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름발이 강아지
살짝 미친 바람이 온 세상을 제집 삼아 뛰돌았다. 말하자면, 여기는 바람의 발길질에 먼지와 낙엽이 무더기로 피어오르다가는 맥없이 주저앉는 을씨년스러운 아파트 단지의 일부다. 뽀삐는 남은 세 다리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며 천천히 걸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는 마비되어 오그라든 뒷다리를 들고 깡총거리며 뛰었었다.
뽀삐는 어둠침침한 눈으로 저만치 떨어진 등받이 없는 나무벤치를 바라보았다. 뽀삐의 걸음으로 마흔 걸음쯤 걸으면 당도할 수 있을 거리였다. 그러나 어쩐지 엄두가 나지 않아 뽀삐는 귀를 움츠렸다. 애리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뽀삐가 애리와 헤어진 지도 이미 사흘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어제까지는 뽀삐에게도 동네 꼬마들에게 꼬리를 흔들어 보이며 뛰어다닐 힘이 있었다. 짖궂은 그 녀석들은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뽀삐를 보며 마냥 좋아했지만, 개중에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뽀삐의 정수리를 살살 쓸어주는 아이들도 있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연민의 의미를 알아버린 아이들이다. 녀석들은 다쳐서 구부러지고 짧아진 뽀삐의 왼쪽 뒷다리 따위에 연연하지 않았다. 녀석들은 뽀삐를 안아주고 싶어했다. 그래서 뽀삐는 녀석들이 따뜻한 손이 자신의 등을 어루만지면 저절로 꼬리를 흔들어 준 것이다. 애리에게 늘상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뽀삐는 가능한 한 천천히 놀이터를 향해 다가갔다. 이제는 너무 허기져서 뛸 힘이 없었다. 만약 뽀삐가 두 발로 걷는 인간이었다면 뽀삐는 두 손으로 배를 움켜쥐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그저 개였다. 그의 나이 세 살.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의 어른 개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낡은 그네와 시소와 미끄럼틀이 한데 어우러진 놀이터 언저리에 세 개의 나무벤치가 사이 좋게 서 있다. 세 개의 벤치는 일렬종대로 양끝의 벤치가 가운데 벤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가운데 벤치는 왼쪽 벤치와 오른쪽 벤치의 호위를 받고 있는 형세였다. 뽀삐를 안고 산책하던 애리는 늘 가운데 벤치에 앉아 뽀삐를 무릎에 앉히고 쓰다듬거나 혹은 뽀삐가 놀이터를 신나게 뛰는 동안 담배를 피우곤 했다. 그 담배 냄새가 싫어서 뽀삐는 항상 다시 애리의 품에 안길 때면 가벼운 앙탈을 부리곤 했었다. 그러나 뽀삐가 네 다리가 아닌 세 다리로 뛰게 된 어느 날 애리는 뽀삐와 헤어졌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 가운데 벤치 옆으로 왔으나 어찌 된 셈인지 앉지 않고 뽀삐를 내려놓았다. 그녀는 뽀삐가 뒤따라갈 틈도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산책할 때 이외에는 항상 따뜻한 방에서 웅크리고 지냈던 뽀삐는 처음으로 살을 에는 추위와 마음을 에는 어둠에 직면했다. 그는 검은 찌개를 담은 냄비같은 하늘을 본 적이 없었다. 그 하늘에 맛소금처럼 뿌려진 별을 본 적도 없었다.
애리의 체취는 아침까지 향수처럼 가운데 벤치를 희미하게 싸고돌았다. 애리의 냄새가 뽀삐의 코를 완전히 떠난 순간 뽀삐는 그 자리를 떠났다. 이제는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없음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 멀리 가려 해도 애리의 체취가 남아 있던 가운데 벤치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갈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뽀삐는 여전히 애리를 찾고 있었다.
애리와 헤어진 후 뽀삐에게 다가온 사람들은 모두 애리보다 훨씬 작은 사람들이었다. 뽀삐는 어린 아이들이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에게 소리를 질러도, 꼬리를 잡거나 몸을 안아도 너그러이 받아주었다. 그들의 체온이 좋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결국 자신을 돌아보지 않게 된 후에도 뽀삐는 그들의 주위를 맴돌았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이들이 아니라도 사람만 보면 무작정 그를 따르는 버릇이 생기고 말았다. 운좋게 쓰레기 분리수거통 옆에서 발견한 밀가루 튀김옷을 물어 뜯다가도 사람의 긴 다리가 보이면 고개가 저절로 그 쪽으로 돌아갔다.
반대로 뽀삐를 도망치게 하는 것들도 있었다. 크고 둥근 바퀴가 달린 것들이었다. 이 둥근 바퀴들로부터 요 며칠 동안 너무나도 자주 도망친 결과 뽀비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새로운 생명체가 가진 다리임을 알았다. 어떤 것은 인간처럼 두 개의 바퀴를 가졌고 어떤 것은 뽀삐 자신처럼 네 개의 바퀴를 가졌다. 그러나 그것들은 너무나도 컸고 너무나도 빨리 움직였으며 너무나도 시끄러운 고함을 지르곤 했다. 때로는 그것들이 조용히 움직이지 않고 서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뽀삐는 그것들과 조금이라도 친해질 수 있을까 싶어 가까이 가곤 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너무 차가웠다. 온기라고는 없었다. 그것들은 항상 인간들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는 사실을 뽀삐는 알았다.
