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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Feb 07. 2019

벙어리 여가수

침묵을 노래하는 여자

벙어리 여가수



written by kalsavina



1989년 가을. 경상북도 왜관 약목.



그 수상한 여인이 들이닥친 것은, 언제나처럼 평화롭고 분주한 두견 씨의 이른 오전 시간이 다 지나가고 바야흐로 시계가 점심시간을 가리킬 무렵이었다. 두견 씨는 손님이 많지 않은 이른 오전중에 망가지거나 더러워진 이발도구들을 간단히 손질하고 점검하곤 했다. 그 습관적인 작업이 끝나고 때마침 들어온 한 친구의 머리를 깎아주고 또 다시 찾아온 두세 단골들과 한가롭게 잡담을 하고 있는 동안, 두견 씨의 이발소에 아저씨를 찾는 동네 아줌마들이 아닌 날씬한 젊은 여자가 들어오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랬던만큼, 미장원 앞에 쳐진 구슬로 만든 굵은 발을 살짝 걷고 그녀가 살며시 들어섰을 때 고개를 돌린 두견 씨 단골들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진 것이야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놀란 것은 역시 다름아닌 가게 주인 두견 씨였다. 이발소에 여자 손님이라니, 그것도 이 좁디좁은 동네에서 말이다. 혹시 길이라도 물어 보려고 들어선 게 아닌가 하는 두견 씨의 희망섞인 의혹은 여인이 내민 한 장의 쪽지를 받아든 순간 그야말로 현실적인 공포로 바뀌고 말았다.


머리 좀 잘라 주세요. 삭발해 주세요.


사뿐히 두견 씨를 향해 걸어온 여인이 한 장의 쪽지를 내밀고, 두견 씨가 그 쪽지를 읽는 동안 의자에 앉아 있던 단골들은 호기심 어린 눈초리를 여인에게 보내고 있었다. 다들 그 여인이 두견 씨의 숨겨놓은 애인이라도 되나 하는 표정을 짓고.

쪽지를 읽은 두견 씨는 일단 직업상의 오랜 습관에 따라 먼저 여인의 머리카락에 시선을 주었다. 머릿결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잘 손질된 단발이었다. 여인의 얼굴은 새하얗고 갸름했다. 이 고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유형의 얼굴이었다. 색이 짙은 얄팍한 입술은 그다지 건강이 좋지 않은 듯한 느낌을 주었다. 전체적으로 매우 가냘픈 느낌을 주는 여성이었다. 나이는 아무리 많아도 삽십 대 초반을 넘기지 않았을 것 같았다. 이십 대 후반과 삼십 대 초반 정도로 짐작케 하는 얼굴이었다.

“말, 못합니까?”

얼떨결에 튀어나온 질문이었는데, 여인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견 씨는 어이가 없어 멍청하게 입만 반쯤 벌린 채 여인을 쳐다보았다. 뒤에서 두견 씨의 한 단골이 여인을 향해 말을 걸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여인은 고개를 돌려 그 단골을 쳐다보기는 했으나 여전히 입을 열지는 않았다. 대신 손짓으로 자신은 말을 못한다는 것을 알렸다. 처음에는 그 간단한 수화를 알아보지 못했으나, 곧이어 여인이 자신의 입을 가리키고 손을 내젓자 그제서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녀가 벙어리라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말을 못하시는구료?”

그러자 곧이어 다른 사람이 말했다.

“여자면, 미용실에 가야지, 왜 이발소에 와서 머리를 깎아요?”

여자는 슬픈 표정만 시종일관 유지할 뿐 도통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두견 씨는 그야말로 난감 그 자체가 되고 말았다. 이 여자를 쫓아보내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일단 시도는 해 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귀머거리는 아닌 듯하니까. 두견 씨는 침착한 태도로 여인에게 말했다.

“저기, 여길 나가서 큰길따라 한 오분 정도만 걸어가면, 미장원 나와요. 거기서 깎아 달라고 해요. 잘 깎아 줄 거야.”

