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lsavina Mar 29. 2019

어젯밤의 악몽

<Kalsavina의 인형이야기>  중에서

어젯밤의 악몽

내 머리가 어떻게 되었었나 봐. 어떻게 그런 곳에 혼자 갈 생각을 했던 건지. 낙엽이 바스락거리며 밟히는 소리와 하늘 위를 맴도는 까마귀의 울음 소리가 아니고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 숲 속을 내 발로 걸어 들어가다니.

그 숲 속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흡착하는 공간이었어. 그 곳에서 나는 내 눈을 잃은 채 내 영혼의 눈만을 열고 숲 속을 배회하기 시작했어.

마침내 지친 내가 어딘가에 주저앉았을 때, 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내 어깨를 쓰다듬는 걸 느꼈어. 꽤나 다정한 손길이었지만, 그 손길의 주인이 살아 있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 울고 싶은 걸 참으면서 나는 내 손을 잡으려는 그의 손을 애써 뿌리쳤어. 그는 내게서 물러났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어. 여전히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지. 이상하지. 그의 슬픔이 내게로 전해져 왔어. 나는 그를 달래기 위해, 오랫동안 잊고 있었지만 용케도 잊지 않고 기억 속에 간직해 두었던 그 노래를 불렀어.  

어젯밤 꿈 속에.......나는 나는 날개 달고......구름보다 더 높이......올라올라 갔지요......

하지만 현실에서, 지금 이 순간 나는 구름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 건 고사하고 내가 딛은 땅 위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한 채 이렇게 주저앉아 있잖아. 불안한 바람이 서걱이며 내 등을 스치며 속삭이고 있어. 넌 이 곳을 떠날 수 없다고. 넌 악몽 속에 갇힌 공주이고, 왕자가 나타나서 널 구하기 전에는 결코 불안의 숲을 떠날 수 없다고.

스산한 기분으로 몸을 떨며 나는 몸을 움츠리지. 그러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지만, 저 하늘이 왜 저렇게 낮은 회색 어둠을 드리우고 있는지를 끝내 알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구고 말아. 할 수만 있다면,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치고 싶어. 제발 거기서 날 보고만 있지 말고, 내 손을 잡고 이 곳을 벗어나 달라고. 하지만, 그가 고개를 내젓는 것이 느껴져. 그에게는 날 구해낼 힘이 없는 거야. 그때서야 난 깨닫고 있어. 나는 오래 전에, 이 곳에서 사라졌었다는 걸. 아주 많이 잘못된 방식으로 사라졌지만, 오랫동안 잠들어 있다가 깨어나 다시 이 곳으로 돌아왔다는 걸.

더 이상 이 곳에 머물고 싶지 않아. 여긴 너무 쓸쓸하고 너무 조용해서, 그냥 울어버리고 싶어지는 곳이거든.

하지만, 정말 네가 이 곳에 찾아와 내 곁에 있다면, 내게 말해줄래? 말없이 손짓하고 말없이 한숨짓는 그 가벼운 숨결의 정체에 대해서. 나를 이 광막한 공간에 홀로 남겨둔 그 사악한 마법의 정체에 대해서. 무엇보다, 자신의 그림자마저 내게 숨긴 채 저 쪽에서 나를 향해, 나를 향해 이토록 간절한 아픔을 호소해오는 그의 정체를 내게 말해줄래? 그는 너무나도 절박하게, 너무나도 필사적으로 나를 그리워하고 있어. 그는 어쩌면 미쳐버릴지도 몰라. 그런데도, 그는, 나와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숨결을 느끼면서도 내게 다가오지 못하고, 나는 그런 그의 광기를 느끼면서도 몸을 떨기만 할 뿐 그를 거부해. 이 낮게 가라앉은 음침한 대기 속에 분명 저주가 걸려 있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고, 나는 이렇게 주저앉아서 울 수 밖에 없는 거고, 그는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할 수 밖에 없는 거야. 나뭇가지 사이로 떨어지는 건 비가 아니라 눈물일 거고, 저만치에서 악령이 서걱이는 발걸음을 숨기며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아 걸어가고 있을 테지. 이건 어젯밤의 악몽이고, 모두 내 꿈속에서 일어난 일이야. 하지만, 내가 이 꿈 속에 갇혀서 결코 걸어나오지 못할 운명이라는 걸 제발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줘.  



매거진의 이전글 벙어리 여가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