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savina의 인형이야기
3. 시온, 혹은 이름없는 아이
대체로 내가 원해서 데려온 인형들에게 많은 애정을 골고루 쏟는 편이었지만, 슬프게도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있었다. 바로 시온이 그 중 하나였다.
소다를 만나기 전, 인형동호회 카페를 습관처럼 들락거리며 예쁜 인형들을 감상하던 나는 인형계(인형의 세계의 줄임말)친구들이 올린 사진 속 미미인형들 틈바구니에서 조금 낯선 분위기의 아이를 보게 되었다. 굉장히 섬세한 얼굴을 가진 그 아이에게 매료된 나는 지체없이 내가 반한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일본에서 발매된 J로 시작하는 아이들의 시리즈 중 하나인 시온으로써, 다양한 머리카락과 눈 색깔을 가지고 있었지만 섬세하면서도 차가운 몰드는 그 어떤 아이와도 닮지 않은 독특한 아이였다. 속칭 '웃지 않는 아이'로도 유명한 아이였다.
온라인으로 이 아이를 처음 들여와 상자를 푼 순간,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분명히 예뻤고, 시온이 맞는데도 내가 본 사진 속의 아이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가 데려온 아이는 정식 J프렌드 제품이 아닌, 시온의 본회사가 D사와 제휴하여 보급형으로 내놓은 저가형 아이였던 것이다. 저가였다고 해서 퀄리티에 특별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무척 아꼈었지만, 이내 나를 당황스럽게 하는 문제들이 불거졌다.
그 아름다운 얼굴이 도무지 사진으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는 점과, 내 방의 책장 구석에 기대 세워두면 얼굴이 검게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은 무척 사랑했던 아이였다.
인형계 친구 중 하나가 자신의 징크스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형의 이름이 일주일 안에 지어지지 않으면 그 인형을 떠나보내는 징크스가 있다고.
시온의 이름이 예상 외로 잘 지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시온에서 받침을 떼고 그냥 시오라고 불렀다가, 뒤늦게 세실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지만 입에 잘 붙지 않았다. 어떤 이름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고, 오히려 이름을 지어주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어느 날, 내 방에서 놀고 있던 조카녀석이(사내아이다) 이 아이의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 버렸다. 그 결과 시온의 머리는 속칭 히메컷이라 불리는, 옆 머리 기장이 뒷머리보다 짧은 헤어스타일이 되었다.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면서 마지막 애정도 떨어져나간 것일까. 이 아이는 결국 봉인되었다.
언제 보아도 시온은 아름다운 인형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변함없이 그러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좀더 따뜻한 분위기를 가진 아이들이 그리워졌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는 아이들이 아닌, '괜찮아'라는 미소를 띈 얼굴로 나를 편안하게 위로해 줄 아이들.
어렵게 구한 아이이고, 이 아이를 구해준 여동생의 정성을 생각해, 이 아이는 나중에 조카딸, 즉 시온의 머리를 자른 사내아이의 여동생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좋아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또 언젠가는 다시 애정이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일단은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