여자는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로부터 약 이 분, 내지는 삼 분 가량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발소 안은 그야말로 찬물을 뒤집어쓴 듯 놀랍고도 어색해 어쩔 줄 모르는 침묵이 감돌았다. 이 아름다운 벙어리 여인이 ‘자, 우리 모두 다 같이 벙어리가 됩시다 합!’이라고 요구한 것도 아닌데, 그런 요구를 받아들이기라도 한 듯 모두가 멍청하게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다. 마침내 정신을 차린 두견 씨의 단골이 두견 씨 대신 결심을 했다.

“이봐, 두견 씨.”

“네, 네?”

두견 씨는 화들짝 놀라며 머쓱한 표정으로 단골을 쳐다보았다.

“그 쪽지에 뭐라고 적혀 있어?”

“네? 아, 네. 머리 좀 깎아 달라는데요.”

“그럼 깎아줘 그냥. 유리네 미용실 오늘 일 있어 문 닫았나 보지 뭐. 더 멀리 가려면 귀찮잖아. 좀 남자처럼 자르고 싶나 보지. 그냥 이발해 줘.”

“그게......”

두견 씨는 울상이 되어 대답했다.

“삭발해 달라잖아요.”

여인은 이제 처음의 슬픈 표정을 다소 걷어내고 침착하면서도 속내를 알 수 없는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한 손님과 눈길이 마주치자 그녀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잠시 후 화장실 좀 갔다 오겠다며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다.

“삭발? 왜?”

여자는 대답 대신 침묵만 지켰다. 두견 씨는 잠시 여자를 쳐다보다가, 마침내 여자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안될 거야 없지 않은가. 어쨌든 자기 일이니까. 그리고 이발소에서 여자 손님을 받아주면 안된다고 법으로 정해 놓은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건 그냥 관행일 뿐 법은 아니다. 또 설령 그게 법이라 한들 어떤가. 나는 그냥 돈 받고 머리 깎아 주는 사람일 뿐인데. 더구나 자기가 원해서 하겠다는데. 까짓 거, 해주자. 해 주고 말자.

“돈 먼저 내쇼. 오천원.”

오천원이라는 말을 들은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두견 씨의 얼굴을 향했다. 너나 할것없이 뜨악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저 바리깡으로 슥슥 밀고 나면 끝날 작업에 무려 오천원을 요구하다니!(우동 한 그릇이 이천 원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들고 있던 작은 반지갑에서 오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냈다. 손놀림이 느렸지만 주저하는 기색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들어설 때는 단순히 여자라는 사실에만 놀라 미처 살펴볼 겨를이 없었는데, 이제 보니 여인의 복장도 동내 아줌마들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무늬가 없는 다갈색의 두껍고 긴 치마, 회색 남방 위로 걸친 얇은 바바리코트는 동네 여자들이 입고 다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가끔 서울에서 오는 여학생들의 세련된 옷차림하고도 거리가 멀었지만, 동네 사람들의 적당히 촌스럽고 시골스러운 옷차림과도 거리가 멀었다. 한 마디로 외계에서 오기라도 한 것인지, 곤혹스럽기 이를 데 없는 여인이었다.

“이 쪽으로 앉으소.”

돈을 받은 두견 씨의 말투는 저도 모르게 부드러워져 있었다. 여인은 말없이 등받이 없는 검정 의자에 앉아 두견 씨가 여인의 목에 긴 천을 감아 두르도록 내버려두었다.



두견 씨는 처음부터 바리깡을 들이대지는 않았다. 어쩐지 이 여인의 요구대로 무자비하게 삭발을 하는 만행을 감행한다는 것이 속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들어온 다른 손님들이 호기심어린 눈길로 여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모두가 이 동네 토박이인 두견 씨 또래의 장년 남자들이었다. 다만, 한 청년을 제외하고는. 이 청년은 얼마 전 새로 들어선 정육점에서 일하는 총각이었는데, 마치 여자를 세상에서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이 낯선 여인의 옆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나중에 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는지 다들 나가버리고 다시 이발소 안에는 네 사람만 남았다. 두견 씨는 대충 짧게 잘라 모양을 내고 나서 여인에게 다시 물었다.

