를 얹었다.
내리막길에 이르자 오래비는 등에 실린 누이동생의 무게 때문에 저절로 몸이 앞으로 구부러졌다. 뒤로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길을 올라온 오래비는 이번에는 앞으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조심조심 산길을 내려갔다. 조기를 잡은 손에 땀이 뱄다. 오래비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여동생의 팔에 들린 약꾸러미가 흔들리면서 오래비의 가슴을 쳤다. 길을 가로막은 큰 바위들을 밟아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조심하며 오래비는 걸음을 옮겼다.
오빠야.
왜.
아까 낮에 마을에서, 내가 사탕 사 달라고 울어서 화났제?
화 안 났다.
오빠야도 사탕 먹고 싶었제?
오래비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칫하다가 발이라도 헛디뎠다간 큰일이었다. 누이동생을 업고 있으니 중심을 잡기도 힘들었고, 만약 넘어졌다간 누이마저 다칠 터였다. 다행히 눈은 아직 얼지 않았다. 오래비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눈은 푸스슥 소리를 내며 오래비의 발을 자신의 품에 깊숙이 묻었다.
오빠야는 어른이라서 사탕 같은 거 안 묵는다.
치, 오빠야는 어른 아이다. 아빠처럼 커야 어른이라 카는 기다.
하여튼 오빠야는 사탕 안 묵는다.
치, 미정이 언니야는 오빠야만큼 컸는데도 사탕 잘 묵는다 캤는데. 오빠야. 오빠야는 미정이 언니야 안 보고 싶나?
모르겠다.
미정이 언니야는 서울 가믄 편지한다 캤는데, 안즉도 편지 안 해 준다.
편지 안 할 끼다.
왜?
서울에는 전화가 있어서 전화 쓰지 편지 안 쓴다.
다시 가파른 길로 접어들자 오래비는 말을 끊었다. 오래비가 한 말을 곰곰 생각하는지 누이도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드디어 고개를 넘고 나자 해가 완전히 저물었다. 그제서야 안심한 듯 이번에는 오래비가 말문을 텄다.
숙아. 춥제?
쪼매 춥다.
쪼매만 참아라. 이제 고개 다 넘었다 아이가. 여그서부터는 그냥 걸으믄 된다. 집에 가믄 약 달여 줄게 먹고 자라.
오빠야. 내 많이 무겁제?
하나도 안 무겁다.
거짓말 하지 마라. 접때 석이 아제아가 내 안아보고는 내보고 쪼매한 게 억수로 무겁다 카드라.
그때는 니가 안 아플 때 아이가.
지금은 내가 아파서 안 무겁나?
그래.
그라모 내 계속 아프면 안 무겁겠네?
시끄럽다 가스나야.
누이는 문득 생각났는지 둥글게 오므린 입을 오래비의 귀에 입김을 호호 넣었다. 오래비는 눈을 몇 번 깜박이다 쿨럭쿨럭 기침을 했다. 오래비의 얼굴도 누이의 얼굴만큼이나 하얗게 변해 있었다.
간지럽다 가스나야. 고마 해라.
있잖아. 오빠야. 왜 서울에 살러 갔는 사람들은 다시 안 오노? 서울에 가면 다시는 못 오나?
그런 갑다. 서울 가면 다시는 몬 오는 갑다.
그래서 엄마도 안 오는 갑다. 맞제?
오래비는 말없이 누이를 업은 어깨를 추스르기만 했다. 누이는 차가워진 손가락을 한참 꼼지락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라모 미정이 언니야도 안 오겠네? 미정이 언니야 불쌍하다.
그 가스나가 와 불쌍하노.
그 언니야 오빠야 좋아했다 아이가.
니 자꾸 없는 말 지어내고 하지 마라.
없는 말 아이다. 그 언니야가 내한테 말했다 아이가. 오빠야한테는 말하지 말라 카믄서, 내한테 사탕 줬다. 오빠야도 그 언니야 좋아했제?
그 가스나를 내가 와 좋아하노.
그 언니야 이쁘다 아이가. 얼굴도 하얗고 코도 오똑하고 눈도 크고. 나는 몬생겼는데.
니가 와 못생겼노. 니도 얼굴 하얀데.
나는 아파서 그렇다 아이가. 순정이가 내보고, 니 병 다 나으면 다시 얼굴 새까맣게 된다 캤다. 그라고 나는 코도 몬생겼고 눈도 작다 아이가. 입술도 못생겼고. 미정이 언니야는 입술도 빨갛고 쪼맨하게 이쁘게 생겼는데.
그런 가시나 한 개도 안 이쁘다.