놀이터 주위를 배회하면서 가운데 벤치 아래로 갈까 말까 망설이던 뽀삐는 불현 듯 멀리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사람의 냄새를 맡았다. 애리의 냄새는 아니었지만, 애리에게서 풍기던 것과 비슷한 냄새가 났다. 뽀삐는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애리와 비슷한 몸집을 가진 여자였다.
뽀삐의 앞으로 다가온 그 여자는 아이들이 그러듯이 뽀삐의 정수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뽀삐는 눈을 가늘게 뜨고 꼬리를 흔들었다.
“귀여워라. 안녕? ”
나직하고 톤이 높은 이런 투의 목소리는 뽀삐에게는 익숙했다. 다만 애리의 목소리보다 훨씬 낮고 부드러웠다.
“눈이 예쁘네.”
여자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뽀삐를 몇 분간 내려다보며 쭈그린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일어나 그 자리를 떠났고 뽀삐는 그 여자를 절룩이는 걸음걸이로 뒤쫓았다. 그러나 늘 그렇듯 뽀삐의 걸음걸이는 스무 발짝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뽀삐는 꼬리를 내리고 귀를 실룩이며 차츰 희미해지는 그녀의 냄새, 애리의 냄새와 비슷한 그녀의 냄새를 맡았다.
그녀의 냄새가 상당히 희미해지고 뽀삐가 그 자리를 떠나려던 순간, 다시 그녀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뽀삐의 흐릿한 시야에 들어온 그녀의 두 다리가 차츰 다시 뽀삐를 향해 다가왔다. 곧이어 뽀삐는 스스로도 믿기 힘든, 그러나 꿈이라고 생각하기 싫은 간절한 냄새를 맡았다. 그 냄새는 현실이었으나 애리의 냄새는 아니었다. 그것은 소시지의 냄새였다. 뽀삐는 길고 흰 여자의 손가락 사이에 쥐어진 소시지를 흐릿한 눈으로 확인했다.
소시지 두 개는 순식간에 뽀삐의 입 속으로 사라졌다. 흰 손의 주인은 뽀삐가 소시지를 허겁지겁 먹는 동안 내내 뽀삐의 정수리며 등을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그래서 소시지를 먹는 동안 뽀삐는 춥지 않았다. 소시지를 다 먹고 난 뽀삐는 혀를 내밀어 입을 다시며 꼬리를 흔들었다. 좀 더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녀는 잠깐 쭈그린 채 뽀삐의 등을 천천히 쓸어주고는 일어서서 뽀삐를 지나쳐 걸어갔다.
뽀삐는 필사적으로 뒤쫓았다. 소시지 때문에 조금은 허기가 가신 탓인지 뒷다리가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아니다. 꼭 소시지 덕분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굳이 애리가 아니라도 좋았다. 이 사람이라면, 좀 더 오래 뒤쫓아가도 괜찮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뽀삐는 자신도 모르게 정해 두었던 적정 제한선인 스무 걸음을 훨씬 넘겨 서른 걸음이나 그녀를 뒤쫓아갔는지도 모른다. 결국 마흔 걸음을 걷고 나서야 걸음을 멈춘 뽀삐는 사라져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망연한 눈길로 지켜보았다. 여자는 간간이 뽀삐를 돌아보기는 했으나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어쩌면 애리는, 뽀삐를 가운데 벤치 아래 내려놓고 뛰어가버리기 전에 고개를 돌려 뽀삐를 쳐다보았을지도 몰랐다. 이제 뽀삐에게 남은 것은 소시지 덕분에 편안해진 배와 그 배가 언제 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차츰 어두워져 가는 하늘 아래로 뛰노는 바람이 전부였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 이야기를 값싼 눈물에 젖은 신파동화로 만드는 것을 막도록 하자. 그러려면 아직 곱게 손질한 흔적이 남은 털을 바람에 내맡긴 채 화단 쪽으로 걸어가는 뽀삐의 의식을 추적해야 한다: 그래, 가려면 가라. 씹새들아. 지 새끼처럼 안고 예뻐하며 얼굴 부빌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얼어죽고 굶어죽도록 나를 내팽개친단 거냐. 개새끼한테는 자존심이 없나. 아니지, 자존심은 없어도 산다. 하지만 개는 무엇으로 사는가.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인간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하는데, 개는 과연 소시지만으로 살았던가. 하기야 지금은 철학자이건 철학견공이건 생존의 조건을 논할 때가 아니다. 아, 내게 이 차가운 바람을 막아줄 두텁고 견고한 벽과 하루의 목숨을 연명할 소시지를 다오.
뽀삐의 의식은 이 정도로 요약하고, 다시 뽀삐의 행적을 추적하자. 아직 곱게 손질한 흔적은 남았지만 이미 윤기를 잃고 때가 탄 털로 바람을 맞아가며 뽀삐는 소시지 대신 생선뼈나 과일 껍질이 떨어져 있을지 모를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으로 발길을 돌렸다. 바람은 매서웠고 놀이터의 모래처럼 까끌까끌했다. 뽀삐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애리였는지 아니면 자신에게 소시지를 준 인정 많은 여자였는지 아니면 소시지 그 자체였는지 알 수 없었다. 또한 배가 고픈 것이 고통인지 다리가 아픈 것이 고통인지 아니면 죽는 것이 고통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죽음의 의미도 정확히 모르는 채, 뽀삐는 차츰 꺼져가는 배와 구부러진 뒷다리를 애써 추스르며 음식물 수거함 대신 바람막이가 되어 줄 화단의 움푹한 구석자리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