“꼭, 빡빡 밀어야겠소?”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출가라도 하려는 건가? 그 생각을 하며 두견 씨는 하는 수 없이 바리깡을 가져왔다. 마침내 여인의 머리에 기찻길이 나기 시작했지만 여인의 표정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기찻길이 뒤통수까지 내려가려던 시점에서, 문득 두견 씨는 바리깡을 멈추었다. 어쩐지 이 수수께끼 같은 미묘하고 가냘픈 여인의 머리를 바리깡으로 밀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더구나 정말로 출가를 결심하고 삭발하려는 거라면, 더욱 그렇다. 그는 잠시 후 바리깡을 내려놓고, 조그마한 그릇에 물을 담아온 후, 면도할 때 쓰는 비누와 면도칼을 가져왔다. 그는 조각상처럼 오롯하게 앉은, 머리 한가운데가 매끈하게 밀리다 만 우스꽝스러운 모양새의 여인을 잠시 쳐다보았다. 그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어디에선가 누군가가 몸을 부르르 떨기라도 했는지 축 처진 공기 속에서 한 줄기 진동이 허공을 훑었다.

“잠시만요.”

두견 씨는 비누거품을 내기 시작했다. 여인의 매끄러운 두피가 행여나 면도칼에 다치지 않도록.  


 

그로부터 며칠이나 지났을까.

두견 씨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도통 편하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서 뒤도 닦지 않고 나온 듯한 그 찜찜함이, 비 오는 날 비를 맞고 돌아다녀 쫄딱 젖은 옷을 그대로 말려 입은 듯한 찜찜함이 계속해서 두견 씨의 가슴 한 켠에 집요하게 남아 있었다. 일상은 그대로였고, 머리를 깎거나 면도를 하러 오는 손님들도 그대로였는데, 늘 쓰는 날이 닳은 이발 가위 역시 그대로였는데.

그날, 거울에 비친 자신의 파르라니 깎인 민대머리를 쳐다보는 여인의 표정에는 동요가 없었다. 애처로워 보이던 여인의 모습은 더 이상 애처로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잘 어울려서, 본래 머리카락이 붙어 있던 모습이 더 어색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 상태에서 어떤 가발을 만들어 씌운다 한들, 지금의 이 대머리보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여인은 만족한 듯, 가벼운 미소마저 지어 보였다. 두견 씨로서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천원은 과했지 싶었다. 처음에는 여인의 기세를 꺾어 가게를 나가게 할 요량으로 터무니없이 비싼 요금을 부른 터였는데, 여인은 순순히 돈을 치렀다. 그렇게 기어이  이발소에서의 삭발을 감행하고야 만 여인의 의지가 두견 씨와 그의 단골들을 알 수 없는 불가항력으로 압도했다.   

자신을 쳐다보는 손님들의 시선 따위에는 개의치 않고. 여인은 굵은 염주로 엮은 발을 살짝 들추고는 길고 호리호리한 몸을 살짝 접으며 이발소를 빠져나갔다.

그날 하루 동안, 두견 씨는 온몸을 얻어맞은 것 같기도 하고 전신맛사지를 받은 것 같기도 한, 쑤시는 듯한 몽롱함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가벼운 몸살감기에 걸린 것 같아 약국을 찾았더니 약사는 대수롭지 않게 감기약을 처방했다.

지금 두견 씨의 가슴에 남은 것은 어떤 종류의 불편함이었다. 어쩐지 그 여인을 다시 만나지 않으면 결코 해소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불편함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두견씨가 그 여인에게 반했다는 뜻은 아니다. 이미 두견 씨는 오십줄에 접어든 나이였고 그 여인은 비록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기는 해도 두견 씨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게다가 그 나이가 되도록 독신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두견 씨의 눈에 찰 만큼 그 여자가 대단한 미인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두견 씨에게는 오래된 내연녀가 있지 않던가. 다름아닌 두견 씨의 절친한 친구이자 단골인 슈퍼마켓 주인 정남씨의 마누라 말이다.    

다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복덕방 할배의 흰 머리를 조심스럽게 잘라내고 있던 두견 씨에게 허겁지겁 들이닥친 사람이 있었다. 길 건너 정육점 주인이었다.

“어쩐 일이요? 뭔 일 났소?”

두견 씨는 특유의 침착한 근성을 잃지 않고 물었다.

“오늘 밤에 나랑 같이 가자고.”

“어딜?”

