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고통이 고통을 쓰다듬고
# 13 고통이 고통을 쓰다듬고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당신에게......일부러 담배를 배우라고 말하지는 않겠소. 역시 담배란, 피우는 것보다는 안 피우는 것이 나은 것이오. 우선 담배는 당신의 옷과 집을 더럽힐 테고, 껌이나 침만큼은 아니더라도 거리의 미관을 해칠 것이고, 폐암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 해도 당신의 건강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 자명하니까 말이오. 그러나 세상만사가 그렇게 단순명료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잖소. 이미 담배를 배웠고, 담배와의 사랑에 눈을 뜨고, 담배가 없이는 죽을 것처럼 되어 버린 사람들을 생각해 보란 말이오. 그들에게 있어 담배의 의미가 무엇일지를 생각해 보라는 거지.
내 나이 스물 여섯 살, 나는 어느 조그만 컨설팅 회사의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소. 어느 날 출근을 하니 내 책상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게 아니겠소? 처음에는 혹시 예정에 없던 물청소라도 시작했나 하고 생각했소. 그래서 책상을 임시로 치워 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오. 그러나 그렇다면 왜 다른 직원들의 책상은 말짱하게 그대로 남아 있단 말이오?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안쓰러운 눈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소. 내가 그들을 돌아보자 그들은 내게서 고개를 돌려 버렸지. 임금의 앞에 끌려온 죄인처럼 일제히 고개를 각자의 책상 앞으로 숙여 버렸단 말이오. 그때 나는 그들에게 있어,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도 각자의 책상이 그들에게 얼마나 각별한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소. 그들의 책상은 그들의 호구지책의 상징이었고 그들의 생활의 터전이었고 안전한 도피처였으며 그들의 소속을 보증하는 신분증이었소. 나는 내 호구지책과 생활의 터전과 도피처와 신분증을 아무런 통보 없이 일시에 잃어버린 것이었소. 나는 고통을 느꼈소. 두 개의 돌이 심장의 양쪽에 붙어 심장을 짓누르는 것 같았소. 그때 내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정중한 사과의 말과 정리해고 통보로 내 앞에 닥친 상황이 나의 착오가 아닌 틀림없는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었지.
바로 그 날, 나는 담배를 배운 거요. 잃어버린 내 친구들이나 말보로 리스트에 올랐던 고등학생들처럼, 학교 다닐 때 담배를 배운 게 아니란 말이지. 나는 그날 인적이 드문 인도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눈물을 흘리며(슬퍼서가 아니라 처음으로 눈에 들어간 담배 연기가 너무 매워서) 담배맛을 제대로 터득한 거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빈 담배갑을 속에 꾹 쥐고 있더군. 빈 속에 연거푸 피워댄 담배 탓인지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선 순간 그대로 다시 쓰러져서 병원으로 실려갔고, 깨어났을 때......나는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애연가가 되어 있었소.
세상을 살아내기로 마음먹은 자에게는 최후의 보루가 필요한 거요. 안심하고 올라서서 세상이라는 적진을 향해 망을 볼 수 있는 보루, 안전한 방어망과 편안한 휴식처가 될 수 있는 최후의 유일한 보루 말이오. 그리고 또 다른 보루가 필요하오. 바로 담배 한 보루요. 세상이 내 뜻대로 내게 져 주지 않을 때, 좌절이 나를 짓누를 때, 먹고 살 길이 막막할 때, 당장 한 시간 후의 미래조차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땅을 파고 사과나무를 심을 수도 있겠지만 한 대의 담배를 피울 수도 있는 거요. 한 개피의 담배를 사기 위해 우리의 한 달 월급 전체를 털어야 하는 일이 과연 일어날지는 모르겠소. 만약 그러한 날이 온다면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리라고는 상상하지 않소. 자, 당신은 용케도 오랫동안 내 목소리를 참아 왔소. 이제 내 이야기도 끝나갈 때가 되었으니,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 봐요. 인간의 한계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오? 나는 인간의 한계가 실현되지 않는 꿈과 환상에 있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소. 실제로 세상에서 일어나지만 평범한 우리들의 앞에 좀처럼 열려 주지 않는 성공으로의 가도와 항상 우리의 앞에 열려 있는 낭떠러지로의 가도 사이에 존재하는 아슬아슬한 균형이 나의 한계이자 모든 세상 사람들의 한계라고 생각해 왔소. 그게 내 착각이었지. 인간의 한계는,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끈질긴 의지에 있다는 거요. 담배에 불을 붙여 입에 무는 그 순간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 끈질긴 의지 말이오. 내 품 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사랑스러운 악을 거부하지 않으려는 이 의지 말이오. 이 끈질긴 집착에 한계가 있는 거요. 이 끈질긴 집착은 어리석기도 하지만 동시에 복잡하고 심오한 속성을 가지고 있소. 인간은 짐승과 다른 고통을 겪지 않고는 인간임을 자각하며 살아갈 수 없소. 튼튼한 뼈와 강인한 근육과 싱싱한 허파로 이루어진 행복한 짐승에게는 평생을 살아도 한 개피의 담배가 아쉽지 않을 거요. 그러나 부러진 뼈와 흐물흐물한 근육과 시들시들한 허파와 병든 마음을 가지고도 불행을 거부하는 인간에게는(결코 ‘불행한’ 인간이라고 단순하게 표현하지 마시오!)한 개피의 담배가 아쉬운 때가 인생에 꼭 한 번은 찾아올 거란 말이지. 그렇소. 그것은 불행을 거부하는 데 필요하오. 당신의 가슴을 찌른 보이지 않는 면도칼날에 숨어 있다가 당신의 폐 속으로 침투해서 폐포 속에 기생하게 될 그 복잡한 수학 공식같은 세균을 죽이기 위해서는 그 독한 담배가 필요한 거요. 그것을 아는 당신이라면, 이 세상에서 점점 넓은 면적을 점유해가는 금연의 대지 한 켠에 최후의 보루가 서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거요. 흡연의 보루를 세우지 못한 금연의 땅은 금연의 땅이 아니오. 그것은 그저......이 세상에서 흡연과 금연이라는 두 개의 낱말이 사라지고, 그로 인해 조금 더 단순해져 버린 하나의 공허한 세상에 불과하지.