양껏 가지를 벌리고 서 있던 나무들이 사라지면서 허허벌판이 나타났다. 인적이 없는 황량한 벌판에 희디흰 눈만 제 세상 만난 듯 빈 자리 하나 없이 내려앉아 있었다. 오래비도 누이도 눈시울이 젖었다. 차고 마른 바람이 자꾸 눈에 들어가는 탓이었다.
오빠야. 집에 가믄 아빠 와 있겠나?
와 있지 싶다.
오래비는 애써 어깨를 추스르며 길을 재촉했다. 오래비의 무릎까지 차던 눈은 이제 오래비의 발목까지 내려와 있었다. 눈을 밟을 때마다 나는 푸스삭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누이의 목소리마저 없으면 눈 덮인 들길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일 터였다. 오래비는 퉁퉁 부은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보았다. 발이 얼긴 했지만 아직 발가락은 움직일 수 있었다. 오래비는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중얼거렸다.
눈이 이렇게 많이 온 거는 처음 봤다.
고개를 하늘로 쳐든 누이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하늘이 별이 저렇게 많이 뜬 거는 처음 봤다.
고개를 땅으로 향한 오래비는 원망스러운 눈길로 눈을 쳐다보았고 고개를 하늘로 향한 누이는 별을 닮은 눈빛으로 별을 쳐다보았다. 바람은 잦아들어 거의 불지 않았다. 먹빛 하늘에 빽빽한 별은 불빛 하나 없는 산길을 지나가는 오누이에게 좋은 불빛이 되어 주었다.
오빠야. 내 잠깐만 내려도.
와 그라노.
오줌 마렵다.
쪼매만 참지.
억수로 많이 마렵다.
그제서야 오래비는 무릎을 굽히고 누이를 땅에 내려놓았다. 들창코에 눈처럼 하얀 얼굴을 한 누이는 오래비에게 손짓을 해 보였다. 저쪽에 가서 뒤돌아 서 있으라는 것이었다. 오래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돌아섰다.
그제서야 오래비는 자신의 길눈을 밝혀준 별들을 볼 수 있었다. 별들은 서로 엉켜서 온 하늘을 빡빡 얽어 곰보처럼 만들어 놓았다. 오래비는 발가락을 몇 번이나 꼼지락거리면서 그간 누이를 업고 오느라 뻐근했을 팔을 몇 번이나 번갈아 두들겼다. 오른손을 주먹쥐어 왼팔을 두드리고, 왼주먹으로 오른팔을 두들겼다.
다 눴나?
응.
오래비는 여동생을 서둘러 들쳐업었다. 잠깐의 휴식이 그나마 힘이 되었는지 오래비는 한결 여유로워진 걸음으로 길을 재촉했다. 다시 길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누이가 오래비의 등을 툭툭 쳤다.
오빠야, 내 약. 약이 없다.
오래비 대신 들고 있던 약을 오줌 누느라 멈춰섰던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온 것이다. 오래비는 서둘러 여동생을 다시 내려놓고, 자신이 오는 내내 손에 들고 있던 조기를 잠깐 보았다. 그리고는 불품없는 여동생의 옷을 단단히 추슬러 주며 말했다.
숙아, 잠깐만 여기에 있어라. 오빠야 금방 갔다올게.
누이가 고개를 끄덕일 겨를도 없이 오래비는 파삭거리는 눈길을 가로질러 왔던 길을 되돌아 뛰어갔다. 누이는 시린 눈으로 차츰 까만 점이 되어 가는 오래비를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손을 호호 불고, 기침을 쿨럭쿨럭 하고는, 훌쩍 코를 들이마셨다. 갑자기 숨이 넘어갈 듯한 두어 차례의 기침 끝에 누이는 몸을 굽혀 눈 덮인 땅에 무엇인가를 뱉았다. 누이는 얼른 눈을 주섬주섬 퍼다가 자신이 뱉은 것 위에 덮었다. 그리고는 눈을 한 움큼 집어들어 입가를 슥슥 닦았다. 멀리서 오래비가 뛰어오고 있었다.
오래비의 손에 약 봉지가 들려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뛰어온 오래비는 한동안 숨을 고르며 누이를 쳐다보았다. 누이는 약간 겁에 질린 눈으로 오래비를 마주 쳐다보다가, 오래비가 웃는 것을 보자 안심이 되었는지 오래비 뒤로 돌아갔다.
잠시 후 오래비는 크게 숨을 내쉬고는 누이를 다시 들쳐 업었다. 이번에는 약봉지도 조기도 오래비가 뒷짐 진 손에 들었다. 손이 자유로워진 누이는 양손을 깍지껴서 오래비의 목을 끌어안았다. 한참을 말없이 걷던 오래비가 입을 열었다.