“어디긴, 읍에 새로 생긴 회관 말이제. 요새는 그걸 캬바레라고 부른다카데? 아무튼 말이시 오늘 밤에 정남이하고, 자네도 아는 그 은행 댕기는 명수하고, 나하고 같이 갈 작정인데 같이 안 갈랑가? 우리 집 영달이도 같이 가고 싶다 해서 데려갈라 하는데.”

“가지요 마.”

두견 씨는 선선히 대답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굳이 안 갈 이유가 없었던 데다 이런 일로 자신을 먹고살게 해주는 단골들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좋을 것도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 새로 개장한 회관이 얼마나 크고 호화로운지에 대해서는 그도 입소문을 통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게다가 예쁜 무희들을 그렇게 많이 동원한다고 하니, 제법 볼거리도 화려하겠다.

두견 씨는 가위질을 하는 손을 좀 더 바삐 움직였다.




과연 소문대로 새로 생긴 회관, 아니 캬바레는 크고 호화로웠다. 약목시장 사거리에서 이삼 년 전 개장해 인기를 누리고 있던 회관과는 도무지 비교가 되지 않았다. 특히 새 캬바레에 설치한 조명은 촌스럽게 울긋불긋하기만 하던 무지개조명과는 다르게 뭔가 은근히 야릇하게 남자의 마음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었다. 붉은색, 귤색, 푸른색이 번갈아 가며 교차하는, 때로는 어두워지고 때로는 밝아지는 조명을 보고 있노라니 술이 없이도 저절로 몸이 취하는 기분이 되었다.

“어서 오십시오! 저희 쌕씨 캬바레에 오신 모든 손님들을 환영합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저희 캬바레에 오신 모든 손님들을 책임지고 오늘 하루 왕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춤과 노래, 맛있는 술을 오늘 저녁 원없이 즐겨 보십시오! 그러면 먼저 우리 땐서 언니들의 춤부터 감상해 보실까요.....”

술을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던 두견 씨는 저 멀리 구석진 자리에 있는 탁자에 간 큰 동네 아줌마 몇몇이 행여 남의 눈을 끌세라 얼굴을 반쯤 가리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필시 호기심 때문에 찾아왔거나 아니면 행여 남편들이 이런 곳에서 불장난이라도 저지를세라 감시할 작정으로 찾아왔거나 둘 중 하나이리라. 게다가 잠시 후 간혹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외화가 아니면 좀처럼 보기 힘든 무희들의 캉캉이 시작되면서 두견 씨는 어느 새 술과 춤이 이끌어내는 분위기에 취해 주위를 잊고 말았다.

캉캉이 끝나고 당대의 내노라하는 유행가들이 울려퍼지기 시작하자 두견 씨의 일행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꽤 많은 여자들이 블루스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손짓을 하며 남자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저 수줍은 영달이마저 제 주인의 손에 억지로 끌려나가서는 어느 새 슬그머니 아가씨 하나를 어설프게 끌어안는 것을 보며 두견 씨는 혀를 찼다. 아가씨의 눈두덩은 한 대 얻어맞아서 그런지 푸른 아이 섀도 때문인지 퍼렇게 물들어 있었다. 마스카라를 잔뜩 길다란 속눈썹이 공작처럼 깜박거리는 것이 두견 씨의 자리에서까지 보이는 것이었다.

두견 씨는 그저 울적한 마음이었다.

회관은 화려했고, 주위는 흥청거렸지만, 조명 탓이었을까. 스멀거리는 듯 안개가 자욱이 낀 듯, 무언가에 깊숙이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하는 듯한 안타까움 때문에 두견 씨는 그저 술을 푸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블루스 타임이 끝나갈 무렵 두견 씨의 자리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사회자의 억지스럽게 꾸민 멘트가 다시 튀어나왔다.

“자, 그럼 막간을 이용해 우리 캬바레의 명물, 신이 내린 목소리, 일명 ‘벙어리 언니’로 통하는 춘애 씨의 재즈를 한 곡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쩐지 사회자의 멘트는 별로 시간상 적절하지 않은 상황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모두가 블루스에 빠져 그 여운을 즐기느라 노래 따위는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견 씨는 가수가 등장하는 플로어가 잘 보이도록 자리를 바꿔 앉고, 다시 비싼 양주를 잔에 따르며 무대를 응시했다. 역시 외국 영화의 배경음악으로나 쓰일 법한 음악이 울려퍼지면서(두견 씨는 나름대로 그런 류의 음악을 재즈라고 부르려니 하고 넘겨짚고 있었다) 여가수가 무대 위로 걸어나왔다.

