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님 공연 감상기
시작은 아마, 스페인에서 결혼한 동영 씨의 귀국에서부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벌써 6년 전, 스쳐가듯 지나쳤던 인연과의 재회. 감회는 새로웠지만 늘 그렇듯 사람을 즐겁게 하는 재주가 없는 나에게는 약간은 고민이 되기도 했던 약속이었다.
그런데, 절묘하게 때마침 금세혁 디렉터님으로부터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냉큼 디렉터님과도 미팅 약속을 잡았으나, 두 사람과 뭘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는 여전히 고민이었다.
바로 이때 한승님이 한남동에서 공연을 하신다는 소식을 접한 것. 내심 한번쯤 가보고는 싶었으나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한 나로서는 동영씨와 디렉터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는 기회였다! 아니 생각을 해 보라고. 남자 둘 여자 하나가 모여서 술 마시며 수다 떠는 것 말고 좀 더 색다른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건 나만의 생각이었던 거?
여튼 그리하여, 약속한 대로 18일 오후 두 시에 동영씨와 먼저 만나기로 하고 약속한 강남역으로 고고.
마라탕을 좋아하지만 같이 먹을 사람이 없던 차에 잘됐다 하고 새신랑 동영씨를 마라탕집으로 끌고 긴 후 부인인 마리나와 조카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것저것 물으며 폭풍수다.
마리나에게 줄 선물을 미리 사려다 아무래도 남편이 더 잘 알겠지 하고 아트박스에 가서 마리나에게 줄 조촐한 선물 몇 개를 샀다. 취향이 꽤 사랑스러웠다. 푸훗. (장미 부채는 분명 마음에 들어할 거야)
금세혁 디렉터님과 동영씨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한승님의 공연이 7시에서 8시 반으로 바뀐 것이 전화위복이었음을 깨달았다. 공연 시간이 연기된 덕분에 느긋하게 저녁을 먹고 워킹타이틀까지 어슬렁어슬렁 잡담을 하며 걸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꿀맛같은 힐링의 시간이었다. 코드가 통하는 사람들과의 잡담과 산책이 주는 힐링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워킹타이틀에 도착하니 넓지 않은 (사실은 비좁은) 내부가 시끌시끌하다. 어차피 날도 좋고 바람도 선선하겠다 냉큼 건너편 앞마당 돗자리에 안착.
금디렉터님께서 명언을 해주셨다. 우리가 언제 서울 한복판에서 돗자리 펴고 앉아 와인을 마시며 노래를 듣겠냐고.
게다가 안주는 무려 오월 늦봄의 선선한 봄바람!!!! 진짜 저녁 바람이 일 다해준 공연이었다.
한승님이 이끄는 밴드 <갬성세스푼>이 드디어 도착하셨다. 난 이 밴드의 타이틀 <갬성세스푼>이 참 좋다. 마음을 위로하는 편안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묘하게 그 안에 감성을 자극하는 감각이 숨어있다. 얼핏 들으면 장난스럽기만 한 이 밴드의 타이틀만이 갖고 있는 매력이다. 그리고 그 타이틀 아래 모인 밴드의 멤버들 또한........실물이 무척 매력적인 미남들이었다(빈말 아니다 절대로)
사실 동영상을 많이 찍지 않았다. 나는 무엇보다 많이 듣고 싶었다. 그리고 주위의 분위기와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이 보내오는 밝고 따스한 기운과 그에 어우러진 오월 늦봄의 시원한 바람과 함께하는 저녁의 산뜻함을 많이 느끼고 싶었다.
애드 시런의 <shape of you>를 부르시는 통에 나도 모르게 이성을 잃었다. 정신없이 큰 소리로 따라부르고 나니 내가 무슨 미친 짓을 했나 싶더라( 결국 그 동영상은 지웠다 내 목소리 들리는 게 너무 창피해서)
이게 얼마나 어려운 곡인데 이걸 부르십니까~
한승님 능력자이신 거 인증. 그리고 달콤한 곡들이 연이어 들려오는 시간.
<사랑했지만> 불후의 명곡이지만 정작 한승님은 이 곡을 좋아하시지 않으신다고. 그러면서 그 이유를 들려주시는데 깜짝 놀랐다. 나도 같은 이유로 그 곡의 가사를 싫어했으니까. 아니 지친 그대 곁에 머물고 싶으면 머물러야지 떠나긴 왜 떠나냐고.
그러나 이 불후의 명곡은 이 밤에 너무나 애달프고도 아름답게 울려퍼졌다. 너무나도 인상적인 느낌적 느낌.
공연을 보는 도중에도 그렇고 끝나고 나서도 내내 한 편의 영화를 찍는 기분이 들었다고 하면 지나치게 센티멘탈하다고 욕먹으려나. 그러나 실제로 그랬고, 그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어터지는 관객이 아니라 삼삼오오 모여든 관객이라 좋았고, 와인잔을 손에 들고 허물없이 이야기하고 웃으며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한승님의 청아한(그래 이거야!) 한 목소리가 오월의 밤을 밝힌 가로등에 한발 물러난 어둠에 섞여드는 게 좋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기자기했던 공연.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고 맛보는 모든 것들이 사랑스러웠던 공연. 먼 훗날까지 영화처럼 아름답게 추억 속에 각인될 공연이었다. 오래된 영화의 한 컷처럼, 잔잔하게.
한승님과 갬성세스푼의 사인을 일일이 다 받아주신 동영님이 들고 계신 책은 다름아닌 이번에 내가 편집과 제작을 맡은 책이다. 아직 어설픈 초판본이지만 일단 오늘이 아니면 다시 만나기 힘들 동영씨에게 선사한 책이다. (그리고 저 이름들 가운데 내 필명과 내가 쓴 소설의 제목이 보인다 쿨럭쿨럭)
우리가 살면서 진심으로 '멋진 하루'였다고 느낄 수 있는 날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양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만 헤아릴 수 있어도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이 아닐까. 지난 십 년, 결코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던 쓰라린 날들을 떠올려 보면, 이렇게 갑작스럽게 내게 찾아든 멋진 하루는 어떻게 보면 깜짝 선물과도 같은 하루였다. 이 하루를 나와 함께 보내주신 모든 사람들에게 내 모든 사랑과 고마움을 전한다. 동영씨, 디렉터님, 한승 님, 카페 워킹타이틀 여러분, 공연 보러 모여주신 사랑스러운 관객들, 제 뒷자리에 앉으셨던 한승님 여성 팬 분 그리고 그녀의 귀여운 강아지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