숙아. 아까 네가 오줌 눠서 눈 녹은 자리에, 돈 있더라.
진짜가? 얼마짜리?
오십원짜리.
그거 내 오줌 묻어서 드럽을 낀데.
말 끝에 누이는 제딴에 부끄러운지 오래비의 어깨를 주먹으로 두어 번 힘껏 쳤다. 오래비는 하하 웃었다.
안 드럽다. 눈으로 꽁꽁 뭉쳐서 씻은 다음에 갖고 왔다 아이가. 다음에 읍내 갈 때는, 숙이 사탕도 사 줄 수 있겠다.
누이는 입을 삐죽거렸다. 그러다 이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오래비의 차디찬 뺨에 손을 대 보았다.
오누이는 눈 덮인 산길을 계속 걸어갔다. 별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 컴컴한 하늘에 구름이 드리워지고 있었지만 오누이는 구름을 보지 못했다. 오래비는 걸음을 멈추고 멀리 앞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기 당산나무 보인다. 당산나무만 넘어가면 집까지 금방 간다. 쪼매만 참아라. 니 추운 데 너무 오래 있어가꼬 감기 들겠다.
오빠야.
와 그라노.
내 사탕 안 사줘도 된다.
아까는 먹고 싶다 안 캤나.
오빠야 장갑 사라.
오빠야는 장갑 필요없다. 좀 있으면 겨울 다 지나가는데 무슨 장갑이 필요하노.
그래도 내년 겨울에 또 눈 올 낀데.
눈이 한 송이 두 송이 소리없이 내리기 시작했다. 오누이는 야트막하게 펼쳐진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갔다. 소리없이 내려온 눈은 소리없이 쌓여갔다. 다시 앙상한 팔을 여러 개 뻗친 나무들이 드문드문 나타났다. 비탈진 고개에서와는 달리 한껏 가지를 위로 뻗은 나무들은 오누이를 배웅하는 듯 이따금 언 가지를 흔들었다.
오빠야. 접때 순정이가 그러는데, 산에 호랑이 있다 카드라.
호랑이 없다. 있으면 우리가 봤을 거 아이가.
혹시 우리가 지나가는지 모르고 산 속에서 자고 있는 거 아이가?
아이다. 호랑이는 여기에 없다.
그라모 호랑이는 어디에 있는데?
북쪽에. 여기보다 훨씬 추운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라모 호랑이도 춥겠네. 호랑이는 추운 걸 어떻게 참노.
호랑이는 털이 뜨시니까 추운 줄 모른다 아이가.
진짜가. 호랑이 보고 싶다.
니는 호랑이 안 무섭나.
내는 안 무섭다. 옛날에 석이 아제아가 그림책에 나온 호랑이 보여줬는데, 한 개도 안 무섭게 생겼더라.
오래비는 곰곰이 뭔가를 생각하다가 누이에게 말했다.
숙아. 있제. 서울에 가믄 동물원이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 가믄 호랑이 사는 집 있거든. 오빠야가 나중에 크면 숙이 델꼬 동물원 가서, 호랑이 구경 시켜줄게.
싫다.
와 싫은데.
서울 가믄 아무도 못 온다 안 캤나. 내는 서울 안 간다. 여그서 오빠야랑 살 그다.
서울 가믄 엄마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싫다.
숙아.
왜.
기침 나나. 가슴 아프나.
안 난다.
기침 날 때 가슴 아프면 말해라. 알았제.
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래비는 입을 꾹 다물고 걸음을 재촉했다. 오누이의 새까만 머리 위로 눈송이가 몇 개 내려앉았다가는 금세 녹아 버렸다. 누이는 잠이 오는지 오래비의 어깨에 머리를 얹었다. 오래비의 목 앞으로 깍지 낀 손이 몇 번 힘없이 흔들리다 스르르 풀렸다. 이따금 누이는 기침을 했고, 그럴 때면 오래비도 생각난 듯 쿨럭거리며 기침을 했다. 저만치서 오누이를 지켜보던 산토끼가 재빨리 몸을 돌려 골짜기 쪽으로 뛰어갔다. 부지런히 언덕을 내려가는 오누이의 뒤에 남은 움푹한 발자국들을 새로 내린 눈이 소리 없이 뒤덮었다. 오누이는 그들의 발자국과 이따금 불어오는 마른 바람과 앙상한 겨울나무 가지의 배웅을 받으며 눈 덮인 산길을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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