순간 두견 씨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여인이었다. 며칠 전, 아니 그보다 더 며칠 전이던가, 두견 씨의 이발소에 와서 머리를 삭발하고 간 그 여인.

그 사이에 머리는 조금 자라 있었다.

그날 두견 씨가 본 다소곳하고 파리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여인은 짙은 화장과 요란한 귀걸이를 달고 화려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애수를 띤 표정을 지으며 무대 위에 우뚝 섰다. 여인의 하얀 가슴은 브이넥으로 깊이 파인 검은 드레스 덕분에 두드러지게 드러나 있었다. 화려한 귀걸이와는 반대로, 목에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앙가슴이 훤히 노출된 가슴은 그리 크지 않게, 봉긋하게 솟아 있었다. 그녀가 여자라는 것을 잊지 않고 알려 줄 정도로만, 작게. 반대로 소매는 길었고 옷은 전체적으로 몸에 딱 붙었다. 무릎 아래에서부터만 살포시 퍼지는 그 옷은 역시 영화에서 여배우들이 시상식 따위를 할 때 입는 그런 옷이었다.

입술은 무섭도록 빨갛게 칠해져 있었다.

두견 씨는 그야말로 감전이 된 사람처럼 여인을 바라보았다. 가슴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솟아나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

여인은 마이크를 잡고 빨간 입술을 크게 벌려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찌 된 셈인지 그 재즈라고 부르는 음악이라고 생각되는 반주가 너무 커서, 여인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입만 봉긋거릴 뿐, 노래를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주위에서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든 들리지 않든, 그런 것은 전혀 개의치 않고, 나름대로 다시 펼쳐지는 블루스 타임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갑자기 구석 탁자에 있던 아줌마 하나가, 낯선 여인을 팔에 안은 남편에게 달려들었다가, 어디선가 나타난 경비원이라고 생각되는 힘센 두 사내들에게 붙잡혀 밖으로 내쫓기고, 그 바람에 그 주위에서 작은 소요가 일어나고, 그 소요를 덮기라도 하듯 음악은 느린 템포로 시끄럽게 울려퍼지고, 조명은 어두워졌다가 밝아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두견 씨는 그저 그 여인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여인은 눈을 감고, 장님이 된 것처럼, 귀머거리가 된 것처럼, 입을 벙긋거리며, 전혀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내느라 입만 벙긋벙긋 벌리며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눈이 없는 문어 한 마리가 입만 벌리고 빨판 달린 다리로 여기저기를 더듬으며 침을 흘리고 먹이를 먹는 듯한 기괴함을 두견 씨로 하여금 느끼게 했다.

역시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문득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스산함에 주위를 돌아본 두견 씨는 여인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이 자신뿐만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저마다 블루스를 추거나 술 마시는 데만 여념이 없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영달이가, 정육점 점원 영달이가 며칠 전 아니 더 며칠 전 가게에서와 다름없이 튀어나올 것 같은 눈을 더 크게 뜨고 홀린 듯이 여인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같이 춤을 추던 퍼런 눈두덩의 아가씨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 영달을 잠시 주시하던 두견 씨는 다시 눈을 여인에게로 돌리고, 이번에는 놀라움보다는, 경이로움이 더 많이 섞인 기분으로, 여인이 노래하는 침묵과 반주로 울려퍼지는 그 재즈인지 뭔지 하는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고 있는 동안 두견 씨는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졌다. 잦은 부모의 싸움과 가출로 인해 불행했던 어린 시절, 전쟁과 피난길, 전쟁이 끝나고 부모가 헤어진 후 학교를 채 마치지 못하고 그만두어야 했던 기억, 이발 기술을 배우며 떠돌던 시절, 두견 씨로 하여금 두견새라는 별명이 붙게 하고 기어코 그것이 이름처럼 굳어지게 했던 몇몇 사건들......마침내 현실로 되돌아온 두견 씨는 벅차오르는 감흥 때문에 술조차 마실 수 없었다.

노래가 끝나자 여인은 조용히 사라졌다. 등장할 때와 마찬가지로, 조금은 위엄있게, 그러나 결코 요란하지 않게, 아니 조금도 요란하지 않게, 조용히.



대머리 여가수가 왜 노래를 부르지 않았느냐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렇다. 왜 여가수가 노래를 부르지 않았느냐, 혹은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 사람이 두견 씨 말고도 한두 사람은 있었던 모양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캬바레 측에서는 이에 대해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가 버렸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는 그보다 더 이상한 일도 많고 많은 법이니만큼, 사람들은 실수였거나 사고였던 것이려니 하고 그냥 그렇게 넘어가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두견 씨로서는 결코 넘어갈 수 없었다. 적어도, 두견 씨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녀는 벙어리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벙어리가 어떻게 노래를 부를 수가 있단 말인가? 아니 그 전에, 그 벙어리 여가수는 결국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지도 않았쟎은가? 안 불렀든 못 불렀든 간에 말이다. 며칠을 두고 그 문제에 골몰하던 두견 씨는 결국 그날 같이 갔던 정육점 주인에게 그 문제를 따져 물어 보았다. 그런데 정육점 주인의 대답은 더 해괴했다.

“나는 그 여자가 노래 부르는 걸 들은 것 같은데?”

“뭐라고요?”

“음, 뭐 확실치는 않지만, 노래 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던 건 기억한다고.”

“그럴 리가요. 그 여자는 벙어리에요. 진짜라고요. 머리 깎아달란 말도 못해서 쪽지에 적어서 내밀었는데.....”

“말하기 싫어서 그랬겠지 뭐. 살다 보면 정말 입 열기 싫은 날도 있잖아? 그보다 두견 씨, 만원만 좀 꾸어 줘. 그날 캬바레에 가서 엄청 썼더니 마누라가 아주 난리야. 집에서 밥도 못 얻어먹게 생겼어.”

결국 두견 씨는 말도 안 되는 질문 하나 한 댓가로 애꿎은 만원만 뜯기고 말았다.

정육점 주인의 주장이야 어쨌든, 두견 씨는 그녀가 분명 벙어리였으며 무대 위에서도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육점 주인 말고 이 문제를 의논할 적합한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화창한 어느 토요일 오후, 드물게 손님이 제법 북적이는 가운데 영달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마침내 두견 씨는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갈 마땅한 상대를 만났구나 하고 생각했다. 두견 씨는 밀려드는 이발을 혼자 해내며 어떻게든 영달이에게 이 얘기를 꺼내보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때 난데없이 두견 씨의 단골들 중 하나가 두견 씨의 궁금증을 해소할 일말의 실마리를 풀어 주었다.

“......노래는 잘하는데 가수는 너무 못생겼고, 그래서 캬바레 같은 데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게 그거라카데. 음악반주하고 미리 녹음해 놓은 노래만 틀어놓고, 나가기는 가수 대신 얼굴 예쁜 언니들이 나가는 거라. 그래놓고는 나오는 노래에 맞춰 마이크 잡고 입만 벙긋거리면 되는 거제. 캬바레 입장에서는 손해 볼 거 없고.”

“그러면 며칠 전에도 그 머리 빡빡민 여자가 노래를 안 불렀는 거는, 미리 녹음된 노래를 틀지를 않아서 생긴 사고였던 갑지예?”

두견 씨는 사투리가 유달리 심한 그 단골의 억양에 맞추어 짐짓 질문을 던져 보았다.

“뭐 그렇겠지.”

두견 씨로서는 너무나도 허무한 대답이었지만, 생각해보면 달리 반문할 게 없기도 했다. 그렇겠지. 그렇겠지. 캬바레 주인은 녹음된 목소리를 틀고, 벙어리 여가수는 앞에서 입만 벙긋거리고. 그러다가 실수로 녹음된 목소리가 고장나거나 멈춰 버리면, 별 수 있나. 입만 벙긋거려야지. 그러나, 그러나.....

왜 앞에 나와서 마이크를 잡은 여인이, 예쁜 무희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삭발을 해 준 그 벙어리 여인이어야 한단 말인가? 이 점에 대해서만큼은 어디에서도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님의 머리를 감기던 그는 대야의 물을 버리려다 문득 영달이를 생각해내고 그를 돌아보았다.

“자네는 아는 거 없나?”

“뭘요?”

“그 여자, 그날 노래 부르던 그 대머리 벙어리.”

“제가 뭘요. 저는 아는 거 없어요.”

퉁명스러운 대답 끝에 이상하게 괴로움이 번져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영달이의 얼굴이 어딘가 모르게 어두웠다. 처음으로 여인을 본 날, 여인을 홀린 듯 쳐다보던 영달이의 표정, 그리고 캬바레에서 어둑하게 퍼지는 조명을 온 얼굴에 받으며 여인을 바라보던 그 표정에도 그 괴로워하는 듯 어두운 기색은 똑같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여인을 잘 아는 것 같지도 않은데, 모를 일이라고 두견 씨는 생각했다. 혹, 그 여인을 떠올리며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영달이도 같이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그게 아니면, 나와는 다르게 영달이는 정말로 그 여인에게 반한 건지도 모르겠다고, 두견 씨는 혼자 추측해 보았다.



 그 여인을 떠올릴 때면, 두견 씨는 가슴 벅찬 희열과 함께 인생에 대한 어떤 회한, 서러움, 애처로움, 인생에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듯한 씁쓸함이 느껴져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후로는 여인의 모습을 볼 수도 없었고, 여인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런 여인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몰랐다. 한 두 번 비싼 입장료를 내가며 캬바레에 가 보기도 했지만, 여인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잊어야 하리라, 잊어야 하리라.

그렇게 중얼거려 보기는 하지만, 감동에 젖어 본 한편의 슬픈 영화처럼, 그 여인은 두견 씨에게 있어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존재였다. 두견 씨 자신으로서도 그런 감정이 좀 이상하기는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여인을 떠올려보면 느껴지는 형언할 수 없는 슬픔 때문에, 두견 씨는 때로 일손을 놓기도 했다. 반대로 가위를 잡기 싫은 어떤 권태로운 날에는 그 여인을 떠올리고 이상한 용기를 얻어 다시 가위를 잡기도 했다.

한편, 그 벙어리 여인이 어떻게 해서 무대 위에 올라 무대를 향해 들리지도 않을 노래를 불렀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달포가 지난 어느 날, 외지에서 온 한 손님이 이발을 하는 동안 이런저런 한담을 하다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문제의 그 캬바레를 들먹이기 전까지는.   

“그 캬바레 지배인 조카가 벙어리라고 하데? 근데, 좀 머리가 이상하다던가 뭐라던가? 원래는 벙어리가 아니었고 머리도 여자로서는 드물게 비상해서 천재라고까지 했다는데, 공부한다고 외국에 한번 갔다오더니 머리가 이상해져서 고마 실어증에 걸렸다더만. 그렇다고 별 특별한 말썽을 부리는 건 아니니 정신병원에 집어넣지는 못하고, 그냥 손 놓고 놔두기보다는 뭐라도 시켜보겠다고 캬바레 지배인이 조카를 무대에 세웠다고 하더라고. 외국 여가수 목소리 녹음해서 틀어놓고 조카는 입만 벙긋거렸다는데, 어느 날인가는 그 조카가 녹음된 목소리를 틀지 말라고 부탁을 해서 지배인하고 대판 싸웠다지 아마. 그 뒤로는 녹음된 목소리가 없으면 무대에 서기도 하고 있으면 안 서고 한다는데, 지배인 입장에서야 기가 찰 노릇이지. 아무튼 벙어리 여가수라니, 좀 우습지 않아? 아이러니하다고 할까? 반주만 틀어놓고 입만 벙긋거리는 거, 그거 아무나 다 하는 거잖아? 하필이면 벙어리가 그런 걸 자처한다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얼마나 노래가 부르고 싶었으면 그랬겠어. 자기 목소리가 아니라는 게 싫었을까. 녹음된 목소리를 못 틀게 하려고 머리까지 잘랐다니 말야. 불쌍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사람 인생이란 게 원래 다 불쌍한 거지. 그런 거 아니겠어.”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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